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채록

이종미 / 1942.03.05(양)
이종미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미지
  • 구술자명 이종미
    생산자 한국문화원연합회
  • 면담자 김선정, 박채린
    검독자 김선정, 박채린
  • 면담횟수 3회
    면답총시간 04시간 58분 22초
  • 면담일시
    1차 : 2019년 11월 08일
    2차 : 2019년 11월 22일
    3차 : 2019년 11월 29일
  • 면담장소
    1차 : 이화여자대학교 신산업융합대학 다량조리실
    2차 : 농심(주) 식문화도서관
    3차 : 진관사 효림원
간략소개
조상 때부터 고위 관직을 거쳤고, 어린 시절 북촌에 거주하며 경험했던 한양의 반가음식과 외갓집 영향을 받은 평양식 음식의 경험담, 근대 한식 레시피와 상차림 구성의 교본 역할을 한 조선요리제법의 저자이자 왕실과 인척관계가 있었던 조자호 선생과의 인연을 통해 알게 된 궁중음식 전수과정의 문제점, 식품영양학 교수가 되기까지의 인생 스토리, 은퇴 후 음식문화 연구 발전을 위한 활동 등
구술사업의 개요

본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수행하는 한식문화구술채록사업이다. 한식 문화 관련 인사들의 경험과 삶을 통한 구술 자료를 수집, 보존하여 한식의 역사를 정리하여 학문적 체계를 세울 뿐 아니라 한식문화 관련 분야 발전을 위한 토대 사업이다. 해방 이후 현대 한국 음식 문화 형성과 변화 과정의 한 축을 담당해왔거나, 지근에서 목격해 온 전통 음식 계승자, 관련 분야 교육자(가사, 가정, 영양, 식품학), 요리연구가, 전문 조리사 및 식품 산업계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식 문화와 관련된 구술을 채록하고 디지털 아카이빙을 추진, 문화 콘텐츠로 제작되어 일반인에게도 서비스될 것이다.

구술자 간략 이력

1942년 서울에서 오성대감 후손의 반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북촌에 살면서 반가음식을 먹으며 성장하였다. 이화여대 가정대학에 입학 후 석, 박사 학위 과정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식생활문화와 식품연구에 몰두하였다. 김치의 영양과 한식, 특히 전래음식에 대한 연구와 활동에 주력하였다. 농심 음식문화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기업의 음식문화를 선도하는데 힘쓰기도 하였다.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로서 북촌 음식문화포럼 대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구술자 자료 내용

○ 어린시절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의 성장기, 대학 전공 선택 배경과 지도교수님들에 관한 이야기, 한국전쟁 발발과 연관된 가족사, 밀양으로 피난시 접한 음식, 가족관계와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 숙명여중 재학시 연례행사로 윤비마마께 새해문안 인사 갔을 때 만났던 상궁이야기와 한상궁에 대한 의구심, 반가음식과 궁궐음식의 교류 그리고 중인음식문화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어렸을 때 먹었던 집안(반가) 음식에 대한 기억과 비법, 연세대학교 가정학과 설립 과정에 관한 이야기, 음식 관련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 한식상차림 첩수 개념의 오류 문제 지적

○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박사과정을 밟게 된 과정, 주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친 선학에 대한 이야기, 대학교수가 된 후 이화여대에서 정년을 마칠 때까지 주요 업적, 정년을 마친 후 농심에 몸담게 되며 했던 일들, 우리나라에 '식문화연구'라는 개념이 들어오게 된 배경 및 그에 관여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 식생활개선운동의 문제점,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설립 과정에 관한 이야기, 한식 문화 연구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견해

○ 서양음식과 한식의 차이에 대한 개인의 철학,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은 동일한 선상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 해방 이후 조선조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의 전형을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이 조자호 선생님이라는 이야기, 조자호 선생님과의 개인적인 인연, 현재 한국 반가음식 전승의 계보에 관한 이야기, 한식의 상업적 외식화에 큰 기여를 한 민관식씨 부인에 관한 이야기,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에 남는 음식과 재료에 관한 이야기, 한식문화 연구의 중요성과 방향에 관한 의견, 한식조리법 전승에 기여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 진관사와의 인연, 진관사 사찰음식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

