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채록

이말순 / 1949년 2월 12일(양)
이말순 한국전래음식연구회 고문 이미지
  • 구술자명 이말순
    생산자 한국문화원연합회
  • 면담자 김선정, 김세경
    검독자 김선정, 김세경
  • 면담횟수 3회
    면답총시간 05시간 37분 24초
  • 면담일시
    1차 : 2019년 12월 09일
    2차 : 2019년 12월 13일
    3차 : 2019년 12월 18일
  • 면담장소
    1차 : 이말순 선생님 자택(홍제동 어울림아파트)
    2차 : 모임공간 헤오(마포구)
    3차 : 모임공간 헤오(마포구)
간략소개
고향 이야기와 성장 과정, 가족 이야기, 효성여대 가정과 학창시절,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으로 재직한 직장 이야기, 어머니의 음식 이야기, 강인희 선생님과의 15년 함께한 인생사 이야기, 시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부산 음식, 지역별 기후별로 차이를 보이는 김치, 된장, 고추장 등 지역 향토음식 이야기, ‘한국의 맛’을 통해 전하는 강인희 선생님 음식과 전수 이야기, 강인희 선생님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식과 제자들, 반가음식 이야기, 잡채 시연과 이야기, 한국전래음식 연구회 이야기.
구술사업의 개요

본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문화원 연합회가 수행하는 한식문화구술채록사업이다. 한식 문화 관련 인사들의 경험과 삶을 통한 구술 자료를 수집 보존하여 한식의 역사를 정리하여 학문적 체계를 세울 뿐 아니라 한식문화 관련 분야 발전을 위한 토대 사업이다. 해방이후 현대 한국음식문화 형성과 변화과정의 한 축을 담당해왔거나, 지근에서 목격해 온 전통음식 계승자, 관련 분야 교육자(가사, 가정, 영양, 식품학), 요리연구가, 전문 조리사 및 식품산업계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식 문화와 관련된 구술을 채록하고 디지털 아카이빙을 추진하고 문화콘텐츠로 제작되어 일반인에게도 서비스될 것이다.

구술자 간략 이력

1949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산운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아버님의 영향으로 교육계로 진출한 형제가 여러 명이다. 구술자도 대구교육대학을 진학하여 옥산국민학교에서 잠시 초등교사생활을 하였고 효성여대 가정과로 편입하여 졸업한 후 효성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76년 결혼하여 시댁인 부산으로 가게 되어 교직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집안의 연결로 이천의 강인희 선생님 문하로 들어가게 되어 1986년부터 2001년 강인희 선생님이 타계하시기까지 15년 동안 강인희 선생님께 사사를 받고 한국전래음식의 전승자가 되었다. 이후 이화여대와 농심(주)에서 강의와 교육을 하였고, 한국전래음식연구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술자 자료 내용

본 구술 자료는 한국전래음식의 대가 강인희 선생님의 제자인 이말순 선생님이 직접 경험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 경북 의성에서 먹었던 호박범벅, 산운식혜, 토란국, 국수 등 지역 특산물이나 방식으로 조리한 고향 음식들, 부산 시어머니의 음식을 통해서 본 부산지역 음식들, 그리고 스승인 강인희 선생님의 반가음식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지역에 따라 ‘김치’와 ‘장’을 담는 방법의 차이 등을 소개하고 있다. 강인희 선생님의 음식들, 집필, 활동, ‘한국의 맛 연구회’ 이야기들이 생생히 수록되어있으며 특히 강인희 선생님의 음식에 대한 철학, 구술자가 직접 경험 한 재료준비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그 철저함이 그 일을 직접해온 구술자의 이야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러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통해 한식의 중요함과 고귀한 가치까지 느낄 수 있다.

구술 의의 및 특성

이말순 선생님은 반가음식과 전래음식의 대가인 강인희 선생님의 전승자로서 한식 문화 발전과 전승에 있어 현존하고 있는 중요한 인물 중 한 분이다. 문헌에 나온 특색 있는 고유의 조리법과 식재료들을 실제 경험으로 자세히 알고 있으며 문헌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조리법들을 보존하고 있다. 본 구술 자료는 이러한 측면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전래음식의 대가가 전하는 한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스승 강인희 선생님의 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철학을 수록함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전래음식과 반가음식을 재조명하고 문헌으로만 전해온 한계를 극복하여 한식문화의 기초자료 형성에 기반이 될 수 있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여겨진다.

