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관리 / 남자
· 출처 : 왕세자탄강진하도병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18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조선시대 군사복식의 한 종류로서 립(笠)을 쓰고 철릭[貼裏]을 입고 광다회(廣多繪,廣帶)를 맨 차림이다. 철릭은 허리 아래로 주름잡힌 치마가 달린 포였기 때문에 말을 타거나 활동하기 편리하여 조선전기에는 문관과 무관 모두 군사의례, 전쟁, 왕의 행차를 수행하거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등의 상황에서 착용하였다. 관복인 단령 속에 철릭과 답호를 착용하여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단령을 벗고 융복 차림으로 바꿀 수 있는, 무비(武備)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복식이었다.
융복은 주립(朱笠)에 호수(虎鬚), 공작우(孔雀羽) 등을 꽂아 장식하고 철릭을 입고 광다회를 매고 수화자(水靴子)를 신었다. 여기에 궁시와 동개, 환도, 등편 등의 무기를 갖추고 활을 쏠 때에는 비구와 깍지를 착용하였다.
품계에 따라 갓끈[笠纓]의 재료와 철릭의 색상을 달리하여 18세기 『속대전(續大典)』과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보면 당상관은 자립(紫笠,紫騣笠)을 쓰고 갓끈으로 패영(貝纓)을 달고 남색 비단 철릭을 입은 반면, 당하관은 흑립(黑笠)을 쓰고 수정 갓끈[晶纓]을 달고 푸른색 모시 철릭을 입도록 하였으며 동가(動駕) 때에는 홍색(紅色) 철릭을 입도록 하였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철릭의 소매가 점차 넓어지고 전체 길이도 길어져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활동성이 떨어져서 융복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로 인해 무관의 군복(軍服) 제도가 정착되었고, 조선후기 융복과 군복이 공존하면서 여러 폐단이 생겨서 융복 폐지의 논의가 반복되었으나 계속 착용되었다. 고종 대에 관복의 간소화 정책으로 융복이 폐지되었다.
박가영, 이은주(2004), 「정조시대의 군사복식과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 『한복문화』 7(3), 한복문화학회.
이은주(2012), 「궁궐의 전통복식 - 왕의 군복과 융복」, 『월간 문화재』.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군사복식』,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2017), 『한국 의식주 생활사전 : 의생활』,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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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원행의궤도(179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무신진찬도병(184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평안감사향연도(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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