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보부상복, 褓負商服, Peddler’s clothes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기타(보부상) / 남자

· 출처 : 보부상(19세기) ( 간송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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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복 보부상복 쓰개 패랭이
웃옷 저고리
아래옷 바지
겉옷 소창의 창옷
기타 행전
신발 초혜 짚신, 미투리

보부상(褓負商)은 세공품이나 사치품 등의 잡화를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여 ‘봇짐장수’인 보상(褓商)과,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판매하여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에 대표적인 보부상단이 존재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해산되었다.
권용정(權用正, 1801~1861)의 그림 속의 보부상은, 머리에는 전(氈)으로 만든 벙거지를 쓰고, 모자챙에 짧은 담뱃대를 꽂고 있다. 옷은 바지·저고리 또는 소창의 차림에 행전을 하고 버선에 짚신을 신었다. 짚신은 벗겨지지 않게 발등에서 들메하였다. 또 다른 그림은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 필 풍속도화첩 중 행상 그림으로 권용정의 그림의 보부상과 매우 비슷하다. 지게를 지고 머리에는 검정색 벙거지를 쓰고 저고리와 바지 그리고 행전을 했고 버선과 짚신을 신고 있는데 신이 벗겨지지 않게 발등에서 들메끈으로 고정하였다.
일본의 개인 소장인 민화병풍 중에 부상패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패랭이 첨의 좌우에 솜방울을 단 모습이 확인된다. 푸른색 저고리를 입고 아래에는 흰 바지에 행전을 치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1984년에 찍은 마지막 장돌뱅이라고 알려진 유지룡의 사진에는, 패랭이에 목화송이를 달고 있다. 그는 보부상의 옷차림으로 “패랭이다가 솜방울 양쪽에 달어 뒤집어쓰구 쪽지게 짊어지구 촉작대 짚구 전국 팔도 안 간 디 없이 돌아댕기는 거이 우리 보부상여. 먹고 살라구 말여. 감발도 지대로 못혀서 창호지 둘둘 감고 ”라고 언급하고 있다. “보부상덜이 어째서 패랭이다 솜을 달고 대니게 되었냐믄 병자 난리 적에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몽진갔을 때, 보부상이 솜으로 피를 멎게 해서 난리가 끝나고 보부상들이 대접을 잘하도록 조처를 내리고 패랭이에 솜방울을 달게 했다.”고 한다. 이 증언을 미루어 목화송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오는 것 같다. 
 

참고문헌

강순제(1992), 「우리 冠帽의 始末에 關한 硏究」,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구술 유진룡·편집 김택춘(1984), 『“장돌뱅이 돈이 왜 구린지 알어?”』, 뿌리깊은 나무

[집필자 : 송미경(宋美京), 서울여자대학교]
  • 행상(18세기)
    행상(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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