주요어

반가음식, 향토음식, 대추죽, 호박범벅, 산운식혜, 점주, 단술, 감주, 식혜, 김치, 장, 토란국, 고등어국, 칼치국, 한국의 맛, 궁중강정, 동아정과, 한식, 약식, 한국인의 보양식, 사슴포, 어육장, 간장, 된장, 메주, 곤자소니, 농심, 조랭이 떡국, 구선왕도고, 석탄병, 복령조화고, 시상, 감가루, 두텁떡, 증편, 무형문화재, 한국식문화학회, 잡채, 움파산적,’, ‘한국의 맛 연구회’, 제사와 차례, ‘한국전래음식연구회’.

2015년 ~ 현재
한국전래음식연구회 고문(현)
2008년
'농심 음식문화원' 연구원
2008년 ~ 2009년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전통음식 강의
2001년 ~ 2005년
'한국의 맛' 연구회 수석부회장
1986년 ~ 2001년
강인희 선생님 조교
1976년
결혼
1974년 ~ 1977년
대구 효성 여자 중학교 가정과 교사
1971년 ~ 1974년
효성여자대학교 2학년 편입 과 졸업
1969년 ~ 1970년
옥산 국민학교 교사
1969년
대구 교육대학 졸업
1967년
대구 신명여자고등학교 졸업
김선정 /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전임연구원
2008년
한국외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
2014년 ~ 2018년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겸임교수
2012년 ~ 2014년
대통령기록관 연구지원심의회 의원
2011년 ~ 2019년
국가기록원 민간기록물 수집자문위원
2009년 ~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고도화연구단 수집관리실장
2005년 ~ 2015년
한국구술사연구회 회장
2001년 ~ 현재
한국외대, 건국대 등 다수 대학에서 강의
2009년 ~ 현재
국립예술자료원, 국립국악원, 문화재연구소,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등 다수 구술사 관련 특강 및 워크샵 주최
2005년
『구술사-방법과 사례』,한국구술사연구회편, 선인, -공저
2008년
(학위논문)"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08.
2009년
『한인의 미국 이주 시기 구분과 특징』, 남북문화예술연구,
2010년
『모현사람과 갈월마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3년
『시장과 시장사람들』, 선인.
2014년
『향교 서원과 용인사람들』, 선인.
2014년
『구술사- 아카이브구축 길라잡이1』, 선인.
2017년
『구술사- 아카이브구축 길라잡이2』, 선인.
김세경 / 가톨릭관동대학교 겸임교수
2019년
가톨릭관동대학교 일반대학원 외식경영학 박사
2018년 ~ 현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
2018년 ~ 현재
예림회 회원
2014년 ~ 현재
강릉식생활네트워크 이사
2019년 ~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겸임교수
2018년 ~ 현재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NCS일학습병행 시험출제 위원
2017년 ~ 현재
강릉로컬푸드 연구소 '연미소' 대표
2008년 ~ 현재
강릉시 농업기술센터 김치.저장발효 강사
2019년
강릉커피축제 특산음식 홍보 및 쿠킹쇼
2018년
청소년 요리토크 페스티벌
2012년 ~ 2018년
강릉 농업기술센터 특산음식 마을 전문멘토
2015년 ~ 2017년
한중대학교 강의
2017년
2018 동계올림픽 강릉푸드페스티벌 쿠킹클래스
2017년
러시아 문화원 초청 한식행사 시식 및 시연 행사
2016년
2018 동계올림픽 대비 홈스테이 조리교육
(1회차)
1. 구술사업의 취지 설명과 어린 시절
  •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식사 때마다 무공해 식재료 음식을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있음.
  • 식재료가 많지 않았던 겨울철에 대추죽, 조청 등을 간식으로 먹었는데, 특히 볶은 콩가루를 묻힌 배추꼬랭이, 늙은 호박 등을 먹으며 단백질을 많이 섭취함.
  • 몸이 좋지 않을 때 어머니가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미역과 함께 끓인 보양식을 만들어주셨음.
  •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일꾼들 별로 밥그릇과 상의 모양이 다 달랐기 때문에 매끼마다 어머니가 다섯 상을 차렸음.
