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조선시대
· 신분 : 상류층 / 남자
· 출처 : 이재 초상(18세기)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허전 초상(19세기) ( 경기도박물관 소장 )/유소심 초상(1915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가 유교철학의 심원한 의미를 담았다고 하여 일상예복으로 입었던 겉옷으로 몸을 깊숙이 감싸는 형태이다. 고려 말에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와 함께 전래되었다. 심의는 관례⋅상례⋅제례에 입었고, 사당에 들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에도 입었다. 심의는 옷깃이 곧고 상의(上衣)와 하상(下裳)이 허리에서 연결된 형태로서, 깃⋅소매부리⋅밑단 등에 검은 색 선이 둘러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심의의 의와 상이 나누어진 것은 건곤과 음양을 상징하고, 의 4폭과 상 12폭은 각각 사계절과 12개월을 상징하였다. 심의의 소매, 깃, 등솔, 아랫단은 각각 그림쇠[規], 곱자[矩], 먹줄[繩], 저울[權衡]에 따라 만들었다. 소매는 그림쇠의 둥근 모양[圓], 깃은 곱자의 네모난 모양[方], 등솔은 먹줄의 곧은 모양[直], 아랫단은 저울의 평평한 모양[平]에 상응하도록 하였다. 그림쇠와 곱자는 사사로움이 없음[無私], 먹줄은 곧음[直], 저울은 평정함[平]을 상징하였다. 조선의 학자들은 심의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올바르게 착용하기 위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였는데, 대체로 노론계열은 직령심의(直領深衣), 남인계열은 방령심의(方領深衣)를 주장하였다. 심의에는 복건을 주로 썼으나, 이황(1501~1570)이 복건이 승건과 비슷하다고 하여 정자관을 쓰도록 한 이후 정자관⋅모관⋅장보관⋅치포관 등도 쓰게 되었다. 심의를 입을 때는 대대와 채조(采絛)를 둘렀는데, 대대와 채조의 길이는 치마길이와 같게 하였다. 검정색 선을 두른 대대를 가슴부분에서 두르고 앞에서 묶어 양 귀를 만들어 늘어뜨린 다음 대대의 매듭부분에 오색사(五色絲)로 짠 채조를 다시 묶어 늘어뜨렸다. 심의를 입을 때는 주로 검은색 운혜를 신었다.
김다은(2019), 「조선시대 심의유형의 변천양상과 요인」, 성균관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이주영(2018), 「조선후기 정자관의 용도와 형태」, 『服飾』 68(5), 한국복식학회.
정혜경(1998), 『심의』, 경남대학교 출판부.
차서연(2021), 「성제 허전의 심의 연구」, 『동양학』 83,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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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초상(1802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채용신 필 최익현 초상(190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하응 초상(1880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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