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부인예복Ⅱ, 婦人禮服Ⅱ, Lady’s formal robeⅡ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상류층 / 여자

· 출처 : 하연부인 초상(1376~1453년) (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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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복 부인예복 장신구 장잠 잠, 진주동곳
겉옷 장삼
웃옷 저고리
아래옷 치마

부인의 일상복은 치마, 저고리이지만 경우에 따라 노의, 장삼, 원삼 등을 덧입어 예를 갖추었다. 노의는 조선초기에 왕비 및 정4품 이상의 정처가 입던 예복으로 고려시대에도 존귀한 자의 복식으로 인식되던 옷이다. 부인이 길을 갈 때 입는 외출예복으로 왕실에서는 국말에 이르기까지 왕비를 비롯하여 세자빈과 숙의가례, 그리고 공주, 옹주의 길례에 착용하였다.
태종 12년에 장삼을 노의보다 신분이 낮은 이들이 입는 옷으로 차별화하고자 했지만 경신공주초상이나 하연부인 초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신분이 높은 부인도 장삼을 착용했다. 하연 부인은 장삼의 깃 부분을 젖혀 입고, 소매를 넓게 접어서 짧은 소매처럼 보이는 차림을 했다. 젖혀 입은 장삼의 안감은 꽃무늬가 있어서 겉감과 대조를 이루며 안에 받쳐 입은 저고리를 잘 드러낸다. 앞길을 여미지 않고 벌려 입은 채 붉은색 대대를 띠었는데 『악학궤범』에 기록된 흑장삼이나 안정나씨 묘에서 출토한 장삼을 어떻게 입었는지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하연부인은 저고리를 먼저 입고 치마를 나중에 입어서 통일신라 이후로 시작된 여성의 예복 착용법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리에는 가발인 듯 쓰개인 듯 분명치 않은 장식물을 긴 비녀로 고정하고, 머리 뒤쪽과 앞부분 중앙에 세로형의 장잠(長簪)과 작은 장식비녀를 꽂았는데, 『악학궤범』 「여기복식도설女妓服飾圖說」에 묘사된 잠(箴)⋅채(釵)와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세종 15년에 “양로연을 할 때 품계가 있는 조정관원의 아내는 장삼을 입고, 일반부인은 장삼을 제외한 짧고 편한 옷을 입고 들어와 참예하는 것을 허락하라”고 한 바 있고, 광해 2년에 “명부의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장삼을 입고, 머리는 수식(首飾)을 해야 하나 기일이 촉박하여 형편상 구비하기가 어려울 듯하니, 양이엄에 당의를 입고 입시하도록 하라”고 했다. 이들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장삼은 명부 여부를 구분하는 의복이었다. 명부의 모임에 늘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면 장삼을 갖추기가 어려워 당의를 입어야했던 현실적 상황은 「선묘조제재경수연도」에 잘 드러난다.
한편 조선전기에 착용하던 원삼은 조선 후기의 원삼과는 다른 형태를 띠었다. 남자의 단령처럼 둥근 깃에 여밈이 깊고 양옆에 무가 달린 형태여서 여자의 원삼을 개조하여 남자의 단령을 만들어 입는 일도 있었다. 오늘날 원삼의 형태는 17세기 후반부터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참고문헌

김소현(2017), 「조선시대 여인의 장삼에 대한 연구」, 『복식』 67(8), 한국복식학회.

송미경(2016), 「기성군부인 평양이씨씨(1502~1579)묘 출토복식 연구」, 『한복문화』 19(4), 한복문화학회.

이은주(2019), 「조선전기 여성용 장삼의 형태와 용도에 관한 시론」, 『국학연구』 38, 한국국학진흥원.

[집필자 : 김소현(金素賢), 배화여자대학교/ 오선희(吳宣希), 수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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