  • 농사를 지었던 할아버지가 일꾼들의 식사를 매우 각별하게 생각했음. 본인 상에만 올라왔던 돔배기를 일꾼들 상에 옮겨놓으셨던 기억이 남.
2. '호박범벅'과 '산운식혜'
  • 지금의 '범벅'과 그 당시의 '범벅'은 차이가 있는데, 지금의 범벅은 쌀가루를 넣어 끓인 죽에 가깝고, 옛날 범벅은 콩 같은 것을 버무려서 만든 것임.
  • 보름이 되면, 늙은 호박, 멥쌀가루, 콩을 함께 끓여 만든 ‘호박범벅’을 먹었음.
  •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산운식혜’는 찐 고두밥에 엿기름, 밤, 배, 대추, 생강,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 식혜임. ‘안동식혜’와는 차이가 있어 가족들끼리 ‘산운식혜’라고 부름.
  • 어머니가 영양학적 상식을 기반으로 ‘산운식혜’를 만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 장지현 선생님이 “감기예방약이자 소화제”라고 평하심.
  • 산운 지역에서는 ‘점주’, ‘단술’, ‘감주’에 대한 구분이 확실했지만, 강인희 선생님 댁에 오니 ‘식혜’와 ‘단술’에 대한 구분이 거의 없었음. 로컬(지역)음식과 반가음식의 차이라고 생각함.
  • 오늘날은 ‘점주’, ‘단술’, ‘감주’를 구분하지 않고 통칭하여 ‘식혜’라고 하지만 사실 구분할 필요가 있음.
  • '점주’는 찹쌀로 만들었으며 점성이 들어가므로 점주라 칭함. 옛날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주로 만들었고, 지금의 식혜가 점주임.
  • '단술’과 ‘감주’는 같은 말로 멥쌀로 만듦. ‘점주’와 달리 평소에도 자주 먹었는데, 아버지 회갑 때 손님들께 감주를 대접했던 기억이 있음.
3. 지역에 따라 다른 '김치'
  • 친정에서는 '김치'를 '짠지'라고 부르기도 하고 방식에 따라 '물김치'라고 부르기도 함. 짠지를 떡국이나 김치밥국 등을 끓일 때 같이 넣어서 끓여먹곤 했음.
  • 어머니는 김치에 찹쌀 풀을 넣고 젓갈은 쓰지 않았으며, 양념으로 고추, 파, 마늘을 넣으셨음.
  • 부산의 시어머니는 김치에 젓갈을 많이 넣으셨는데, 직접 뽑은 멸치액젓을 사용함.
  • 친정이나 부산은 김칫독을 땅에 묻어도 바로 파냈는데 나중에 이천, 서울권에 오니 몇 년을 계속 묻어 두는 것을 보고 지역 간 차이를 느낌.
  • 특히 친정, 부산에서는 기후 탓으로 쉽게 못 먹던 동치미를 이천에서 먹고 감명받은 기억이 있음.
  • 본가와 부산은 따뜻한 지역이므로 김치속을 많이 넣지 않은 반면, 이천의 강인희 선생님은 배추 한 장 한 장마다 속을 넣으심.
4. 지역에 따라 다른 '고추장'
  • 친정에서는 찍어먹을 용도의 윤집장(초장)과 찌개용 장, 두 가지의 장을 담금.
  • 부산의 고추장은 회를 먹기 위해 달게 담는 경향이 있음.
  • 이천의 강인희 선생님이 담근 고추장은 물이 밑에 가라 앉아 있고 장은 위로 둥둥 뜨기 때문에 사용할 땐 저어줘야 했음.
  • 친정은 생선이 드문 지역이라 찌개를 많이 하지 않았고, 만들어도 된장이나 청국장을 주로 끓이셨음. 찌개에는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사용함.
  • 부산은 찌개를 많이 끓였는데 생선이 싱싱한 지역이기 때문에 주로 매운탕을 끓이셨으며, 고추장보다는 고춧가루를 사용함. 반면 이천은 고추장을 사용해 찌개를 끓임.
  • 이천은 고추장 메주는 간장 메주를 쓰지 않고 따로 만드는데 고추장은 찹쌀로 담가서 순창고추장과 비슷함. 메주는 삼복 때 콩과 백설기를 같이 찧어서 도넛처럼 만들어 띄워 고추장 메주가루를 준비해 두었다가 동지 때 담금.
