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상류층 / 남자
· 출처 : 김진 초상(1572년) ( 한국국학진흥원, 개인소장 )
조선전기 상류층 남자는 설날에 세배할 때, 웃어른을 찾아뵙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 사당에 들거나 경전을 대할 때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예를 갖추어야 하는 상황에는 갓[흑립]을 쓰고 직령을 입고 세조대를 둘렀다. 갓은 머리에 꼭 맞게 눌러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얹는 방식으로 쓰는 모자로서 유교의 정신적인 표상인 인의예지(仁義禮智) 가운데 예를 갖추기 위한 의관정제(衣冠整齊)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소였다. 조선전기의 갓은 대우가 높고 모정이 둥글고 양태가 넓었다. 상투를 틀고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망건을 두른 다음 갓을 썼는데, 밀화나 호박⋅대모⋅옥 등으로 만든 입영[갓끈]을 달아 가슴 밑으로 길게 늘어 뜨려 멋과 품위를 더하였다. 일상예복으로 갓과 함께 입었던 직령은 곧은 깃에 양 옆에 사각형의 무가 달려 있는 포로서, 옷깃이 곧은 데서 그 의복명이 유래되었다. 예복으로는 주로 홍색이 사용되었는데 직령 안에 철릭과 답호를 받쳐 입었다. 조선 전기에 착용된 직령은 깃이 끝 잘린 이중 칼깃이고, 소매는 길고 소매통이 진동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착수형이며, 앞길이가 뒷길이보다 짧거나 앞⋅뒤 길이가 동일한 형태였다. 사각형의 무는 무 전체를 옆선 안에서 주름 잡아 고정하는 ‘안주름형’과 무의 일부는 옆선 안에서 주름잡고 나머지는 옆선 밖에서 주름 잡아 고정하는 ‘안팎주름형’이 사용되었다. 직령을 입고 가슴부분에 세조대를 둘렀는데 세조대의 색상은 당상관은 홍색⋅자색, 당하관은 청색⋅녹색을 사용하여 신분을 구별하였다.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대를 맬 때 높아도 가슴 위로 올려 매서는 안 되고 낮아도 배꼽까지 내려 매서는 안 되며, 졸라매지도 말고 느슨히 매지도 말며 맺는 부분은 반드시 동심(同心)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2020), 「운종가 입전 조선의 갓을 팔다」.
단국대학교출판부(2008), 「정사공신 신경유공묘 출토 복식」.
이주영(2001), 「조선시대 직령(直領) 연구」, 부산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이주영(2004), 「직령의 부위별 형태 특성과 상호간의 관련성 연구」, 「服飾」 54(5), 한국복식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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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낭관계회도 (155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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