구술 의의 및 특성

궁중음식 전승의 정통성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직간접 경험을 든 의미 있는 증언이 있었음(한상궁의 실체,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의 실제 교류 관련 조자호 선생 이야기, 안동교회 교인들의 이야기) 음식문화연구 저변 확대에 큰 기여를 한 분이지만, 본인의 주 전공은 영양학으로 조리학, 식품사, 식문화 연구는 필요와 관심에 의해 확장한 분야라 구술을 통해 의미 있는 단서를 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됨 교수라는 직업적 특성상 여러 정보와 지식을 자기화하여 이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한 분이라 ‘자신의 이야기’와 ‘자기화된 이야기’가 혼재된 경향이 있음

주요어

전래음식, 궁중(궁궐)음식, 반가음식, 한식세계화, 음식문화, 사찰음식

학력
2007년 ~ 2009년
서울사이버대학교 가족상담학과 학사편입 문학사
1981년 ~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이학 박사
1971년 ~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과 가정학 석사
1960년 ~ 1963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학과 이학사
교육계 경력
2007년 ~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정년 퇴임 및 명예교수
2002년 ~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식품영양연구소 6대연구소장
1998년 ~ 2007년
연변과학기술대학 객원교수
1998년
일본 시가현립대학 방문교수
1996년 ~ 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식품영양연구소 4대 연구소장
1989년 ~ 2007년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부교수 및 교수
1982년 ~ 1989년
한남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부교수 및 교수
1977년 ~ 1982년
경상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조교수
1975년 ~ 1976년
청주사범대학교 가정교육과 전임강사
1964년 ~ 1971년
정신여자중고등학교 교사
기타 경력
2007년 ~ 현재
북촌 음식문화포럼 대표
2008년 ~ 2011년
농심 음식문화원 원장
2004년 ~ 2007년
농촌자원개발연구소 겸임 연구관
2002년 ~ 2005년
농림부 식품분과 심사위원
2004년 ~ 2005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전문분과위원회의 심사위원
2002년 ~ 2006년
김치세계화포럼(시민단체) 공동대표
2002년
농림부전통식품심의회 위원
2002년 ~ 2005년
농림부 농산물 가공산업 육성심의회 위원
2001년 ~ 2003년
농촌생활연구소 겸임연구관
2001년 ~ 2002년
IFT Annual Meeting 국제회의 조직위원
2001년 ~ 현재
한국식생활문화학회 고문
1999년 ~ 2001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회장
1997년 ~ 1999년
몽골학회 상임이사
1995년 ~ 1997년
대한가정학회 상임이사
1993년 ~ 1995년
한국영양학회 상임이사
1992년 ~ 1998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 상임이사
1992년 ~ 1996년
한국조리과학회 부회장
수상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표창
2007년
대한민국 녹조근정 훈장
2004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학술상
2002년
과학기술총연합회 우수학술논문상
1976년
한국영양학회 제1회 학술상
김선정 /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전임연구원
2008년
한국외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
2014년 ~ 2018년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겸임교수
2012년 ~ 2014년
대통령기록관 연구지원심의회 의원
2011년 ~ 2019년
국가기록원 민간기록물 수집자문위원
2009년 ~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자료관 고도화연구단 수집관리실장
2005년 ~ 2015년
한국구술사연구회 회장
2001년 ~ 현재
한국외대, 건국대 등 다수 대학에서 강의
2009년 ~ 현재
국립예술자료원, 국립국악원, 문화재연구소,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등 다수 구술사 관련 특강 및 워크샵 주최
2005년
『구술사-방법과 사례』,한국구술사연구회편, 선인, -공저
2008년
(학위논문)"미국 중소도시 한인사회와 한인들의 삶".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08.