5. '토란국'에 대한 기억
  • 어린 시절, 겨울이 되면 어머니가 토란국을 끓이심. 북어나 멸치로 국물을 내거나 혹은 맹물로 끓이기도 함.
  • 북어로 국물을 낼 경우, 북어를 들기름에 볶고 속뜨물(숭늉)에 넣은 후 토란과 들깨즙을 넣어 토란국을 만들었음.
6. 교사 사직 후 효성여대 가정학과로의 편입
  • 1964년 대구 신명여고 입학을 계기로 대구 생활을 시작함. 이후 대구교육대학으로 진학하여 옥산 국민학교에서 1년 2개월 간 교사로 재직하였음.
  • 교대로 진학한 이유가 본인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권유였으므로 교사생활 중 많은 회의감을 느낌.
  •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불란서로 발령이 난 형부를 따라 가려던 와중, 본적지 조회상의 오류로 신원조회가 되지 않아 계획이 무산됨.
  • 교대에서 2년 과정을 마쳤으므로 3학년에 편입하려 했지만, 동종계열이 아니어서 효성여대 가정과 2학년으로 편입하게 됨.
7. 효성여대 재학 당시의 기억
  • 박정희 정부 당시였기에 데모가 잦은 시기였지만 효성여대 학장(총장)님이 이를 엄격히 통제함. 뿐만 아니라 복장에 대한 검열도 심했음.
  • 다른 학교에 비해 실습이 많았는데, 요리, 재봉, 식품가공 등 다양한 수업을 받음.
  • 효성여대는 졸업을 인증하면 2급 정교사 자격이 주어졌고 당시 학교의 인식도 좋았기 때문에 졸업하자마자 무리없이 효성여자중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음.
8. '한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강인희 선생님과의 만남
  • '한식'을 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음식을 만들면 아버지가 맛있다고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있음.
  • 처음 강인희 선생님께 갔을 때도 오래 머무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을 옆에서 도우며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됨.
  • 선생님 밑에서 '반가음식'을 처음 알게 되었고 선생님 저서인 『한국의 맛』 교정을 보며 두텁떡, 혼돈병, 석탄병 등 생소하고도 새로운 음식을 많이 접할 수 있었음.
  • 당시 하루하루 매우 바쁜 생활을 보냈지만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 생각함.
9. 효성여중에서의 교사생활과 가정교과목 교육내용(1)
  • 당시 가정 과목은 ‘가정’, ‘가사’로 구분되어 있었고 현실에 밀접한 내용이 많았음.
  • '가정’은 칠(7)첩반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카레를 어떻게 만드는지 등을 다루었고, ‘가사’는 뜨개질할 때 대바늘, 코바늘을 어떻게 뜨는지 등 실질적인 내용을 주로 다룸.
  • 요즘 가정 과목을 비롯한 전반적인 교육은 기초가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뿌리는 없고 나무만 컸다는 생각이 듦.
10. 효성여중에서의 교사생활과 가정교과목 교육내용(2)
  • 지금은 교육과정이 입시 위주로 바뀌었지만, 당시 교육은 실생활을 바탕으로 했음. 예를 들면, 바느질도 홈질, 휘감치기, 감치기 등을 하나하나 가르침.
  • 현 세대들은 기술의 발달로 편리성은 높아진 반면, 바느질은 세탁소 기계, 단순계산은 계산기, 길은 네비게이션에게 모두 맡기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듦.
11. 결혼 후 부산에서의 생활과 부산의 음식 특색
  • 교사생활을 마친 후 1976년에 결혼을 하면서 부산에 처음 가게 됨.
  • 바닷가 도시이다보니 해물, 해조류, 어패류 음식을 주로 하였는데, 아주 싱싱한 재료를 사용함.
  • 친정은 제사를 지낼 때 조기 한 마리를 겨우 구웠는데, 부산에 오니 시어머니가 다양한 종류의 생선을 손질한 다음 한 대접 가득 쌓아놓으셨던 기억이 있음.
  • 생선은 손질 후 소금을 하루 쳐놨다가, 그 다음 날 씻고 햇볕에 다시 말림. 그리고 찜기에 나무젓가락을 깔아 붙지 않게 한 상태로 살짝만 찐 다음, 먹을 때 하나씩 꺼내어 구워먹었음.
