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여자상복, 女子喪服, Female mourner’s clothes

· 시대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신분 : 상류층,일반 / 여자

· 출처 : 영친왕 장례식(현대)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 따뜻한 이별의 기억』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의주 장의 행렬(일제강점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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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여자상복 쓰개 개두
쓰개 수질
쓰개 족두리
겉옷 대수장군
요질
버선 버선
신발 짚신 초혜
기타 죽장

상복(喪服)은 망자를 위해 착용하는 옷으로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의복이다. 전통상복인 오복제도(五服制度)는 참최(斬衰)⋅자최(齊衰)⋅대공(大功)⋅소공(小功)⋅시마(緦麻)의 다섯 가지 상복으로 구분되었고 망자와의 관계에 따라 착용 기간과 복식이 정해졌다. 여자상복 역시 망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착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여자상복은 머리에 포총(布總)이라고 하는 댕기와 비녀[笄], 관(冠), 개두(蓋頭)를 착용하고 수질(首絰)을 둘렀다. 옷으로는 대수장군(大袖長裙)을 입고 허리에는 교대(絞帶)와 요질(腰絰)을 두른다. 여기에 상리(喪履)를 신고 손에는 지팡이[喪杖]을 짚었다. 남자상복 품목과 거의 동일한데 머리 장신구와 의복에서 차이가 있었다.
대한제국기에는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오랜 기간 착용해오던 유교식 제도의 상복이 조금씩 변화하고 양복을 착용하는 경우 상장(喪章)이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나 여자상복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여 변화가 없었다. 1919년 고종황제의 국상에서도 순종의 비인 순정황후는 순종과 마찬가지로 참최복으로 개두(蓋頭)에 대수장군을 착용하였다. 이후 193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례준칙』이 발표되고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여자상복도 간소화되었다. 당시에 여자상복은 소색의 저고리와 치마, 검은색 댕기, 물소 뿔로 만든 비녀[흑각잠(黑角簪)]를 착용하고 왼쪽 가슴에 상장[흉상장(胸喪章)]을 붙이도록 하였다.
해방 이후 『가정의례준칙』,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여자상복은 더욱 간소화 되었다. 한복의 경우 검은색 혹은 흰색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상장을 붙이거나 양복일 경우 검은색으로 일습을 입고 상장을 달게 하였다. 
 

참고문헌

의례준칙

김득중(2013), 『실천 가정의례』, 중화서원.

김윤희(2019), 「근현대 상례제도와 상례복식의 문화변동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주영(2015), 『생활예절과 옷차림』, 세종출판사.

이지수(2016), 고종(高宗) 국장(國葬)에 나타난 복식 연구, 한경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지수·이경미(2020), 「<매일신보(每日申報)>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상복의 근대화 연구 -1910년대 국가 장례식을 중심으로-」, 『服飾』, 70(3), 한국복식학회.

조우현(1989), 「조선시대 상복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집필자 : 이경미(李京美), 한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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