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상류층 / 남자
· 출처 : 행려풍속도병(18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18세기 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18세기 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조선후기 상류층 남자는 외출할 때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세조대를 띠고 혜를 신었다. 조선시대 갓은 15세기 이후 모정이 평평해지고 16~17세기에 갓의 크기가 점점 커졌는데, 17세기 중반에는 대우가 높고 양태가 매우 넓어져 문을 드나들 때 방해가 될 정도로 큰 갓이 유행하였다. 18세기까지 큰 갓이 유행하다가 19세기 중기부터 점차 작아졌는데, 고종대의 의관 개혁과 함께 양태가 좁은 소형 갓으로 개량되었다. 조선후기는 갓에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으로 멋을 부리는 등 갓의 아름다움이 가장 돋보였던 시기였다.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갓을 뒤쳐 쓰지도 말고, 끈을 움켜잡아 매지도 말고, 흩어 매지도 말고, 귀에 내려오게 매지도 말라’고 하였다. 도포는 조선후기 남자의 대표적인 포였다. 17세부터 사대부의 직령 착용이 줄어들면서 도포 착용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18세기에는 상류층 남자가 외출할 때 주로 도포를 입었다. 도포는 소매가 넓고 풍성하고 뒷자락이 겹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인데, 뒷자락이 안자락의 터진 부분을 가려주었기 때문에 말을 타거나 앉을 때 속옷이 노출되지 않아 예의를 갖출 수 있으면서도 실용적이고 편리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사대부의 야복초상화가 유행하였는데, 복건과 심의 차림 초상화로는 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한 반면, 도포 차림 초상화로는 일상적이고 진솔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도포를 입을 때는 신분에 따라 홍색 또는 자색, 청색 또는 녹색의 세조대를 둘렀고, 신발은 혜를 신었다. 도포는 고종 21년(1884)에 소매가 넓은 포를 폐지하는 조치가 내려지면서 착용이 금지되었다가 유림들의 저항으로 다시 예복으로 허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제사복과 수의로 사용되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2020), 『선비의 멋, 갓』.
김정애(2010), 「조선시대 도포의 형태변화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출판부(2008), 『정사공신 신경유공묘 출토 복식』.
이은주(1999), 「도포 양식의 발전에 대한 갈등ㆍ기능론적 분석」, 서울여자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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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려풍속도8폭병풍(1778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회례혼도(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서직수 초상(1796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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