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

4편. 식물로 보는 24절기
등록일2023-01-16 조회수4192
식물의 계절

우리는 날씨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소나기 예고에 우산을 챙기고, 한파가 온다는 소식에 옷장에서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기도 한다. 야외에서 식물을 돌보는 가드너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기 전에 피부에 와 닿는 바깥 공기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마치 가드너가 된 것처럼 절기의 순환을 알려주는 식물을 통해 24절기의 흐름을 경험해 보자.

절기별 식물 혹은, 심상

24절기 중 한 해의 첫 절기인 입춘은 2월이다. 말은 입춘인데, 공기가 뼛속까지 차다. 땅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이 무렵에 씨앗을 파종하면 3월에 새순이 돋는다. 절기는 한 걸음 앞서 준비해야 때가 맞아지는 지혜다. 3월의 경칩이 오면 어느새 문 밖 공기가 닿는 순간 봄이 느껴지곤 한다. 겨울 동안 잠시 잊고 있던 식물의 성장을 보며 계절의 무르익음과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 즈음이다.

입춘부터 곡우까지(2월~4월)

        1.입춘(2월 4일) - 유채꽃
        입춘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노란색이 아닐까요? 언 땅을 뚫고 올라와 봄소식을 전하는 샛노란 유채꽃이 생각나네요.
        
        우수(2월 19일) - 물방울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 즈음엔, 초록 잎끝에서 매달렸다가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의 이미지가 생각나요.

        경칩(3월 5일) - 수선화
        겨우내 움츠렸던 봄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 시기죠. 3월에 만발하는 수선화를 추천해봅니다.

        춘분(3월 21일) - 매화
        3월의 마지막 무렵인 춘분은 남쪽에서 매화가 만발하는 시기입니다. 매화는 꽃도 예쁘지만, 초록색의 싱그러운 가지가 참 아름다워요.

        청명(4월 5일) - 진달래
        동네 뒷산에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이죠. 흐드러져 만발하기보다는 무심하고 듬성듬성하게 피어나는데, 그 여백이 참 예뻐요.

        곡우(4월 20일) - 비
        이맘때쯤에는 곧 비가 올 듯한 묵직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물가에서 빗방울이 수면에 닿는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어져요.
입하부터 처서까지(5월~8월)

절기는 우리가 인지하는 계절의 감각보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앞서 있다. 이렇게 앞섰던 이유는 농사하기 전 준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창 추울 때 파종을 하고 약 3개월이 지나고 나면 5월 입하가 된다. 입하가 지나면 밖이 더워지고 하우스 안의 온도가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파종한 식물을 옮겨 담거나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없애느라 분주하다. 대략 8월 초에 접어드는 입추 무렵에도 여전히 무더위가 이어지지만 새벽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하늘이 높아지면서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체감한다.


        입하(5월 5일) - 귀룽나무
        5월의 시작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귀룽나무요 귀룽나무의 꽃이 눈처럼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 봄과 여름 사이 어느 시간의 중간에서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껴요.

        소만(5월 21일) - 벼
        5월 끝자락은 모내기철이에요. 소만이 지나고 나면 진짜 여름의 시작인 거죠.
        이윽고 푸르른 물결을 만들 초록빛 여린 벼가 소만과 가장 어울리는 식물이 아닐까요.

        망종(6월 6일), 하지(6월 21일) - 매실나무
        6월은 매실이 열리는 시기에요. 매실은 꽃도 예쁘지만, 그 토실한 열매가 맛있어서 6월에는 매실청을 종종 담그곤 해요.

        소서(7월 7일) - 보리
        보리는 10월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이듬해 7월 소서 즈음에 수확해요. 싹이 난 채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아직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이른 봄에도 초록을 보여주죠.

        대서(7월 23일), 입추(8월 7일) - 수박
        절기상으로 가장 더운 때와 가을로 접어드는 때가 맞붙어 있어요. 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라 수박이 생각나네요! 튼실한 수박 한 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줄기에 단 하나의 꽃만 남겨야 해요.

        처서(8월 23일) - 능소화
        능소화가 만발할 무렵이죠. 어릴 적 가족여행으로 마이산에 갔었는데, 절벽에 피어난 능소화를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그 꽃이 능소화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백로부터 대한까지(9월~1월)

입추가 지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11월이 된다. 손끝에 스며드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질 때, 입동의 시작이 느껴진다. 김장의 계절이 되며 겨울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겨울이 정점에 달하고 추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에도 식물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분주히 이루어 낸다. 푸르기가 변함없어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쉼을 전하기도 하고, 자기의 때에 맞춰 꽃을 피우기도 한다.


        백로(9월 8일), 추분(9월 23일) - 밤
        가을의 정점 9월이라면, 역시 속이 꽉찬 알밤 아니겠어요?

        한로(10월8일) - 국화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하고 탐스러운 국화의 절기죠.

        상강(10월 23일) - 서리
        이맘때쯤엔 서리가 내려요. 반짝이는 서리가 어스름한 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새벽 풍경은 보석이 내린 듯 아름답죠.

        입동(11월 7일) - 배추
        입동과 함께 김장이 시작되죠. 잘 여문 배추와 알 굵은 무가 생각나네요.

        소설(11월 22일), 대설(12월 7일), 동지(12월 22일) - 전나무
        겨울이 정점에 달하는 세절기예요. 꽃들이 화려한 색을 거두고 겨우내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한(1월 5일), 대한(1월 20일) 동백
        저는 추위가 최고조에 달할 때, 잠시 육지를 벗어나 따뜻한 제주도에 가 있는 걸 좋아해요. 이맘때 제주도에 가서 듬뿍 피어난 붉은 동백을 보며 새로운 한 해를 보낼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고 온답니다.
절기의 의미

과거 절기는 파종과 같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알람이었다. 현대에서 절기는 계절보다 반걸음 앞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미리 알려주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절기는 농사를 짓지 않는 현대인들의 시간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24절기 안에는 변함없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자료출처(발췌 및 재구성)
  • <어쩌면 이미 알다시미, 세시풍속 vol.1 원형들> 中
  • ‘식물의 조금 더 예민한 시간 관념’ ⓒ 2022,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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