2009년
『한인의 미국 이주 시기 구분과 특징』, 남북문화예술연구,
2010년
『모현사람과 갈월마을』.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3년
『시장과 시장사람들』, 선인.
2014년
『향교 서원과 용인사람들』, 선인.
2014년
『구술사- 아카이브구축 길라잡이1』, 선인.
2017년
『구술사- 아카이브구축 길라잡이2』, 선인.
박채린 / 한국식품연구원 부설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장
2008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과/문학박사
1991년 ~ 1995년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2015년 ~ 현재
농림부 전통식품명인 선정 현장 실사 자문위원
2016년 ~ 현재
(사) 한국식생활문화학회 학술이사, 기획이사
2015년 ~ 현재
광주광역시청 광주세계김치축제 운영위원
2018년 ~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식생활 전시관 및 특별전시 자문위원
2016년
문화관광부 한식문화진흥법 제정 추진 자문 위원
2010년 ~ 2012년
서정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2012년
우송대학교 글로벌한식조리학과 초빙교수
1995년 ~ 2007년
㈜풀무원 마케팅/ 김치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한국의 의식주 생활사전:식생활편』 집필 위원
2013년 ~ 2014년
㈜네이버 한국 종가의 내림발효음식 백과사전 구축
(1회차)
1. 구술사업의 취지 설명과 어린 시절
  • 1942년 출생이지만 1945년 해방을 기뻐하던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있음.
  • 종조부께서 이시영 초대 부통령이었고, 아버지는 공직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1948년 정부 수립 당시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기억함.
  • 어린 시절, 항상 밥상에 삼색나물과 찌개, 또는 국이 올라와있던 기억을 돌이켜보면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상차림이었다는 생각을 함.
2. 한국전쟁의 기억과 밀양에서의 피난생활
  • 한국전쟁 발발 이후, 피난을 가지 못해 아버지와 큰오빠는 납북을 당하고 작은 오빠는 전쟁에서 사망함.
  • 서울을 점령한 북한의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당시 9살이었던 구술자를 데리고 다니며 동네에 살았던 우익 인사를 색출하려고 함.
  • 어머니는 행방이 묘연해진 아버지와 큰 오빠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던 중, 익명의 제보로 총살의 화를 면함.
  • 한국전쟁 발발 이전, 큰 오빠의 결혼으로 준비해둔 식재료가 있었기 때문에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음.
  • 후에 밀양으로 피난을 가서 먹었던 갈치국밥이 인상적이었음.
3. 숙명여중 입학과 외할머니 환갑 잔칫상에 대한 기억
  • 서울 환도 후, 1954년 숙명여중 입학.
  • 어린 시절 먹었던 잡채와 요즘의 잡채는 확연히 다름.
  • 환갑잔치에 초대받은 안동교회 교인들이 신선로를 먹고 깜짝 놀람.
  • 소머리편육, 돼지편육, 갈비찜, 각종 전류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했던 기억이 있음.
4. 궁궐음식과 전래음식에 대한 견해
  • 궁궐음식이라는 말은 궁 안에서만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반가, 나인, 역관 등이 먹었던 음식들과 교류하며 변화된 것이므로 교류 없이 궁궐 내에서만 먹었던 것이 아님.
  • 궁중음식이 아니라 궁궐음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 장지현 교수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함.
  •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로 인한 문화변동에 의해 음식도 변하여 전해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전통음식이라는 말보다 전래음식이라는 말이 더 적합함.
  • 검소함을 추구하는 유교정신으로 인해 반가음식이라고 해도 사치스럽지 않았음.
  • 1890년대 이후,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본식 상차림의 영향으로 3첩, 5첩, 7첩과 같은 말이 잘못 알려짐.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는 우리의 고서(古書)에도 7첩, 9첩, 12첩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음.
