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의례복, 儀禮服, Ceremonial dress

· 시대 : 삼국시대, 통일신라

· 신분 : 미분류 / 남자

· 출처 : ( 의례복 안악 3호분 벽화 묘주 朝鮮画報社 編(1985), 『高句麗古墳壁畵』, 圖版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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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 겉옷 의례복, 儀禮服, Ceremonial dress

고구려 고분벽화 중 1949년에 황해도 안악에서 발견된 안악 3호분(357년 혹은 4세기 말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은 벽화에 묘주의 생존 시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회랑의 동쪽 벽면에는 25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소가 끄는 수레를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악대가 노래와 연주, 춤을 추며 나아가고 수레 뒤쪽으로는 의장 기수, 시녀, 말을 탄 문관 등이 뒤따르고 있다. 이러한 웅장한 행렬은 당시 무덤 주인공의 지위가 매우 높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회랑에 위치한 250여 명이 등장하는 행렬도는 묘주의 높았던 신분을 반영해 주는 듯 규모가 방대하며 전체가 매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마차를 탄 묘주는 행렬의 3분의 1정도 지점에서 등장하며, 묘주 바로 앞에는 왕을 상징하는 성상번(聖上幡)이라는 붉은 글자가 쓰여진 검은 깃발을 든 인물이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의 미술사학자 주영헌(朱榮憲)은 미천왕릉(美川王陵)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와서는 고국원왕릉(故國原王陵)이라고 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안휘준(安輝濬)은 “안악 3호분은 중국인인 동수(冬壽)의 묘로 보기보다는 역시 고구려 왕(王)의 능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 했다.
서쪽 곁방에 그려진 무덤 주인의 초상은 장막을 두른 평상 위에 앉아 정면을 향해있다. 머리에는 백라관(白羅冠)을 썼으며, 허리에는 수조반(獸爪鞶)을 두른 붉은색 포를 입고, 오른손에는 털 달린 부채를 들어 고귀한 신분임을 드러내었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2020), 『천상의 문양예술: 고구려 고분벽화』.

朝鮮画報社 編(1985), 『高句麗古墳壁畵』, 東京: 朝鮮畵報社.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나영, 이미현(2005), 「고구려 복식의 양식 분석」, 한국연구재단.

[집필자 : 김문자(金文子), 수원대 ]

  • 의례복 덕흥리 무덤벽화 묘주 朝鮮画報社 編(1985), 『高句麗古墳壁畵』, 圖版 54.

  • 의레복 감신총 벽화 묘주(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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