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신분 : 상류층,일반 / 여자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19세기 말~20세기 초) ( )
일생 가장 기쁘고 경사스러운 혼례 날 신부는 활옷이나 원삼과 같은 아름다운 예복을 입었는데, 그 안에는 속적삼⋅속저고리⋅저고리 세 벌로 구성된 저고리 삼작을 갖추었다. 특히 혼례에서는 연분홍 모시적삼을 속적삼으로 입었는데, 시집가서 속 답답할 일 없이 시원하게 살라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한겨울에도 속적삼은 반드시 모시로 만들었다. 여기에 노란색의 저고리를 입고 가장 겉에는 초록색 견마기를 입었다. 모시로 만드는 속적삼과 달리 겉에 입는 저고리에는 따뜻한 시집살이를 하라는 뜻과 살림이 잘 일어나라는 뜻을 겸하여 솜을 두었는데, 여름에는 깃고대 부분에만 약간의 솜을 넣었다. 저고리 삼작 아래에는 다홍색 치마를 입었으며, 이러한 저고리와 치마의 차림새를 본 따 신부의 옷차림을 흔히 녹의홍상(綠衣紅裳)이라고 한다.
녹의홍상은 예복을 입고 혼례를 치른 후 폐백을 드릴 때 주로 착용되었는데, 머리를 쪽머리로 바꾸고 녹의홍상으로 갈아입히는 것을 계례의 절차로써 관례벗김이라고 하였다. 원삼이나 활옷과 같은 예복을 갖추지 못했을 때에는 저고리에 거들지를 달거나 흰 수건으로 손을 가려서 예복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녹의홍상과 예복을 갖춘 신부는 성적(成赤)이라 하여 이마가 사각의 형태가 되도록 솜털을 제거하고 분을 바른 후 연지⋅곤지를 찍는 화장을 하고 용잠과 같은 예장용 비녀와 진주 달린 앞댕기, 화관이나 족두리로 치장하였다. 그밖에 노리개나 가락지 등의 장신구를 착용하였는데, 부유한 집의 신부는 금박이 찍힌 스란치마를 입고, 여러 줄의 삼작노리개를 달아 더욱 화려하게 꾸미기도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편(2017),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의생활』.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신혜성(2005), 「韓國과 中國의 傳統婚禮服飾에 관한 연구 : 18~20세기 초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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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 중 폐백 장면(19세기 말~20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사람의 일생> 중 회혼례 장면(19세기 말~20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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