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소과 방방복, 小科 放榜服, Ritual attire for the certificate of acceptance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관리 / 남자

· 출처 : 초상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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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 소과 방방복 쓰개 연건
쓰개 복건
겉옷 난삼
허리띠 영대
신발

조선시대 유생이 생원·진사시인 소과(小科)에 입격(入格)하거나, 대과(大科)에 합격(合格)했을 때 증서를 받는 예식인 방방의(放榜儀)에 참여할 때 착용하는 옷이 방방복이다.
조선시대 초기 생원의 방방 복식은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머리에는 연두건(軟頭巾)을 쓰고 옷은 청의(靑衣)를 입었다. 조선시대 후기인 영조 23년(1747)부터 생원·진사 창방에 머리에는 복두(幞頭), 옷은 난삼(襴衫), 대는 도대(絛帶)이다. 이 제도는 1894년(고종 31)까지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된다. 생원·진사의 방방의에 쓰는 관모는 복두로 기록하기도 하였으나 실제 사용한 것은 연건(軟巾)이다. 관리들이 공복(公服)에 착용하는 복두와 형태가 달랐다. 연건은 흑주(黑紬)에 종이를 배접하여 접어 만들고 좌우에 붉은 실끈을 달아 묶어 늘어뜨렸다. 그 아래에 복건을 쓰기도 했다. 난삼은 단령에 녹색이나 옥색 겉감에 황색 안감을 넣고 검은 선 장식을 두른 옷이다. 앵삼(鶯衫)이라고도 한다. 특히 앵삼은 어린 입격자의 황색 난삼을 말한다. 1937년 『일용비람기(日用備覽記)』에는 ‘소과 입격자는 연건(軟巾)·영대(鈴帶)와 난삼을 착용하고 앵삼은 소년 진사가 착용한다’는 기록이 있다. 영대는 원형 세조대에 망수(網綬)를 씌운 금칠이 된 나무 구슬 4개를 꿰어있다. 영대는 원형의 띠를 술 장식이 뒤로 가도록 허리에 두른 후 뒤로 가도록 허리에 두른 후, 뒤로 잡아당긴 다음, 좌우 어깨나 팔위로 두 줄을 올린 후 앞으로 잡아 당겨 내려 착장한다. 신은 화(靴)를 신는다.
 

참고문헌

진덕순·이은주(2021), 「조선시대 생원·진사의 방방 복식제도, 『국학연구』 45, 한국국학진흥원.

진덕순(2019), 「조선 유생의 문과 급제와 복식문화 연구」, 안동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全寶姈(2020), 「난삼(襴衫)의 조형(造形)과 변천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집필자 : 송미경(宋美京), 서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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