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화
· 시대 : 삼국시대, 통일신라
· 신분 : 관리 / 남자
· 출처 : ( 황성동 토용 남자 복식 )/ ( 황성동 토용 남자 복식 - 남인상1 )
대분류 | 중분류 | 소분류 | 표제어 | 연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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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복 | - | 겉옷 | 통일신라 남자 복식 |
황성동 출토 남자 토용 높이는 18cm이고, 머리에 복두(幞頭)를 쓰고 단령을 착용하였다. 복두는 이마에 닿는 부분은 이마에 밀착되고 정수리 부분이 불룩 올라간 형태인데, 모체(帽體)의 앞이 2층으로 턱이 지고 뒷모습은 밋밋하다. 머리 뒷부분이 부분 손상되어 정확한 형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황성동 남자 토용 복식의 복두에는 현재 알려진 조선 시대 복두의 뒷면에 부착되었던 날개 모양도 없고, 용강동 토용 복두 뒷면에 띠 두 가닥 띠가 늘어진 모양도 확인할 수 없다. 용강동 토용은 끈 두 가닥이 모체에 2층으로 턱이 진 부분에 매듭지어졌는데, 황성동 토용 복두에는 그런 자세한 표현은 보이지 않았다.
겉에 착용한 포는 목둘레에 직선으로 교차하는 깃 표시가 없고 목부분에 미세한 선으로 둥근 깃을 나타내는 선 두 줄이 있어 둥근 깃이 달린 포[단령(團領)]로 추정된다. 소매통이 좁고 두 손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인데, 소매에 주름 표현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손끝을 덮을 정도이긴 하나 소매길이가 매우 길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겉에 착용한 포의 길이가 길어 땅에 끌리는데 밑단[도련]이 매우 넓지 않고, 양옆이 트여있다. 여밈이 정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았다.
허리에는 허리띠를 두른 듯한 선이 소매 배래 아래에 보이고 옆 허리에도 살짝 가로선이 표현되어있으나 토용의 뒤 허리에는 표현이 생략되어있다. 함께 출토된 다른 용에는 뒤 허리에 허리띠가 표시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허리띠가 옷에 가려진 것인지, 허리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다.
신은 가려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구인숙(1989), 「경주황성동고분출토 토용의 복식사적 의미」, 「복식」 13, 한국복식학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2007) 「신라고분 기초학술조사연구 III-文歡·考古資料」
김문자(2015), 「한국복식사개론」, 교문사.
한국콘텐츠진흥원(2002),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고유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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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동 토용 남자 복식 -
황성동 토용 남자 복식 - 남인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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