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한복

나주 신촌리 금동관

· 시대 : 삼국시대, 통일신라

· 신분 : 미분류 / 남자

· 출처 : (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국보 제295호, 백제, 국립나주박물관, 모관 높이 17.0cm, 길이 21.1cm, 높이 19.6cm )/ (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과 관모 )/ (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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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복 - 머리 대륜식입식관[금동관], 관모[내관]

나주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은 내관[관모]과 외관[금동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금도금한 구리판을 오리고 붙여 화려하게 제작하고 있다. 이 금동관은 일제강점기에 출토되어 백제시대에 영산강 유역을 다스리던 수장(首長)의 지배자가 착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 관 중에서 내관과 외관이 결합된 유일한 사례이며, 내관은 반타원형의 금동판 2장을 접합하고 가장자리를 좁고 길다란 판으로 덮은 다음 못으로 고정하여 고깔모양의 관모로 만들었다. 금동판에는 작은 점을 연달아 찍어 당초무늬를 새겼고, 아래쪽 테두리에도 같은 기법으로 파도무늬를 새겼다.
외관은 너비 3cm의 관테 위에 풀이나 꽃모양의 세움장식[立飾] 3개를 별도로 만들어 안쪽에 덧댄 다음 못으로 고정한 것이다. 입식의 넓은 줄기의 가운데에 2개의 길쭉한 세로 홈을 뚫어 줄기를 3가닥으로 보이게 하였고, 꼭대기 부분을 보주로 장식하였다. 줄기의 좌우 곁가지나 꼭대기 부분에는 남색이나 하늘색 구슬을 홈에 끼웠고, 관테 윗부분과 세움장식에 둥근 달개를 달아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시각적 효과와 부딪히는 소리까지 고려했다. 특히 외관의 입식이 자연스러운 나뭇가지 모양인 것에서 ‘出’자형으로 단순화된 신라금관보다 이른 시기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이 금동관과 유사한 관은 공주 수촌리와 서산 부장리 유적에서도 출토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짐작케 한다. 아울러 백제 금동관 형식은 일본에 전해져 구마모토[熊本]의 에다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이나 후쿠이현[福井縣] 쥬젠노모리 고분[十善の森古墳]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통해 확인된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국보-금속공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백제』, 통천문화사, 1999.

이한상, 『공예1-고분미술』, 예경, 2006.

장경희, 『국립중앙박물관』, 예맥, 2012.

[집필자 : 장경희(張慶姬), 한서대학교]

  •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 국보 제295호, 백제, 국립나주박물관, 모관 높이 17.0cm, 길이 21.1cm, 높이 19.6cm(부분)

  • 나주 신촌리 출토 금동관의 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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