  • 잘못 전해진 우리 음식문화에 대해 바로 잡을 필요가 있음.
5. 중인계급의 음식문화와 어릴 적 기억
  • 반가의 경우, 유교의례 때문에 격식에 제약을 받았지만, 조선조 말에 중인계급 중 상인들이 가장 화려하게 상을 차렸음.
  • 조선왕조가 망하고 궁궐에서 음식을 만들던 사람들이 요리집에 취직하면서 만든 음식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온 것 같음.
  • 어릴 적 내시촌에 살았던 친구의 집에 우연히 갔는데 음식이 굉장히 화려했던 기억이 있음.
6. 외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던 음식 이야기와 직접 해주신 음식에 대한 기억
  • 외할머니께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당시 교회에 모인 반가의 부인들이 모여 궁에 음식을 만들어 보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음.
  • 해방되기 전까지 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밥을 나눠 먹는 일은 거의 없었고, 잔치 때마다 서로 초대해서 음식을 나눠 먹었음.
  • 외할머니께서는 아마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나오는 음식을 주로 만드셨던 것으로 추측함.
  • 특히 할머니께서 매 겨울마다 약과를 만들었고, 여름에는 녹두묵, 녹두죽 같은 음식을 만들어주셨던 것을 기억함.
  • 계절마다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던 음식과 간식이 달랐기 때문에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이 부러워했음.
  • 여름에 늘 만들던 증편은 술이 아니라 식혜를 활용하여 만들었던 기억이 있음.
7. 숙명여중고 시절, 순정효황후와 만난 기억과 조자호 선생님 이야기
  • 숙명여중고 시절, 일 년에 두 번씩 정릉의 순정효황후에게 인사를 갔던 기억이 있음.
  • 5·16 이후에 순정효황후를 찾아뵐 때, 성상궁과 김상궁만을 보고 한상궁을 본 기억은 없음.
  • 순정효황후의 이종사촌동생인 조자호 선생님이 이종언니에게 보낼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한희순 상궁에게 음식을 가르침.
  • 한희순 상궁은 궁에 나인으로 들어갔다가, 조선이 망하면서 상궁첩지를 받지 못했고 훗날 조자호 선생님께 음식을 배움.
  • 조자호 선생님은 양주 조씨 집안으로, 할아버님이 철종, 고종, 순종을 모심. 이러한 집안 내력으로 반가음식을 집안에서 배우고, 동덕여고, 일본 유학을 거쳐 중앙여고에서 교육자로 거듭남.
8. 숙명여고 시절과 대학 진학에 관한 일화
  • 숙명여고 입학 후, 당시 최초의 변호사였던 이태영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법대 진학을 생각함.
  • 어머니께서 법대 진학을 강하게 반대하자, 문수재 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이대 가정과로의 진학을 권유받음.
  • 당시 문낙식 교장선생님이 어머니를 찾아와 서울대 법대로의 진학을 설득하였으나, 어머니께서 반대함.
  • 이대 가정과 시험에 떨어지면 서울대 법대를 보내주겠다는 어머니의 설득이 있자, 일부러 시험답안을 쓰지 않으려 했음.
  • 이대 가정과로의 진학을 권유한 문수재 선생님이 시험 감독으로 들어와 어쩔 수 없이 답안을 작성하여 이대에 합격하여 진학하게 됨.
  • 요즘도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이 있으나, 한식이나 영양학을 전공하는 친구는 없음.
9. 1950년대 이후 열악했던 한국의 식생활과 우리 음식의 철학
  • 어린 시절 기억에, 보리밥, 된장, 고추장, 김치 정도로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던, 생활이 가난하고 어려운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음.
  •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에서 분식장려운동을 하여, 밥 대신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을 권장하였음.
  • 밀가루는 쌀보다 단백가가 많이 떨어지고, 한국인들은 락토즈 인톨러런스(lactose intolerance) 때문에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영양가 없는 빵을 만들어 먹음.