  • 시어머니께서 새우와 홍합을 넣은 미역국,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매운탕을 자주 하셨고, 지리 종류의 일본음식도 자주 하심.
  • 시어머니가 ‘고등어국’과 ‘갈치국’을 끓이셨던 기억이 강렬한데, 비릴 줄만 알았던 국을 막상 먹으니 매우 맛있어서 깜짝 놀람.
  • 고등어국은 손질한 고등어를 적은 양의 물로 삶은 후 뼈를 골라내고 부추, 배추 등을 넣어 토장국으로 끓임.
12. 강인희 선생님과 집안 사람들 간의 인연
  • 집안 사람들이 모두 강인희 선생님과의 인연이 깊으며, 외형적으로도 닮아서 친딸이 아니냐는 질문도 자주 받았음.
  • 시어머니와 선생님 간의 사이가 굉장히 좋았는데, 1986년도에 시어머니의 소개로 처음 선생님을 만난 후 2001년까지 함께 하며 전수를 받음.
  • 선생님이 어머니께 조언을 드린다거나, 크고 작은 가정 문제에 도움을 주신 일도 있음.
  • 우연한 기회로 12대 할아버지 때부터 선생님 집안과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
13. 강인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 강인희 선생님은 동아대학교 가정과에 계시다가 명지대학교로 이직하신 후 그곳에서 정년퇴임을 하심.
  • 책임감이 강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 요리에도 그대로 반영됨. 또 뭐든 직접 보고 와야 하는 성격이시기에 집필하신 『한국의 맛』도 굉장한 공을 들인 책이라 생각함.
  • 강정을 만드는데 거의 20일 정도가 소요되는데 결과물이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만들었던 기억이 있음. 이 때 사용한 기름은 절대 두 번 쓰지 않으심.
  • 수도 없이 강정을 만들었던 옛 기억에 지금도 선생님 강정(궁중강정)은 가르치지 않고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개성약과를 주로 가르침.
  • 뭐든 푸짐하게 많이씩 만들었는데 동아정과를 만들 때에도 한두 개가 아닌 동아 한 냄비, 조개(꼬막) 가루도 한 자루 단위로 사용했음.
  • 선생님은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셨지만 항상 음식을 영양학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심.
(2회차)
1. 강인희 선생님과 한국전래음식연구회
  • 강인희 선생님은 새 회원이 들어오면 이런 저런 일을 많이 시켰음.
  • 이천에 있을 때도, 김치를 백(100)포기씩 하고, 그 와중에 떡을 만드는 등 푸짐한 성격이었음.
  • 약식도 8kg씩 하고, 일곱(7)시간, 여덟(8)시간씩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함
  • 부산에서 이천까지 음식을 배우러 오던 회원이 있었는데, 매번 이전 수업에 배운 음식을 해서 보여드렸던 일화가 있음.
  • 어떤 요리를 하든 귀찮아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 하는 것이 중요함.
2. 어린 시절의 음식 이야기
  • 어린 시절에 국수를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음.
  •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 때 한번씩 흔들어줘야 하는데 그냥 흔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 지내자'는 주술을 외워야 잘 된다는 말을 큰 언니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음.
  • 음식재료에 정성을 담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큰 언니의 말은 강인희 선생님이 누룩 빚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음.
  • 어머니가 밀가루로 국수반죽을 할 때 아주 얇은 두께로 밀었던 기억이 있음.
  • 국수를 만들 때는 특별한 재료 없이 양념 간장과 호박, 참기름, 깨 등과 같은 간소한 재료로만 만들었음.
  • 특히 국수를 자르고 난 뒤 남는 꼬랑지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을 참 좋아했음.
3. 강인희 선생님과 함께하며 기억에 남는 일
  • 강인희 선생님이 책을 쓸 때마다 교정을 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음.
  • 1986년에 ‘전통음식연구소’가 설립되고, 강인희 선생님이 일을 맡기면 일을 도와주던 아줌마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음식을 했어도 기분이 좋았음.
  • 1986년 여름에 홍일식, 이철우, 이귀주, 이기열, 황혜성 선생님이 모일 때, 김정규 할머니와 성마마님이 이천에 오셔서 음식을 준비해 드리곤 했음. 그런 자리에서 식문화학회가 발기(發起)되지 않았나 생각함.
