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부인예복Ⅲ, 婦人禮服Ⅲ, Woman's formal dressⅢ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기타(기녀) / 여자

· 출처 : 변수 묘 출토 목각인형 여인상(16세기 전반)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호조낭관계회도(16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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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표제어 연관어
일상복 부인예복 쓰개 가리마
머리모양 얹은머리
웃옷 저고리 견마기
아래옷 치마

여자들의 복식은 남자와 대조적으로 저고리와 치마 위주의 복식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입혀지는 순서에 따라 받침옷으로 입는 내의류와 겉에 입는 표의류로 구분될 수도 있다. 또한 입는 상황에 따라 일상복과 예복(禮服)으로 구분될 수 있다. 예복으로 입는 저고리와 치마는 외의(外衣)로서의 기능이 강하여 장식성이 돋보이며, 고급비단이나 금선단 직물을 사용하여 만든 저고리 종류와 치마가 예복에 해당한다. 조선 전기에는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사(紗)⋅라(羅)⋅능(綾)⋅단(緞)의 고급비단이나 금사를 넣어짠 금선단을 사용하여 깃, 끝동, 겨드랑이, 섶 등을 몸판의 색과 다르게 해주어 장식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이와 같은 장식성 있는 저고리는 선조비 의인왕후 「빈전혼전도감의궤」에는 회장(回粧)저고리, 견마기(肩亇只⋅腋亇只), 당저고리[唐串衣] 등 예복 저고리 명칭으로 확인된다.
옷의 형태는 임진왜란 이전의 저고리는 신체에 비해 길이가 길고 품이 넓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크기이다. 상대적으로 치마 길이는 짧아서 허리에 걸쳐 입었다. 조선 초기에는 둔부(臀部)에 이르는 장저고리에 치마를 입었는데 옆트임이 확인되는 것도 있다. 또한 저고리 허리에 띠를 맨 경우도 보이며 치마 위로 두 가닥의 끈이 내려오는 모습도 보인다.
조선 중기의 저고리의 구성은 목판깃에 깃너비 반정도의 동정이 달렸으며 깃아래에는 짧고 좁은 겉고름이 있다. 옆선에는 무가 달려있어 품이 더욱 풍성하다. 저고리의 길이는 50~80㎝ 전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단저고리형 중에서 금직단, 문단 등으로 깃, 섶, 끝동, 겨드랑이를 장식해 준 회장저고리가 예복에 해당한다. 중저고리형은 단저고리보다 길고 장저고리보다는 짧아 양옆이 막혀있으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곁막음[挾隔音], 견마기[肩亇只⋅腋亇只]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어 예복으로 입었다. 장저고리는 형태는 동일하지만 옷감의 쓰임에 따라 당저고리와 장저고리로 분류되며, 유물에서 확인되는 당저고리는 가슴선 아래를 금선단으로 장식하는 등 고급비단을 사용하였고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는 보(補)나 흉배를 달아주었다.
의례용치마는 금사를 넣어 제직한 금선단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만든 스란치마와 전체를 금선단으로 만든 치마도 있으며 이외에도 장식없이 만든 의례용 치마도 있다.
계회도 등의 그림 자료에는 연회에 참여한 여인이 얹은머리를 하고 가리마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리마는 당시에 실제로 착용한 쓰개로 출토복식에서 종종 확인되는데, 특히 수원박물관 소장 여흥이씨(驪興李氏, 16세기 후반)가 가리마로 머리를 덮은 후 두 갈래 땋은 머리를 가리마 위로 돌려 착장한 모습으로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박성실 외(2005), 「조선여인의 멋과 차림새」, 단국대학교 출판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2006), 「조선시대 우리옷의 멋과 유행」

박성실(2006), 「출토복식을 통해보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옷맵시」, 『다시 태어난 우리옷, 환생』 , 서울역사박물관⋅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2006),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두산동아.

[집필자 : 이명은(李明恩),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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