  • 전두환 대통령 시절,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보신탕을 먹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개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의 차이임.
  • 우리나라 음식의 첫 번째 철학은 약식동원(藥食同源)임. 특히 음식으로 병을 미리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함.
  • 계절에 따라 먹는 음식이 다르고, 고기의 경우에도 보기(補氣), 보음(補陰), 보양(補陽) 등 먹는 목적이 모두 다름.
  •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의학 차원의 음식 섭취였으나, 요즘은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져 안타까움.
10. 1960년 이화여대 입학과 대학시절 이야기
  • 1960년 이화여대 입학 후, 1학년 때 4·19를 맞이함.
  • 이화여대 가정과 교수였던 최이순 선생님이 연세대 가정대학 학장으로 가게 되고, 미국에 있던 문수재 선생님, 이기열, 이양자 선생님이 연대로 가면서 연대 가정대학이 발전하게 됨.
  • 대학시절에 대학생들의 사치를 막기 위해서 국가에서 교복을 입게 했던 기억이 있음.
  • 1963년 12월에 대학 졸업 후,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음.
  • 유학가기 전, 학교에서 취직을 권유하여 ‘여상’잡지 가정란 담당기자 시험을 봐서 취직을 하게 됨.
  • 기자 취직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크게 화를 내셨고, 유학의 뜻을 밝히자 건강에 이상이 생김.
  • 교장선생님의 출국을 배웅하기 위해 갔던 김포공항에서 웬 어머니가 홀로 키운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해 유학을 포기함.
11. 1960년대 이화여대 가정대학의 교육과정
  • 이화여대 재학 시절, 가정대학이었기 때문에 아동심리, 청소년 심리, 의류, 조리 등을 배움.
  • 특히 아동학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유학을 가면 아동학을 전공하려고 했었음.
  • 당시 가정학의 개념은 집안의 살림을 과학화하여 생활을 개선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었음.
  • 숙명여고 시절 1년 동안 연세대 유계완 선생님에게 조리를 배우고, 이화여대 2,3학년 중 1년은 한식조리를 배우며 음식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됐고 영양학에 적용시킬 수 있는 좋은 바탕이 되었음.
  • 대학교 4학년 때, 성모병원 영양 상담실에 문수재 선생님의 추천으로 영양 상담을 하러 간 좋은 경험이 있음.
  • 이화여대는 독특하게 영양문제나 국민건강문제를 특히 강조하였음.
(2회차)
1. 식문화 용어의 설명과 정신여자고등학교 재직
  • 식문화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온 용어인데다, 우리는 옛날부터 음식을 먹고 마시는 식사행위를 음식문화라고 말했음. 식문화라는 것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음식문화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함.
  • 미국 유학을 포기하게 되면서 정신여고에서 가정 과목을 가르치게 됨.
  • 1966년부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영양교육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음.
  • 학교 교육의 제도권 내에서 영양학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취지 하에 영양학 교육이 보급되기 시작함.
2. 대학원 진학 배경과 연구 주제
  • 1971년 겨울방학 때, 우연히 시장을 보러 갔다가 가사도우미가 작은 아들을 본인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다니며, 도망하려 한 것을 알게 되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 둠.
  • 교사를 그만두고 난 뒤, 김숙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함.
  • 대학원 입학 당시, 가정대학 내에 식품학과와 영양학과가 있어서 영양학을 전공하게 되었음.
  •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은 단백질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므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값싼 재료의 식품 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함.
  • 대두박과 깻묵으로 단백가를 분석하여 부족한 단백질 식품을 어떻게 값싸게 섭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평생의 연구로 이어짐.
3. 대학원 진학 당시 식품영양학계의 상황과 식생활 개선운동
  • 1971년 당시 가정대학은 서울대학과 이화여대에만 있었음. 서울대는 교사 양성 중심이었고, 영양학이나 식품학을 가르치는 건 이화여대에서만 했음.