  • 1988년 올림픽 당시에 강인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이훈석 관장과 이춘자 과장을 주축으로 ‘음식문화 오천년전’이라는 전시를 준비함.
  • 당시에 출품한 음식들을 모아, 황혜성 선생님이 《향토음식》이라는 책으로 출판함.
  • 1987년에는 《한국의 맛》을 출판함. 책 겉표지의 '한국의 맛' 글씨는 붓글씨를 잘 쓰던 유치웅 박사님의 필체임.
4. 《한국인의 보양식》 출판 준비 과정에서의 일화
  • 《한국인의 보양식》에 있는 음식사진들은 모두 직접 만들어서 촬영한 것임.
  • 사진 촬영에서부터 레시피 설명, 맞춤법까지 강인희 선생님 감독 아래 철저하게 이루어짐.
  • 책에 수록될 임금님 수라상 사진 촬영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김정규 할머니가 도와줌.
  • 이방자 여사의 생신상 사진에 나오는 유기를 종이에 싸지 않은 것 때문에 학회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음.
5. 《한국인의 보양식》에서 기억에 남는 음식
  • 강인희 선생님이 직접 사슴고기를 사고 포를 떠서 만든 사슴포가 기억에 남음.
  • 책에 나오는 모든 레시피와 사진, 음식의 효능, 설명 등은 모두 강인희 선생님이 직접 공부해서 알아보고 만든 것임.
  • 손이 많이 가는 어육장을 강인희 선생님이 직접 일 년에 한 번씩 담갔음.
  • 돼지머리를 손질하여 편육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였음.
6. 강인희 선생님의 '장'과 농심(주)에서 곰탕 준비 시 '곤자소니' 일화
  • 강인희 선생님이 간장을 담글 때, 콩을 한(1) 가마를 손질하고 찧어서 메주를 정성스레 띄움.
  • 보통 간장 항아리가 일곱(7)개에서 여덟(8)개 있는데, 오래된 순서에 따라 다양한 재료로 쓰이고 1번 간장은 육포나 약식에 사용했음.
  • 강인희 선생님께 배운대로 성의껏 수업을 하고 있음.
  • 이말순 선생님의 추천으로 농심에서 강의를 하고 자료를 남김.
7. 강인희 선생님의 인품
  • 방송 출연을 하더라도 강인희 선생님은 출연료나, 재료비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음.
  • 심사를 하러 갔다가, 밤에 은밀히 주는 봉투를 보고 다시는 심사하러 가지 않게 된 일화가 있음.
  • 책을 쓰는 일이든, 음식을 하는 일이든 대가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심.
  • 음식을 하실 땐 언제나 많이 하여, 가족과 지인들에게 모두 나누어 줌.
  • 서울대 권영대 박사님의 사모님이 개성음식을 가르쳐 주러 온 일이 있었는데, 개성에서는 조랭이떡 떡국을 이성계 목 자르기 떡국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
  • 어떤 음식이든 만드는 것부터 담는 그릇, 모양새까지 모두 신경 써서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후손들에게 좋지 않겠냐는 말씀을 했다고 함. 되도록 남들이 안했던 음식을 주로 하려고 함.
  • 강인희 선생님의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음식을 더 잘한다고 함.
8. 강인희 선생님의 대표 음식
  • 강인희 선생님의 대표음식은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 석탄병(惜呑餠), 복령조화고(茯苓造化糕)임.
  • 구선왕도고에 재료로 들어가는 깨끗한 한약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나중에는 만들지 않았음.
  • 곶감을 볕에 말렸을 때 생기는 흰색의 가루가 시상(柿霜)인데, 이런 곶감은 수입산이라는 방송을 보고 어처구니 없었음.
  • 석탄병은 삼키기 아까울정도로 맛있는 떡이라는 뜻임.
  • 석탄병에 감가루가 들어가는데 요즘은 팔지도 않고 만드는 과정도 복잡함.
  • 행사가 있을 때, 강인희 선생님이 주로 하던 음식은 구선왕도고, 석탄병, 두텁떡, 증편이었으나, 행사나 전시회 자체를 잘 안하려고 함. 그 이유는 전시가 끝나면 음식을 모두 버리기 때문에 아까워서임.
