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날씨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소나기 예고에 우산을 챙기고, 한파가 온다는 소식에 옷장에서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기도 한다. 야외에서 식물을 돌보는 가드너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기 전에 피부에 와 닿는 바깥 공기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마치 가드너가 된 것처럼 절기의 순환을 알려주는 식물을 통해 24절기의 흐름을 경험해 보자.
24절기 중 한 해의 첫 절기인 입춘은 2월이다. 말은 입춘인데, 공기가 뼛속까지 차다. 땅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이 무렵에 씨앗을 파종하면 3월에 새순이 돋는다. 절기는 한 걸음 앞서 준비해야 때가 맞아지는 지혜다. 3월의 경칩이 오면 어느새 문 밖 공기가 닿는 순간 봄이 느껴지곤 한다. 겨울 동안 잠시 잊고 있던 식물의 성장을 보며 계절의 무르익음과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 즈음이다.
절기는 우리가 인지하는 계절의 감각보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앞서 있다. 이렇게 앞섰던 이유는 농사하기 전 준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창 추울 때 파종을 하고 약 3개월이 지나고 나면 5월 입하가 된다. 입하가 지나면 밖이 더워지고 하우스 안의 온도가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파종한 식물을 옮겨 담거나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없애느라 분주하다. 대략 8월 초에 접어드는 입추 무렵에도 여전히 무더위가 이어지지만 새벽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하늘이 높아지면서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체감한다.
입추가 지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11월이 된다. 손끝에 스며드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질 때, 입동의 시작이 느껴진다. 김장의 계절이 되며 겨울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겨울이 정점에 달하고 추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에도 식물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분주히 이루어 낸다. 푸르기가 변함없어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쉼을 전하기도 하고, 자기의 때에 맞춰 꽃을 피우기도 한다.
과거 절기는 파종과 같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알람이었다. 현대에서 절기는 계절보다 반걸음 앞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미리 알려주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절기는 농사를 짓지 않는 현대인들의 시간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24절기 안에는 변함없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 <어쩌면 이미 알다시미, 세시풍속 vol.1 원형들> 中
- ‘식물의 조금 더 예민한 시간 관념’ ⓒ 2022,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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