  • 문수재, 김숙희, 이기열, 이양자 선생님 등의 영향으로 영양학이 발전하기 시작함.
  • 1970년대에 식생활 개선 운동이 확산되었고, 1973년에는 한국제과제빵학교가 만들어짐.
  •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인해 쌀의 대체 식품으로 빵을 만들기 시작함.
  • 쌀 부족 해결을 위해, 단순히 배를 불리는 영양가 없는 빵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식생활 개선이 일어난 건 아니었음.
4. 청주사범대학교와 경상대학교로의 출강
  • 석사과정을 끝내고 1975년에 청주사범대학교 가정교육과에서 영양학을 가르침.
  • 1976년 즈음 본인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신앙적인 결심을 하게 됨.
  • 1977년 진주에 위치한 경상대학교에 영양학 교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앙적 결심에 따라 출강을 결정함.
  • 경상대학교에서 6년을 가르치고 박사과정에 입학함.
  • 한양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교수 제의가 들어왔으나, 신앙적 결심으로 거절함.
  • 경상대학의 제자들과 아직도 연락을 하며 지냄.
5. 박사과정 시절 식품영양학계의 변화
  •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겨울에 실험실 난방이 되지 않아, 시료가 다 파기되어 논문이 미뤄진 일이 있었음.
  • 1985~6년 사이에 일본의 이시게 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이기열, 윤서석, 김숙희 선생님 등의 멤버를 모아 음식문화에 대한 특강을 함.
  • 특강 이후 영양학자들이 음식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됨.
  • 장지현, 이성우, 윤서석 선생님 등이 음식문화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함.
  • 그 영향으로 1986년에 이화여대에서 음식문화사를 커리큘럼으로 편성함.
  • 영양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나 당시에는 자료도 없고 커리큘럼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막막했음.
6. ‘식생활문화학회’와 ‘조리과학회’의 설립
  • 1987년에 이화여대에서 영양학자들이 모여 식생활문화학회를 설립함.
  • 식생활문화학회가 설립되고 3~4년 뒤, 조리과학회가 설립됨.
  • 조리과학회 설립 이후, 음식문화나 조리과학은 학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함.
  • 식생활 문화라는 것이 영양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품조리개발과 같은 영역으로 확장시켜 활동하고 있음.
7. 이화여자대학교 재직시절 국제영양학회 준비 일화
  • 1989년 8월 29일에 개최된 ‘국제영양학회’ 준비를 위해 영양학회의 김숙희, 윤서석 선생님과 만나 한국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고자 기획을 시작함.
  • 음식 전시회 기획을 위해 윤서석, 조후종 선생님과 의논하여 떡, 밥, 나물, 부각 등을 기획하였고, 이를 풀무원이 지원함.
  • 한 달 동안 대량의 떡을 준비하여 인터컨티넨탈 호텔 냉동실로 보내고, 떡에 들어간 재료들의 약리효과 등을 과학적으로 정리함.
  •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분들을 모아, 전국 각지의 다양한 부각을 만들어 전시하는 데 이춘자씨가 큰 도움을 줌.
  • 다양한 종류의 밥과 나물을 만드는 한편, 그것의 역할과 효능을 동의보감 등에서 찾아 영역하는 작업까지 함.
  • 전시 전날, 폭우로 홍수가 나서 경동시장에서 약재를 사는데 큰 고생을 함.
  • 전기톱이 망가질 정도로 얼어버린 떡을 잘라내고 녹이느라 고생하는 등의 일화가 있었으나,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됨.
  • 외국의 학자들이 크게 놀랄 정도로 찬사를 받았으나, 한국의 신문사,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지 않았음.
8. ‘국제영양학회’ 이후의 활동
  • 국제영양학회를 준비하며 많은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함.
