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왕실 / 여자
· 출처 : 덕온공주(1822~1844년) 대례복(복원품) (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
왕녀가 어린아이일 때는 예복으로 당의를 입었다. 새앙머리에 새앙댕기를 매고 화관을 썼다. 금박 물린 당의의 가슴과 등, 양어깨에 용보[용흉배와 견화]를 달고 다홍색 스란치마를 입었다. 덕혜옹주의 사진과 유물을 보면 대한제국기 이후에는 왕녀도 용흉배와 견화를 썼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명온공주방상장례등록』에서 보듯이 봉흉배를 썼다.
어른이 된 왕녀는 원삼, 노의, 장삼 등의 예복을 입었다. 원삼은 가장 보편적인 예복으로 덕온공주, 화순옹주 등이 착용했던 녹원삼이 남아있다.
노의는 『세조실록』에 기록된 바와 같이 부인이 길을 갈 때 입는 옷인데 조선 후기까지 외출복으로 착용하였다. 청연군주(1754~1821년)묘에서 출토한 노의는 동시대 원삼과 동일한 형태를 지녔으며 색과 장식에서 원삼과 차이를 보인다. 노의는 대홍색이며 금원문 장식이 있고 안감으로 자적색을 사용했다. 공주가 노의를 갖출 때는 남색대를 띠고, 남사로 된 면사를 썼다. 그밖에 내외용 쓰개로 너울을 드리운 청초립을 썼다.
외명부로서 품계를 초월한 공주가 가례를 올릴 때는 친영의에 원삼을 입고, 궁을 나와 부마의 집으로 갈 때 노의를 입으며, 동뢰연의에 홍장삼, 공주 현구고례에 원삼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홍장삼은 흔히 활옷이라고 부르는 신부예복이다. 『병와집』에 따르면 내명부와 결혼하는 여자는 거두미를 하고, 외명부는 어여미를 한다고 했으니 왕녀 혼례에는 거두미를 하고 그 밖의 의례에는 어여미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덕온공주가례등록』에는 자라(紫羅)로 만든 대요(帶腰)와 대홍라(大紅羅)로 만든 대요가 있는데 대요를 한 머리모양은 의친왕비 사진, 선조조 「기영회도」 등에서 볼 수 있다. 공주는 머리를 꾸밀 때 장잠, 대봉잠, 대목련잠, 원잠 등을 사용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2012), 『왕실문화도감』.
김소현(2017), 『조선왕실 여인들의 복식』, 민속원.
김아람, 최연우(2014),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服飾』64(7), 한국복식학회.
오선희(2019), 「조선시대 궁중 대례용(大禮用) 수식(首飾) 제도의 성립과 변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은주(2012).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공주가례복식」, 『한국복식』 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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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회도(1585년, 선조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덕혜옹주(1912~1989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덕혜옹주(1912~1989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청연군주 노의(1754~182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복온공주 홍장삼(1818~1832년)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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