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여령 / 여자
· 출처 : 신축진찬도병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여령은 궁중에서 베푸는 크고 작은 잔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일 또는 의장을 담당하는 일을 했다. 노래하고 춤추는 여령을 정재여령이라고 하여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인조반정 이후로 장악원에 여령을 두지 않았으므로 지방에서 불러올리거나 의녀와 침선비(針線婢)가 여령의 일을 담당하게 했다.
여령은 가체로 머리를 높게 얹고 그 위에 화관을 썼으며 화관 위에는 꽃[수화(首花)]을 꽂았다. 화관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인다. 삼단형의 높은 모자에 작은 꽃판과 구슬을 장식하고 정면 하단에는 인물상과 꽃판을 놓았으며, 여섯 줄의 작은 구슬을 드리워서 이마 부분을 장식했는데 나중에는 화관의 형태가 낮은 육각형으로 변했고 정면 하단에 있던 인물상은 화관의 정수리에 놓였다.
여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복은 황초삼(黃綃衫)으로, 몽두리(蒙頭里, 몽도리]라고도 한다. 맞깃에 동정이 달린 홑옷이다. 섶은 없으나 무가 있고, 뒤트임과 옆트임이 있으며 소매는 짧고 어깨에 장식선이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아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황초삼은 소매가 길어서 짧았던 소매가 점차 길어졌음을 알려준다. 황초삼은 홍색 수대(繡帶)로 여미는데 홍색의 끝부분에 초록색 단을 더하고 제비부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각종 진찬의궤에 수대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유물은 수복문으로 부금을 하였다. 황초삼 아래에는 초록견마기와 남치마를 갖추어 입었다. 남치마 위에는 홍색의 짧은 치마를 덧입었으며, 초록신[草綠鞋]을 신었다. 손에는 오색한삼을 더하여 춤동작을 강조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했다. 이러한 차림은 가장 일반적인 정재여령의 의상이며, 춤의 종류에 따라서 갖추는 의복의 종류를 달리했다.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국립문화재연구소(2013),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아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보고서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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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을묘정리의궤(1795년)
1795 년 -
정해진찬의궤(1887년)
1887 년 -
기축진찬도병(182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무신진찬도병(184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기사진표리진찬의궤(1809년)
1809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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