  • 농협에서 취를 이용한 식품을 만드는 연구발표를 했으나,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않아 안타까웠음. 그 뒤로 계속 우리 식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
  • 이대 교수 재직 시절, 농림식품부의 자문위원으로 명인제도를 만드는데 기여함.
  • 김재수 유통국장과 우리 식품산업에 대한 의견을 자주 나눔.
  •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식에 대한 연구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꾸준히 주장하여 한식재단이 설립됨.
  • 정년퇴임 이후, 농심의 손욱 회장과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음식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함.
9. 연변연구센터와 아시아 식품 연구소 활동
  • 1998년에 장상 총장이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의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센터를 연변에 만들면 좋겠다는 제안을 함.
  • 연변 센터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를 다녀 온 후, 총장과 의논하여 이화생활과학연구소를 설립함.
  • 이화생활과학연구소에 일 년에 두 번씩 가서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특강함.
  • 학생 세 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박사 학위를 받게 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인재 양성에 힘씀.
  • 아시아 식품 연구소에서는 현대백화점과 연계하여 체성분골밀도측정 상담, 일반인 대상 및 보건소 연계 체중조절프로그램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계 연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함.
10. 푸드 전문가에 대한 생각과 산학 연계 활동, 명인 이야기
  •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일부 푸드 스타일리스트(food stylist)들을 보면 특별한 개성 없이 모든 걸 쉽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음.
  • 영양사들도 연구를 하지 않는 것 같으나, 열악한 환경으로 잘못된 처우를 받고 있다 생각함. 이러한 현상들을 문화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함.
  • 엘지(LG)전자와 살얼음 동치미 김치냉장고의 알고리즘을 개발함.
  •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김치 연구를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었으나, 지원을 받지 못하여 하지 못한 것임.
  • 농촌진흥청에서 굳지 않는 떡 연구를 끝까지 마무리해주어 다행이라 생각함.
  • 농림부의 명인제도는 자리를 잘 잡아 가고 있었으나, 요즘은 다른 정부기관에서 명인제도를 만들고 남발하여 신뢰가 없어진거라 생각함.
  • 한식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이 현대에 맞추어 변형시키는 건 좋지만, 한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퓨전음식을 한식이라고 말하며 강의다닌다는 이야길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듦.
11. 정년퇴임 후 농심에서의 활동
  • 정년퇴임 이후, 농심에서 활동하게 된 이유는 사회적 기여를 하기 위해서임.
  • 2007년 당시 MSG에 대한 이슈가 있을 때, 농심이 가장 먼저 MSG를 쓰지 않은 사실에 놀랐음.
  • 광고비를 줄이고, 좋은 재료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농심의 사훈에 깊은 감동을 받음.
  • 농심 안양공장을 폐쇄한다는 말에 직접 방문하여 과거 농심 연구원들의 제품 개발 노트를 발견함. 그 사료적 가치를 알아보고 모두 가져와 식문화 도서관에 보관함.
  • 농심에서의 또 다른 활동은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자기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되었는가를 체크하는 카드를 만드는 새샘운동임.
  • 충북대학교 아동학과와 함께 이 활동을 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일본학회에 발표하여 찬사를 받음. 이후 국가기관에 이 활동을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함.
  • 농심이 상업적 목적이 아닌 사회 기여 차원에서 많은 돈을 투자하여 만든 사업임에도 개인 기업이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평가절하되어 널리 전개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음.
(3회차)
1. 사찰음식의 중요성과 동서양 음식문화의 차이
  • 사찰음식에서 우리 궁궐 음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음.
  • 본래 우리의 궁궐 음식은 양념을 많이 사용한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담백한 재료의 맛을 살려내는 방법으로 조리함.
  • 특히 진관사는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철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
  • 동서양 음식문화의 차이를 이해하고, 우리가 지닌 음식문화의 철학을 지킬 필요가 있음.
