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일반 / 남자
· 출처 : 밀희투전(18~19세기) ( 간송미술관 소장 )/쌍육삼매(18세기) ( 간송미술관 소장 )/설야연적도(18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조선후기 일반 남자들은 평상시에 탕건을 쓰고, 바지⋅저고리를 입고 배자를 걸치거나, 바지⋅저고리 위에 소창의나 중치막 등의 겉옷을 입고 그 위에 배자를 덧입었다. 일반 남자들은 평상시에 상투를 틀고 망건으로 머리를 정돈한 후 탕건을 썼는데, 일상에서도 탕건을 써서 예를 갖추었다. 탕건은 말총으로 성글게 짠 간단한 형태의 쓰개로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은 형상으로 앞쪽 중간에 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모를 쓰기 전에 상투를 틀고 망건을 두르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망건은 머리털을 싸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바짝 죄어 매서 이마에 눌린 흔적이 있게 해서는 안 되고, 늘어지게 매서 귀밑에 흩어진 털이 있게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눈썹을 눌리게 매지도 말고, 눈 꼬리가 위로 치켜들게 매지도 말라’고 하였다. 남자들은 평상시에 바지⋅저고리나 포 위에 배자를 덧입었다. 배자는 18세기에 들어 크게 유행하였는데, 맞깃에 동정이 달려 있고 소매⋅섶⋅고름이 없는 간편한 형태로서, 앞길이가 짧고 뒷길이가 길어서 좌식생활에 적합한 구조였다. 옆이 트여 있어 품 조절도 가능하여 포 위에 덧입을 수도 있었다. 일반 남자들 사이에서 안경이 장신구로 사용되었는데, 안경과 안경집은 장식과 더불어 신분과 재산의 정도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안경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조선에 유입되어 세도가와 부유층에 의해 주로 착용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안경은 형태에 따라 대못안경⋅실다리안경⋅꺾기다리안경⋅무테안경 등으로 구분되었고, 안경테의 소재는 대모⋅우각⋅나무⋅금속 등으로 다양하였다.
국립대구박물관(2020), 『선비의 멋, 갓』.
서울역사박물관(2020), 『운종가 입전 조선의 갓을 팔다』.
윤을요(2014), 「조선시대 안경과 안경집 디자인 연구」,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14(4), 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수연(2008), 「18세기 이후 배자의 유행과 확산」,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은주⋅조효숙⋅하명은(2005), 『17세기의 무관옷 이야기』, 민속원.
이주영(1993), 「조선시대 무수의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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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배자 산수풍속화(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풍속화, 야연(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풍속화(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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