  • 전시회 요청이 있어 한번 했다가, 많이 고생한 기억이 있음.
9. 강인희 선생님의 반가음식과 음식에 대한 열정
  • 강인희 선생님은 원래 반가음식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
  • 황혜성 선생님이 궁중음식으로 무형문화재가 되자, 주위 사람들이 강인희 선생님에게 반가음식으로 무형문화재를 하시라는 말을 함.
  • 반가음식이라는 말은 무형문화재 등록과정에서 쓴 말일 뿐, 강인희 선생님은 본인의 음식이 반가음식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음.
  • 음식을 배우고자 하는 강인희 선생님의 열정은 언제나 한결 같았음.
  • 특히 강인희 선생님이 직접 빚는 증편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아, 증편 잘한다는 사람을 몇 번이고 불러서 배운 적이 있음.
  • 어릴 적, 어머니와 언니가 증편을 만들기 위해 떡가루를 치다 팔다리가 많이 상했음.
  • 쌀가루를 쇠절구에 치게 했던 강인희 선생님 몰래, 일 도와주는 아주머니와 함께 기계에 갈았던 기억이 있음.
  • 증편을 만들 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될 때까지 반복하여 증편을 만들었음.
(3회차)
1. 전통 잡채와 오늘날 한식
  • 지역에 따라 잡채 종류는 다양하지만, 우리의 전통 잡채는 당면이 많이 들어간 요즘의 잡채와는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함.
  • 강인희 선생님은 항상 옛날 고서(古書)를 보거나 내림음식 등을 보고 공부하셨음.
  • 국가예산을 지원받아 한식재단 같은 곳에서 제대로 된 한식교육을 했으면 함.
  • 미국에서 중국 사람이 한식을 가르친다는 이야기와 조리고등학교 한식과가 점차 없어진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움.
  • 요즘 셰프(chef)들은 외국음식을 주로 하는 것 같고, 우리 음식을 제대로 본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움.
2. 다양한 떡국 이야기(1)
  • 어린 시절, 어머니와 십(10)리 길을 걸어 기계로 떡을 빼가지고 왔음.
  • 집에서 떡국을 끓일 때, 샘물을 끓인 것과 떡국에 항상 두부를 넣었던 것이 기억에 남음.
  • 두부를 짜게 조려서 떡국을 끓이면 간이 되어, 특별한 고명이나 육수가 없어도 맛이 있었음.
  • 결혼을 하고 부산에 있는 시댁에서 먹어본 떡국에는 홍합으로 국물을 내고, 친정에서처럼 두부를 넣는 것이 인상적이었음.
  • 강인희 선생님의 반가식 떡국 떡은 앞에 있는 상대방이 보일 정도로 얇게 썰었음. 떡을 뽑을 때 뜸을 많이 들이기 때문에 떡을 얇게 썰어도 끓일 때 퍼지지 않았음.
  • 반가에서는 양지국물로 떡국을 끓였음.
3. 다양한 떡국 이야기(2)
  • 김정규 할머니와 성마마님이 올 때, 떡국 떡을 얇게 썰고, 그 위에 고명으로 움파산적을 썼음.
  • 움파는 말 그대로 움 속에 들어있는 노란색 파인데, 요즘은 움파를 찾아보기 힘듦.
  • 반가에서 만드는 떡국은 양지국물, 얇은 떡, 움파산적을 이용하여 만들었음.
  • 친정과 시댁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지 않았으나, 강인희 선생님은 만두를 넣었음.
  • 강인희 선생님은 새해에 손님들이 오면 떡국뿐만 아니라 약식, 빈대떡, 식혜를 만들었음.
4. 강인희 선생님이 남긴 자료와 활동
  • 강인희 선생님이 남긴 자료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이방자 여사의 육십(60) 가례 자료임.
  • 코엑스가 지어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요리경연대회가 개최되어 강인희 선생님이 큰상 임매상을 찬조 출품 전시했음.
  • 강인희 선생님은 음식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담음새까지 중요하게 여겼음. 특히 이왕가 그릇을 매우 아꼈음.
  • 강인희 선생님은 언제나 음식을 푸짐하게 담았고, 그만큼 음식도 많이 하셨다고 함. 된장이나 간장도 콩 한 가마가 들어갈 정도로 담았다고 함.
