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란 칼집이 있으며 몸에 지닐 수 있는 작은 칼을 이른다. 호신용이나 장식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전통공예품이지만, 장도가 지닌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 이상이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도장의 길을 걸어온 박종군 장인은 아내와 아들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잇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 속 선인들이 지녔던 ‘장도 정신’을 현대에
화각은 쇠뿔을 얇고 투명하게 갈아 종잇장처럼 만든 후 그 뒷면에 용과 모란, 십장생 등의 밑그림을 그려 채색하는 전통 공예다. 반짇고리, 문갑, 예물함, 장롱 등 각종 목공예품에 접목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화각에 반드시 필요한 소뿔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부터 갈기, 옻칠, 그림까지 열일곱 번의 공정을 거쳐서 완성되는 화각공예는 아름다운 종합예술과도 같다
최기영 대목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장인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을 축조했던 죽정(竹亭) 최유경(1343년~1413년)이 후손이자, 목수였던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몸에는 대대로 목수의 피가 흐르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정읍 내장사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통칭한다. 영집 유영기 선생은 그중에서도 화살을 만든다. 전국에서 화살이 가장 유명했던 파주 장단에서 대대로 화살을 만들어온 가문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화살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왔다. 부족한 기록과 사료를 찾아 전국을 헤맸고, 그렇게 조선시대 화살 복원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활과 화살을 전문으로 하는 박
옥은 예로부터 석지미자(石之美者)라고 불렸을 만큼 아름다운 돌로 취급됐다. 특히 서양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옥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권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금지옥엽(金枝玉葉), 금과옥조(金科玉條), ‘옥쟁반에 은구슬’, ‘금이야 옥이야’ 등과 같이 옥은 성어나 속담, 혹은 관용적인 표현에서도 옥은 좋은 의미로만 쓰여 왔다. 다듬기 전
건축물은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계절이 변하는 곳에서는 뜨거운 햇살과 긴 장마, 건조한 대기와 만물을 얼리는 혹한 등 치명적인 요인이 끊임없이 건축물의 한계를 시험한다. 건축의 마지막 단계이자 관리의 첫걸음으로 단청이 빠질 수 없다. 단청은 오방색으로 벽이나 공포, 기둥과 같은 건축요소에 여러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말한다. 월
인생의 전부를 자수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유현 자수장은 수를 놓는 마음가짐을 ‘심선신침(心線神針)’이라고 표현한다. 마음으로 선을 이어 신의 경지에 도달하듯 손끝에 정성을 담아 한 땀 한 땀 세월을 수놓아온 세월이 어느덧 60여 년이다. 2016년 5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오랜 세월의 노력이 담긴 자수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 민화와
‘불가사의하다(不可思議).’는 말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는 이상하고 야릇한 이치를 의미한다. 불화(佛畵)의 세계가 그렇다. 오묘하고도 불가사의하고, 볼수록 빠져든다. 불교문화권에 노출된 적 없는 이들마저 매료시키는 불화에는 다른 회화와는 다른 화려함과 섬세함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2006년, 중요무형문화재
한상묵 먹장(墨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통방식으로 먹을 제작하는 장인이다. 자료수집 조차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전통먹을 재현해냈으며 우수한 기술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을 포함해 여러 업체와 활발히 협업 중이다. 예로부터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어 묵뱅이, 또는 먹뱅이라 불렸다는 동네답게 연두빛 신록이 무성하고 아침 공기가 청량하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취재진을
조선시대에는 여인의 덕목 중에 하나로 옷을 잘 짓는 것이 손꼽혔다. 가족들의 의복을 손수 지어 입던 시절, 여인의 손끝에 따라 가족들의 품위와 멋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기성복은 몸에 꼭 맞지 않아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입지만, 한복은 사람의 몸을 알맞게 감싸준다. 입는 사람의 나이와 체형 변화, 피부색, 계절 등에 맞게 옷감과 색의 선택, 마름질과 바느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