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왕실 / 여자
· 출처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1759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1681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1851년)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
조선시대 궁녀는 웃전을 모시고 궁 안의 살림살이를 담당했던 여관(女官)들로, 소녀나인으로 입궁하여 15년이 지나면 관례를 치르고 나인이 되었으며, 10년~20년이 더 지나 왕의 교지를 받으면 정5품 상궁이 되었다. 궁녀들은 평상시에는 소속된 처소와 직제, 지위에 따라 일상의 업무를 보았고, 왕실 내 의례나 궁 밖 행차가 있을 때에는 역할에 따라 호칭과 업무를 부여받고 그에 맞는 예복을 착용하였다.
『가례도감의궤』 반차도에는 왕과 왕비가 가마인 연(輦)을 타고 별궁에서 궁으로 행차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왕실의 가장 큰 의례인 만큼 각종 의장물과 기물, 행렬을 수행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 때 궁녀들은 왕비의 가마를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기행내인(騎行內人), 보행내인(步行內人), 시녀(侍女), 유모(乳母), 상궁(尙宮)으로 구분되었다. 걸어서 이동하는 보행내인을 제외하고는 말을 타고 행렬을 따랐으며, 『헌종효정왕후가례도감의궤』 이후의 반차도에서 상궁은 가마를 타고 가는 것으로 변화된다.
『가례도감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포 형태의 예복을 입는 상궁이 있고, 시녀와 유모, 기행내인은 아청색, 흑색, 홍색과 황색의 장삼을 입고 남색 겹치마에 홍색이나 아청색 홑치마를 덧입었다. 그러나 의궤의 기록과 반차도의 묘사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으며, 특히 후기 반차도에는 소매에 색동이 달린 녹원삼, 흑원삼 등으로 묘사되어서 장삼 등이 원삼으로 일원화되어 가는 모습이 확인된다. 쓰개로는 모두 너울을 착용하였는데, 기행내인의 경우 너울 없이 립(笠)만 착용하기도 하였다. 너울의 길이는 후반기로 갈수록 길어지며, 너울드림이 달려 있는 경우도 확인된다.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신병주(2001),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조미나(2012), 『조선왕조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궁녀의 직무에 따른 복식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황진영(2009), 『조선시대 궁녀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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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16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175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1851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175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철종철인왕후가례도감의궤(1851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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