한문화
· 시대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신분 : 일반 / 남자
· 출처 : 바지저고리, 마고자, 안경을 착용한 모습, 근대 조풍연(1986)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1987년) ( )/바지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은 모습, 근대 최석로(1987), 조풍연(1986)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 )
1876년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까지에 걸친 복식의 변화는 크게 양복의 도입과 전통 복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전통복식의 변화는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관복은 조선시대의 제후국 복식 체계가 동아시아의 황제국의 복식 체계로 승격되었고, 일상복은 조선시대의 편복이 간소화되었다. 그 결과 도입된 양복과 변화된 전통 복식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시기 남자의 전통 일상복은 조선시대에 발달한 다양한 포(袍)류가 두루마기 하나로 통일되었고 속옷의 개념으로 착용하였던 바지, 저고리 위에 조끼와 마고자를 착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상시적으로 착용하고, 외출용 혹은 의례용으로 두루마기를 착용하는 방식이 전통 복식의 새로운 양식으로 정착하였다.
마고자는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으로 압송되었다가 귀국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청나라에서 착용하였던 마괘(馬褂)를 변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전부터 착용하였다는 설이 있으며 근대에 두루마기 아래에 입는 웃옷으로 정착하였다. 조끼는 서양 남성복 조끼를 한복 소재로 제작한 것으로, 전통 복식에는 없는 단추, 주머니 등이 서양 조끼와 똑같이 부착되어 있다. 남성의 일상복 상의로 저고리 위에 조끼와 마고자가 정착함으로써 전통 일상복도 양복의 셔츠, 조끼, 자켓의 쓰리피스와 같은 구조를 갖게 되었다. 여기에 전통시대에는 활용도가 높지 않았던 소매가 좁은 흑색 두루마기를 서양의 코트와 같이 착용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남성의 머리 모양은 오랜 전통의 상투머리와 함께 단발(斷髮)이 공존하였다. 조선의 단발령(斷髮令)은 1895년 11월(음력)에 단행되었다. 단발령은 백성들의 반대로 인해 진행이 순조롭지 않았기 때문에 양복을 착용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상투머리에 망건과 탕건을 쓴 머리모양에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착용하였다. 따라서 근대의 일상복으로는 단발에 양복을 입거나 상투에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착용하는 식으로 양복과 한복이 공존하였고, 한복을 입고 안경, 시계, 구두를 곁들이는 등 한복에 양복 악세서리가 공존하기도 하였다.
『고종실록』
박가영, 이경미(2017), 『한국복식문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서울특별시시사편찬위원회(2014), 『근대 문물의 도입과 일상문화』.
홍나영(2003), 「마고자의 착용법 및 기원에 관한 연구」, 『대한가정학회지』 41(5), 대한가정학회.
-
조끼(광복 이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영친왕 마고자(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연관이미지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