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백과
주시경은 1876년 음력 11월 7일(양력으로는 12월 22일) 황해도 봉산군 전산방 무릉골에서 아버지 주면석과 어머니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상주이며, 주세붕의 후손이라 한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상호, 나중에 ‘한힌샘’이란 순우리말 호를 가졌다. 주시경의 사상 주시경이 살았던 암울한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는 나
강항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유봉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家系)는 세조 때의 문장가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의 5대 손으로 아버지 강극검(姜克儉)과 어머니 김 씨의 다섯 아들 중에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우계 성흔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던 형 준(齟齬堂; 濬)에게서 배웠다. 다섯 살 때 글을 짓고 일곱 살 때 맹
설총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인 태종무열왕 때 고승 원효의 아들로 태어나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 때까지 활동한 유학자이다. 그는 삼국시대에서부터 수용하여 온 중국의 경학, 그 가운데서도 훈고학을 익히고 당나라 시대에 와서 하나로 통일된 유학(儒學)의 경전을 연구하여 우리말로 해석하고 경전의 한자에 훈고학적인 주석을 한 유학자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전각가(篆刻家)이자 탁월한 감식안(鑑識眼)을 지닌 서화사(書畵史) 연구자이기도 한 위창 오세창은 조선말기의 역관(譯官)으로 개화사상의 선각자요 서화가로 유명한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79)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친으로부터 개화사상의 일단을 이어받아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애국계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농암(聾巖) 이현보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암가(聾巖歌)」,「어부가(漁父歌)」같은 국문시가를 창작하거나 개작하여 영남가단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연산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연산군 - 중종 - 인종 - 명종 등 4대를 섬기면서 무려 44년(32세에서 76세까지) 간이나 벼슬아치로 봉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
가람 이병기(1891∼1968),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 이론과 창작으로 20세기 시조 중흥에 기여하였으며 국문학의 올과 날을 세움. 가람 이병기는 국문학자 또는 시조시인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지칭만으로는 무엇인가 아쉽다는 생각이다. 물론 가람은 우리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에 올과 날을 챙겨 세운 학자요, 쇠퇴 일로에 있던 우리 시조시를 부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