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이사부 (異斯夫)
생몰년 미상, 신라 진흥왕대에 크게 활약한 장군, 정치가

 일명 태종(苔宗). 성은 김씨. 내물왕의 4대손으로,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대까지 활약한 신라의 대표적인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열전에 따르면, 이사부는 505년(지증왕 6) 신라 최초로 설치된 실직주(悉直州 : 지금의 삼척)의 군주(軍主)에 임명되었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 : 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점령하였다. 우산국 정복 당시 이사부는 사자 모양의 나무 조각상을 배에 싣고 가서 우산국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려 스스로 항복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사부는 진흥왕 때에 신라의 영토 확장과 체제 정비에 더욱 큰 업적을 쌓았다. 541년(진흥왕 2) 이사부는 병부령(兵部令)에 임명되었는데 상대등(上大等)까지 겸임하면서 정치?군사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550년(진흥왕 11년) 전후에 세워진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에 의하면, 당시 이사부는 2위 관등인 이찬의 자리에 있으면서 파진찬 두미(豆彌)와 무력(武力:김유신의 할아버지) 등을 이끌고 한강 상류지방을 경략하여 영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550년 1월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서로 충돌하는 틈을 타서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과 백제의 금현성(金峴城)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562년(진흥왕 23) 9월에는 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다함(斯多含) 등을 데리고 출정하여 대가야를 함락시켰다.


 이사부는 군사적인 방면뿐만 아니라 일반 정치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545년(진흥왕 6) 왕에게 국사 편찬을 건의하여 거칠부(居柒夫) 등으로 하여금《국사 國史》를 편찬하게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같이 이사부는 6세기 전반 지증왕 대에 신라가 동해안으로 오늘의 삼척, 강릉까지 영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진흥왕 때에는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상류 유역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나아가 6세기 후반 신라가 대가야를 복속하는 과정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등, 이사부는 505년(지증왕 6)에서 562년(진흥왕 23)까지 50여 년간을 활동하면서 신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562년(진흥왕 23) 이후 이사부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사부는 이후 어느 시기에 은퇴하여 사망하였거나 혹은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서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정개요]
-표준영정 지정년도 : 2011
-제작 작가 : 권오창
-영정크기 : 가로120㎝× 220㎝
-소장지 및 소장인 : 삼척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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