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신분 : 상류층,일반 / 여자
· 출처 : 조바위 착용 모습(일제강점기) (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아얌 착용 모습(일제강점기)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제비부리댕기 착용 모습(일제강점기)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 )
일제강점기에 미혼여성은 일상복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저고리 길이는 18~20㎝정도로 짧았고 품도 좁았다. 20세기 이후 활동하기에 편안한 저고리를 만들려는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길이가 길어지면서 화장, 진동, 소맷부리 등의 치수도 넉넉해졌으며 배래선도 곡선으로 변화되었다. 고름도 넓고 길어졌고 고름 대신 단추나 브로치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깃, 소맷부리, 고름, 곁마기 등에 짙은 색 옷감을 대어 오염을 막고 장식도 겸했다. 치마는 길이가 발등을 덮을 정도로 길었으며 예복치마는 조금 더 길게 하여 끌리게 입었다. 치마 안에는 다리속곳, 속솟곳, 바지, 단속곳 등의 속옷을 첩첩이 겹쳐 입어 치마를 풍성하게 부풀렸다. 치맛자락이 왼쪽으로 오도록 여미는 왼쪽 여밈으로 입었고 흰색 치마말기끈을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 장식하였다.
머리카락을 뒤로 땋아 늘어뜨리고, 땋은머리 끝부분에는 홍색 제비부리댕기를 맸다. 상류층 여인들은 댕기에 금박을 하기도 하고, 옥나비나 칠보나비를 붙이기도 하였다. 머리를 땋고 그 끝에 댕기를 드리운 모습은 1930년대까지 쉽게 볼 수 있었으나 1937년부터 서양식 파마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사라졌다.
겨울철에는 아얌ㆍ남바위ㆍ조바위 등의 난모(煖帽)를 썼는데 조선 말기에 조바위가 등장하면서 다른 난모들은 점차 사라졌다. 난모의 정수리 부분은 트여 있고 앞이마와 뒤통수에 여러 개의 봉술을 이어달아 장식했으며, 봉술 위에는 장식매듭과 옥판 등의 보석을 더하기도 했다. 앞이마에서 뒤통수 사이에는 구슬로 꿴 줄이나 끈목을 연결하여 한쪽 옆으로 늘어뜨렸다. 아얌과 조바위는 단정하면서도 장식성이 강해 옷을 화사하고 고급스럽게 보이게 했다. 앞중심에 달린 술장식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려 시선을 사로잡았고, 한쪽으로만 늘어뜨린 산호구슬 줄은 미완의 아름다움으로 돋보였다.
강순제⋅김은정(2008), 「문헌을 통해 본 조선시대 방한모 명칭에 관한 연구」, 『服飾』 58(7), 한국복식학회.
김성희(2007), 「조선시대 방한모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정호⋅이미석⋅공은하 공저(2013), 『전통쓰개와 복식공예』, 글누리.
이민주(2008), 「개항기 외국인의 기록과 삽화를 통해 본 우리의 복식문화」, 『역사민속학』 27, 한국역사민속학회.
이태옥⋅김구자(2009), 「19세기 이후 여자 저고리 형태에 관한 실증적 연구」, 『한복문화』 12(1), 한복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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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부리 댕기와 도식화(20세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아얌 착용 모습(대한제국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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