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궁녀복, 宮女服, Court maid’s attire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왕실 / 여자

· 출처 : 조선시대 우리옷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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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표제어 연관어
일상복 궁녀복 머리모양 새앙머리 새앙낭자
장신구 댕기 새앙댕기
웃옷 저고리
아래옷 치마

궁녀의 업무는 이원화되어 있었다. 왕실의 가례, 잔치 등 왕실행사에는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호칭과 업무분장을 따랐으며 평상시에는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내소주방(內燒廚房), 외소주방(外燒廚房)으로 나뉘어 시중, 음식, 빨래, 바느질, 자수, 청소, 양육 등 궁궐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을 담당했다.
소속에 따라 머리모양을 달리하여 지밀의 소녀나인은 새앙머리에 4가닥 새앙댕기를 드리고, 침방⋅수방의 도청나인은 새앙머리에 2가닥 새앙댕기를 드렸다. 세수간⋅생과방⋅내소주방⋅외소주방의 처소나인은 여염집 처녀처럼 땋은 머리를 했다. 계례를 하면 은개구리첩지를 얹고 쪽을 찌게 되는데 부모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흑각개구리 첩지를 했다. 상궁은 머리와 꼬리에 금칠한 은개구리첩지를 했으며, 승은상궁은 머리와 꼬리뿐 아니라 몸통에도 금칠한 은개구리첩지를 했다. 세답방 소녀나인은 다른 처소나인과 달리 쪽머리에 팔닢댕기라고 하는 홑댕기를 맸다. 입궁 후 15년이 지나 계례를 하면 팔닢댕기를 떼내어 팔닢댕기의 유무로 세답방 내인의 계례 여부를 알 수 있었다.
궁녀는 남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남치마가 궁녀를 상징하는 옷으로 여겨졌다. 평소에는 보라⋅연두⋅옥색에 자주회장을 댄 저고리를 입는데 상궁은 나이가 많다보니 삼회장보다는 반회장을 하고 끝동도 자주가 아닌 남색을 댔다. 삼회장, 반회장, 민저고리 등은 유행이나 연령에 따른 것이고 신분이나 위계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설에는 연두회장저고리를 입었으며, 날이 더워지는 단오부터 한가위 전까지는 흰저고리, 동지가 든 달에는 자주회장저고리를 입었다. 절기에 따라 왕실 어른이 옷을 바꾸어 입으면 궁녀도 그 후에 옷을 바꾸어 입었다.
계례를 한 지밀나인은 궁녀의 정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치마에 옥색회장저고리, 견마기를 입고 어여머리를 했다. 견마기는 회장저고리에 흰색 거들지를 단 예복으로 당의보다 간편하지만 동일한 격식을 갖춘 옷이다. 이러한 차림은 평상시 근무복색이고, 저녁에는 조짐머리에 분홍저고리, 또는 연두저고리, 남치마를 입었다. 지밀, 침방, 수방나인은 처소나인과 달리 치마를 외로 입고 땅에 끌리게 입었으며 처소나인들은 행주치마를 쳤다.
궁녀의 시중을 드는 방자, 취반비, 무수리, 수모, 파지 등은 머리를 맷방석같이 둥글게 틀어 얹었으며 궁에 상주하지 않고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허리에 동여맨 널찍한 띠에 출입증인 패를 차서 앞으로 늘어뜨렸다. 이들은 푸르스름한 흑색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겨드랑이가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긴 저고리를 입었다. 각 궁방의 무수리는 흑색 삼승포로 만든 가리마를 썼다.
 

참고문헌

김소현(2011), 「조선시대 궁녀의 직무와 복식에 관한 연구」, 『服飾』 61(10), 한국복식학회.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김용숙(1987), 『조선조궁중풍속연구』, 일지사.

[집필자 : 김소현(金素賢), 배화여자대학교]
  • 순정효황후 친잠례 기념사진(1906 년)
    순정효황후 친잠례 기념사진(1906 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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