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고려시대
· 신분 : 왕비 / 여자
· 출처 : ( 왕비예복, 관경서분변상도 )/ ( 왕비예복, 미륵하생경변상도 )/ ( 왕비예복, 공민왕·노국공주 초상, 종묘13222 )
대분류 | 중분류 | 소분류 | 표제어 | 연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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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 여성예복 | 겉옷 | 의례복I-왕비예복 |
고려의 왕비는 의식을 치를 때 가장 격식있고 화려한 의례복을 착용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저서인 1123년의 『선화봉사고려도경』 권 20을 보면 고려의 왕비 또는 고위층 여성만 착용할 수 있었던 예복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고려의) 왕비(王妃)와 부인(夫人)들은 홍색을 숭상하여 그림(繪)을 그리거나 수(繡)를 놓아 입지만, 국관(國官)과 서민(庶民)들은 감히 그런 옷을 입을 수 없다고 한다.” 회수(繪繡), 즉 그림 또는 자수 기법으로 문양을 넣은 겉옷인 홍색포는 이 시기에 최고위층 귀부인들만 한정적으로 착용하는 의례용 예복이었다.
고려 후기 여성 예복의 형태는 이 시기에 제작된 고려불화에 나타난다. 『관경서분변상도(일본 사이후쿠사 소장)』의 행렬 맨 앞에 그려진 왕비는 작은 보관(寶冠)을 쓰고 표(裱: 어깨걸이)를 걸쳤으며 금빛 문양이 있는 홍색 바탕의 반소매 아래에 긴 담홍색 광수(廣袖)가 연결된 포를 입고 있으며, 『선화봉사고려도경』 에서 왕비 및 귀부인만 입었던 홍색 의례복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편 『미륵하생경변상도(일본 지온인 소장)』의 왕비는 작은 보관, 표, 광수포, 요군(腰裙)의 일종으로 보이는 홍색 뒷드림으로 구성된 의례복을 입었으나, 겉옷은 홍색이 아닌 다른 색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고려 여성의 의례복 포 색상은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 재위기인 1370년에 친명정책의 일환으로 왕비의 의례복(관복)이 도입되었으며,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7마리의 꿩과 2마리의 봉황 장식이 달린 관과 푸른 바탕에 꿩을 수놓은 적의(翟衣)’였다. 이후 조선 초기에 명에서 도입된 왕비의 의례복 겉옷은 주로 대수삼(大袖衫) 또는 대삼(大衫)이었다. 『공민왕‧노국공주 초상(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에 묘사된 왕비의 겉옷은 푸른 옷이 아니지만 머리에 쓴 관이 위와 유사한 형식이며, 이러한 차림새는 요(遼)의 귀부인을 묘사한 회화에도 나타난다.
고려사(2009-2021), 국사편찬위원회
공민왕‧노국공주 초상(n.d.),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2010), 「고려불화대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서긍(1123), 조동원⋅김대식⋅이경록⋅이상국⋅홍기표 공역(2005), 「고려도경」, 서울: 황소자리.홍나영(n.d.), 대삼(大衫), 한국민속대백과사전
菊竹淳一&정우택(1996), 「고려시대의 불화」, 서울: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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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예복, 관경서분변상도 -
왕비예복, 미륵하생경변상도 -
왕비예복, 공민왕·노국공주 초상, 종묘13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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