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군인 / 남자
· 출처 : 철종 어진(1861년)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군복은 조선후기 무관과 군사가 착용한 군사복식이다. 무관의 군복은 전립(戰笠), 협수(狹袖), 전복(戰服), 요대(腰帶)와 전대(戰帶), 수화자(水靴子)를 착용하고 무기를 갖춘 차림이다. 머리에 쓰는 전립은 차양이 둥글게 달렸고 동물의 털을 다져 만들어서 전립(氈笠)이라고도 썼다. 협수는 소매통이 좁은 포로서 소매 끝에 붉은 색 천을 덧댄 것을 동다리라고 한다. 협수나 동다리 위에 입은 전복은 소매가 없는 포로서, 협수와 전복 모두 뒷중심이 길게 트여 있어서 활동하기에 편리했다. 허리에는 넓고 두꺼운 요대를 둘러서 힘을 받도록 하고, 그 위에 남색 전대를 묶었는데 전대는 긴 천을 사선으로 놓은 뒤 나선형으로 연결함으로써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거나 붕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신발은 신목이 좁고 길게 올라오며 신코가 뾰족하게 올라간 수화자를 신었다.
계급, 소속군영, 역할에 따라 군복을 구성하는 품목이나 구조, 장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전립이 아니라 주립(朱笠)·전건(戰巾)을 쓰기도 했고, 바지 저고리 위에 협수를 착용한 후 전복·괘자(掛子,快子) 뿐 아니라 호의(號衣)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칭이 같은 품목이라도 하급군졸의 괘자나 호의는 옆의 무가 없고 뒤트임 대신 옆트임이 길게 있어 세 자락으로 만들었다.
조선전기에는 문관과 무관 모두 융복을 착용했다가 융복으로 착용된 철릭의 소매가 넓어지고 전체 길이는 길어지는 등 활동성이 떨어져서 조선후기에 무관용 군복이 생겨났다. 이후 19세기 말 육군복장규칙이 반포되면서 폐지되어 서구식 군복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2017), 『한국 의식주 생활사전 : 의생활』, 국립민속박물관.
박가영, 이은주(2004), 「정조시대의 군사복식과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 『한복문화』 7(3), 한복문화학회.
이은주(2012), 「궁궐의 전통복식 - 왕의 군복과 융복」, 『월간 문화재』.
박가영(2014), 「조선 후기 전복의 용도와 착용방식」, 『한국복식』 3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군사복식』,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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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에 따른 군복의 차이, 원행정리의궤도(18세기 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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