  • 강인희 선생님 말씀으로는 옛날엔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원래 백(100)일 상이라는 건 없다고 함.
  • 코엑스 전시 이후, 다시는 전시회를 하지 않는 이유는 행사가 끝난 뒤, 버리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였다고 함.
5. '한국의 맛' 연구회 설립 과정과 배경
  • 2001년 강인희 선생님 별세 후, 선생님을 기억하기 위해, 연구소 회원들이 십시일반 하여 서울에 ‘한국의 맛’ 연구회를 설립함.
  • 특히 목요회 회원들은 강인희 선생님과 친한 분들로 현기순, 이인희, 윤서석, 이기열, 조창숙, 손호연 선생님 등이었음.
  • 강인희 선생님 생전에는 목요회 회원들과 함께 프라자 호텔 등으로 맛 탐방을 하곤 했으나, 요즘 호텔에서는 한식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는 것 같음.
  • 한식을 선진화, 세계화 한다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우리의 정통 한식을 잘 알지 못한 채, 모던한식 같은 장르를 만드는 것이 안타까움.
6. '한국의 맛' 연구소 초기 회원들 이야기
  • 조후종, 김진원, 신현희, 윤숙자, 박혜원, 허채옥, 이춘자, 김귀영, 김명순, 이지호 선생님 등이 연구소 초기 회원임. 현재는 주로 대학, 연구소 등에서 한식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활동 중임.
  • 회원은 기수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강의를 하는 요일을 붙여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음.
  • 김윤자, 윤옥희 선생님 등 회원중에는 당시 요리학원을 운영하던 분들도 있었음.
7. 강인희 선생님 별세 후 '한국의 맛' 연구회 활동(1)
  • 조후종, 장선용 선생님이 공동회장을 맡다가, 후에 전정원 선생님이 회장을 이어 받음.
  • 장선용 선생님도 강인희 선생님께 음식을 많이 배워,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과 같은 책을 내기도 함.
  • 김옥길 총장님이 쓰던 냉면 기계에 대한 일화가 있었음.
8. 강인희 선생님 별세 후 '한국의 맛' 연구회 활동(2)
  • 연구회는 일반반과 연구반으로 구분되어 있었음.
  • 강인희 선생님의 음식을 재현하기도 하고, 회원들이 알고 있는 음식을 하기도 했음.
  • 《전통 건강 음료》를 비롯하여, 《한국의 나물》, 《제사와 차례》등의 책을 출판함.
  • ‘한국의 맛’ 연구회는 이천에서 남태령으로, 다시 서초동으로 이사함.
  • 연구회를 서초동으로 옮기고, 자택인 양평으로 간 뒤, 강의하러 다니는 일이 상당히 힘들었음.
9. '한국전래음식연구회' 설립
  • ‘한국 전래음식 연구회’는 2015년에 설립 되었고, 두 개의 연구반으로 구성됨.
  • 현재는 조희숙 선생님께 회장직을 부탁하여 운영 중임.
  • 금요팀은 레시피 전담, 토요팀은 사진 전담으로 하여, 자료를 정리하고 강의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음.
10. 강인희 선생님께 받은 가르침
  • 음식뿐만 아니라, 언제나 타인을 걱정하고 험담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배움.
  • 누구에게라도 배울 점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배우는 자세와 어떤 일이라도 철두철미하게 생각하고 임하는 자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음.
11. 음식을 배우며 느낀 점
  • 강인희 선생님과 너무 많은 음식을 했었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 음식을 하지는 않았음.
  • 맛이 있든 없든, 직접 만든 음식은 절대 버리지 않음.
  • 세월이 흐르다보니, 어떤 음식을 잘 한다, 맛있다,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일을 하려면 어려운 점이 있음.
  • 강인희 선생님께 배운 대로, 좋은 재료를 구해 음식을 하고 싶지만, 요즘 시중에서 좋은 재료를 찾기 힘듦. 시골에 사는 회원들이 직접 재배한 재료를 보내 줄때가 가장 좋음.
  •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크게 느낀 두(2) 가지 중, 첫 번째는 ‘음식 배우기를 잘한 것’ 이고, 두 번째는 ‘신앙생활’을 한 것임.
  • 우리 음식을 잘 알아야 세계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우리 음식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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