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기타(별기군) / 남자
· 출처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 생활과 풍속(1880년대) ( 국사편찬위원회 전자도서관 소장 )
별기군(別技軍)이라고 불리는 교련병대(敎鍊兵隊)는 1881년 고종이 개화정책을 펼치면서 설치한 신식군대이다. 오군영(五軍營)에서 선발된 인원은 일본인 교관에게 훈련을 받았기에 이들을 왜별기(倭別技)라고도 하였다. 별기군은 급료, 의복 등 모든 면에서 구식군대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고, 이러한 차별대우는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의 원인이 되었다.
별기군의 복식은 검정색 모자를 쓰고, 통이 다소 좁은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배자 깃이 달린 검정색 상의를 덧입은 후, 허리에는 혁대를 맨 차림이다. 여기에 버선을 신고 짚신이나 미투리와 같은 초혜를 신었다. 별기군의 모습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궁중기록화, 의궤 반차도, 흑백사진 속에서 확인되며 바지의 색상, 동정의 유무, 소매 끝동의 배색 수 등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자의 형태와 배색 위치, 상의의 길이와 둥근 단추, 허리띠의 사각형 버클[吐環]은 공통된다.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신식군대 복식의 모자와 상의 유물이 전해진다. 모자는 차양이 시작되는 부분을 따라 붉은색 천으로 테를 두르고 앞면에는 먹으로 소속과 신분을 쓴 붉은색 천을 세로로 부착하였다. 재료는 조선후기 전립(戰笠)과 같지만, 머리가 들어가는 부분인 대우의 형태가 원통형에 가깝게 꺾여있고 차양너비가 짧아서 서양 모자와 유사한 실루엣을 보인다. 군복 상의 역시 한복과 양복의 특징이 혼재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조와 바느질법, 배자깃, 흰색 동정 등은 한복이면서도 서양식 단추와 단추구멍, 여밈분 등은 서양의복의 특징을 보인다. 이로부터 한국복식과 서양복식이 일시에 교체된 것이 아니라 혼용되고 점진적으로 변화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편(2017),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국외소재 한국문화재 조사보고서 제36권)』, 국립문화재연구소.
박가영(2021),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군대 복식」, 한국복식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자료집, 한국복식학회, pp.124-125.
이현아(2016), 「1884년 갑신의제개혁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최병옥(1989), 「敎鍊兵隊(속칭倭別技) 연구」, 『군사』18,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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