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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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은 사찰의 영역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관문이기 때문에 비상한 건축적 장치를 갖춘다. 사천왕상을 담는 건물형태는 좋은 예이다. 이 속을 통과하는 형식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통 경사가 심한 지점에 세워 급한 계단으로 처리한다.

일주문은 사찰의 시작이다. 속세를 떠나 불교의 세계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겸손하게 맞이하되 격식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주문은 크기는 작지만 건축처리는 화려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둥 하나만으로 문이 이루어진다는 일주문의 명칭에 맞게 나무를 활용한 특정도 자주 관찰된다.

불교 건축의 문과 유교 건축의 문은 모두 나름대로의 독특한 격식과 다양성을 갖는다. 불교 건축에서 문의 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사찰의 산문을 들 수 있다.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으로 대표되는 산문은 각각의 고유한 불교적 의미와 산 속 지형에서의 지리적 의미를 갖는다. 이에 따라 각 산문의 고유한 격식의 전형이 생겨났다.

창과 문의 혼합은 창과 문 양쪽 모두에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주었다. 한국 전통 건축의 창이 크기·형태 등에서 유난히 다양한 주된 이유도 이것이 문의 기능을 겸하기 때문이다. 문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창은 문보다는 격식이 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창과의 혼합이 문에게는 격식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정식 문보다 열고 닫는 데 부담이 없도

창문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 이다. 창이면 창이고 문이면 문일 터인데 둘이 함께 쓰이다 보니 두 단어를 합쳐 창문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사물을 애써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한국적 인식의 발로이다. 어차피 다 같이 벽에 구멍을 뚫어 편리하게 쓰자고 만든 것인데 이런 기능을 만족시키면 되었지 그 이상의 구별은 수고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한국의 문에는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문은 유난히 다양하기도 하다. 격식을 차리는 한편으로 자유로운 다양성도 함께 보인다. 이것은 문이 창과 구별 없이 쓰인 데에서 연유한다. 한국 전통건축에서는 문과 창이 구별 없이 쓰인 경우가 많다. 개구부 하나가 문과 창을 겸하는 처리이다. 사람이 드나들면 문이요 그냥 열어놓아 햇빛과 바람이 들어오면

문은 창과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기능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기능의 차이는 구성형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사람이 드나들어야 하는 문은 일정한 크기 이상이어야 하며 동시에 일정한 격식도 갖추어야 했다. 영역과 영역을 가르는 공리적 기능에 더해 사람이 통과하는 관문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한국 전

보주처럼 건물의 용마루의 중심에 장식물을 올려놓는 예를 다른 불교 국가의 사원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 사찰에서는 지붕에 보병, 보주, 탑 등을 올려놓으며, 티베트 사원에서는 녹야원 초전법륜상 보당 등으로 치장한다. 또한 라오스나 태국에서는 사원 건물 지붕 용마루 중앙에 독소파라고 하는 스파이크 장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보주는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마니주, 여의주 또는 여의보주라고도 불리는 보주는 일정한 형상은 없으며, 맑고 사무치고 가볍고 묘해서 천하의 물건들이 모두 다 환히 비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번뇌, 고통을 없애 주는 신통력을 가진 영물로 여기고 있으며, 밀교에서는 보주가 발하는 빛이 부처의 진리가 시방세계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의 보주는 귀면이 있는 작은 집 위에 올려져 있는 형태인데, 그 모양이 경천사십층석탑의 상륜부와 닮았다. 이 탑의 상륜부 역시 작은 집 지붕위에 보주를 올려놓은 모양으로 되어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전각이 김제금산사에 있다. 대장전이 그것인데, 평면이 정사각형인 이 건물은 원래 이 절의 미륵전 장엄용으로 건립된 목탑이었으나 조선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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