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왕실여인 관례복, 王室女人 冠禮服, Royal Woman’s attire for the coming-of-age ceremony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왕실 / 여자

· 출처 : 세자빈 초가의 재현품 ( 배화여대 제작 )/세자빈 삼가의 재현품 ( 배화여대 제작 )/세자빈 재가의 재현품 ( 배화여대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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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왕실여인 관례복 머리모양 수식
겉옷 적의 아청 금선 적의
기타 패옥
품대 수정대
기타 청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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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왕실여인 관례복 머리모양 광식
겉옷 원삼 자적 부금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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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왕실여인 관례복 머리모양 큰머리
겉옷 원삼 자적 직금원삼
아래옷 전행웃치마 남색

여자의 성인식은 머리 모양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계례라고 부르며 단가의 예식을 치렀지만 왕실에서는 삼가례로 관례를 치렀다. 또한 사대부가에서 조차 계례를 혼인의례의 일부로 삼았지만 왕실에서는 혼례와 관례를 별도의 의례로 진행했다. 왕, 왕세자, 왕세손 등의 혼인 나이가 어려지면서 배우자의 나이도 어려졌으므로 비빈의 나이 15세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관례를 올렸다.
헌종의 후궁 경빈의 관례를 기록한 「정미가례시일긔」에 의하면 초가의에 수식[대수]·원삼, 재가의에 광식[어여머리]·원삼, 삼가의에 큰머리[거두미, 대두리]·원삼·봉대를 갖추었다. 초가의에는 다홍한단으로 안을 받친 초록 직금 원삼에 패옥, 수정대, 청옥규를 갖추었고, 재가의와 삼가의에는 봉대를 띤 초록 원삼을 갖추었다. 「법복졀복」에는 관례 후 초록직금원삼, 봉흉배, 후수, 패옥, 대대, 폐슬, 봉대로 구성된 차림을 기록해서 봉대가 명복을 갖추는 데에도 쓰였음을 알려준다.
정해(1886) 12월에 관례를 치른 순종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관례 기록인 「병술납월 빈궁마마 관례시 의대발기」와 그에 앞서 1882년에 올린 가례 기록 「임오천만세 동궁마마 가례시 빈궁마누라의대발기」를 검토하면 초가의에는 다홍 금선으로 안을 받친 아청금선적의, 재가의에는 다홍 별문사로 안을 받친 자적수천만세부금 원삼, 삼가의에는 남색 전행웃치마를 갖춘 자적수천만세직금원삼을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왕실여인의 관례에 대한 기록인 「정미가례일기」에 비추어 볼 때 세자빈 관례의 머리모양은 초가에 대수, 재가에 어여머리, 삼가에 거두미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자적금수복자직금당의, 송화색장원주저고리, 분홍수화주저고리 일습은 적의 등에 받쳐 입는 의상인 동시에 사대부가의 계례에서와 같이 초출복으로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김소현(2016), 「조선시대의 관례복식 재현 연구」, 『한복문화』 19(3), 한복문화학회.

김소현(2010), 「조선후기 왕실여성의 관례복식 연구」, 『복식』 60(5), 한국복식학회.

한신혜, 권영숙(2016), 「졀복장요람과 법복졀복을 통해 본 19세기 말 왕실 여성 복식」, 『한복문화』 19(2), 한복문화학회.

한국학중앙연구원편(2016), 『장서각소장고문서대관 7』,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집필자 : 김소현(金素賢), 배화여자대학교]
  • 광식(20세기 초)
    광식(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영왕비 족두리 쓴 모습(20세기 초)
    영왕비 족두리 쓴 모습(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영왕비 족두리(20세기 초)
    영왕비 족두리(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어염족두리(20세기 초)
    어염족두리(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수식(20세기 초)
    수식(20세기 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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