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황남대총 북분 출토 장신구

· 시대 : 삼국시대, 통일신라

· 신분 : 미분류 / 남자

· 출처 : (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 국보 제191호,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높이 27.5cm, 수하식 길이 13-30.3cm )/ (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보물 제617호,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높이 23cm, 너비 23cm, 문화재대관 국보-금속공예 )/ ( 황남대총 북분 은제관식, 보물 제625호,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높이 22cm, 날개폭 26cm )/ (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보물 제623호,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너비 2.1㎝, 지름 7.2㎝ 내외 )/ ( 황남대총 북분 금반지, 보물 제623호,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지름 1.9㎝ 내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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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 장신구 대륜식입식관[금동관], 과대, 가슴걸이[경흉식], 귀걸이[이식], 반지[지환], 금동신발[금동리]

황남대총은 신라시대 고분으로 남분과 북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표주박형의 부부총이자 합장무덤이다. 1973년과 1975년에 발굴한 결과 남분의 피장자는 60세 전후의 남자였고, 북분의 피장자는 여자였다. 남분에서는 남성 피장자가 착장했던 금동관·금제관드리개[金製冠垂飾]·금제목걸이·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가슴장식, 금제허리띠[銙帶]와 띠드리개[腰佩] 등의 장신구, 고리자루 큰 칼[金銅裝環頭大刀]을 비롯하여 부장품 수장궤 안에서도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남분에서는 각종 장신구가 다수 출토되었다. 은관은 머리쪽 부장품 수장궤 안에서 발견되었고, 관테에 3개의 입식이 있는데 신라의 관모 중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금제 조익형 관식은 부장품 수장궤에서 발견되었고, 금판을 중심으로 양 옆에 날개 모양의 금판이 붙은 형태이다. 전면에는 영락으로 장식되어 있다. 금목걸이는 피장자의 목에 걸린 채 발견된 것이다. 금실을 꼬아 만든 금사슬 형태이고 좌우에 각각 속이 빈 원형의 금구 3개씩을 두었고, 중앙 아래쪽에는 곡옥을 매달았다. 은제 팔뚝가리개는 팔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의 일부인데, 부장품 수장궤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북분에서는 여성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로 금관과 3쌍의 금제관드리개, 금구슬과 유리구슬로 된 목걸이, 금제허리띠와 띠드리개, 11개의 금팔찌, 12개의 금반지와 부장품 수장궤에서 다수가 출토되었다. 왕비의 금관은 전형적인 신라금관의 형식대로 관테와 3줄기의 산자형 입식과 나뭇가지형과 2줄기의 녹각형 입식으로 구성되었고, 수식이 좌우로 늘어뜨려져 있다. 금관 전체에 비취색 곡옥과 떨잎이 장식되어 있다. 나비형[蝶形] 은제 관식은 수장궤의 남쪽에서 2점이 겹쳐져 발견되었다. 새의 날개를 간략화시킨 나비 날개 모양이다. 금팔찌는 왕비의 왼쪽 팔에 착장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금판 위에 다른 금판을 알물림을 위해 덧대고, 표면에 누금세공과 남색, 청색의 옥을 박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다. 금반지는 피장자의 오른손에 5개, 왼손에 6개를 낀 상태로 발견되었다. 반지는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금반지 한 종류는 금판을 말아 그 표면에 격자문을 음각한 것이다. 다른 한 종류의 금반지는 금봉을 말아 중앙부를 마름모꼴로 넓힌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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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란, 『신라 금속공예연구』, 일지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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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4-5세기 신라 고분 피장자의 服飾品 着裝 定型」, 『내일을 여는 역사』 45,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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