2. 방신영, 조자호 선생님에 대한 기억
  • 반가음식의 조리법을 최초로 정리한 방신영 선생님과 반가의 자손이자 윤비의 이종사촌이었던 조자호 선생님이 서로 교류하며, 반가음식에 대한 자료를 정리했음.
  • 1956년 즈음 조자호 선생님이 신신백화점에 전통음료만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수정과나 식혜를 사먹었던 기억이 있음.
  • 조자호 선생님은 우리 전래음식을 산업화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음. 그 이외에도 사찰음식, 반가음식 등을 정리하고 대중화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침.
  •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끊어진 반가음식의 맥을 이어가는데 조자호 선생님의 역할이 컸음.
3. 강인희 선생님과 반가음식 전래에 기여하신 분들
  • 강인희 선생님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팔도의 향토음식을 직접 배워서 수록한 ‘한국의 맛’이라는 책을 만듦.
  • 이말순 선생님, 조후종 선생님, 이귀주 선생님도 반가음식의 역사를 정리하는데 큰 기여를 함.
4. 서울의 반가음식과 지방의 반가음식에 대한 차이
  • 서울은 전국에서 들어오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지만 지방은 그곳에서만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가장 큰 차이는 재료라고 생각함.
  • 1960년대 후반, 친구의 시댁인 여수에서 해물만 가지고 150가지 이상의 잔치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그 조리법을 남기지 못한 게 매우 안타까움.
  • 민관식씨의 부인이 운영했던 한정식 집 "마리"에서 개성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으나, 문을 닫고 난 뒤로는 그 맛을 찾기 힘들어짐.
  • 사실 반가에서는 좋은 재료만 갖고 음식을 한 것이 아님. 조선시대 반가에서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인 검소함 때문에 시래기 하나 버리는 일이 없었음.
5.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과 철학 (1)
  • 아직도 생각나고 먹고 싶은 음식은 석이버섯볶음과 화양적임.
  • 사계절마다 먹는 김치가 모두 달랐고, 옛날에는 고랭지 배추가 없었기 때문에 섞박지로 먹었음.
  • 냉국은 김치가 없을 때 김치 대용으로 먹은 음식임.
  • 김장하기 전인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는 지레김치라는 것을 담가, 김장이 익기 전까지 먹었음.
  • 김장김치도 다 똑같이 담그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넣는 재료가 달랐음.
6.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과 철학 (2)
  • 서울에서는 빼놓지 않고 백김치를 담갔는데,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빨간색을 내는데 대추와 실고추를 썰어 넣었음.
  • 요즘은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어, 땅에 묻지 못하니 어린 시절처럼 담기는 어려움.
  • 백김치를 담글 때, 특히 무를 많이 넣었는데 아마 평양 쪽에서 담그는 방식이지 않을까 추측함.
  • 무의 꼬리를 자르지 않고 3~4일동안 맹물에 담갔다가 무맛이 우러나게 한 후 양념을 하여 담갔던 동치미 국물에 국수나 밥을 말아먹었던 맛을 잊을 수 없음.
  •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들었던 이야기는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음. 손님이 오면 하다못해 겨울에는 숭늉이라도, 한여름에는 냉수라도 대접해야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음.
  • 음식재료를 살 때, 가게없이 좌판 등에서 파는 사람들에게서는 재료값을 깎거나 한줌 더 달라는 얘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음.
7. 한식사에서의 논쟁과 그에 대한 생각
  • 문화는 주변 환경에 따라 변동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음식의 주체와 사상,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 것임.
  • 우리 음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첫째 정성, 둘째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인데 요즘은 그런 것들을 잘 모르는 것 같음.
  • 셰프(chef)들이 전문가의 협조를 얻고 고문서를 보고 연구하며, 우리 음식의 음양오행의 원칙에 입각한 품격있는 담음새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함.
  • 새로운 문화와 분야를 열어가는 것은 좋지만, 그 전에 먼저 우리 조리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조리했는지,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켜야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함.
  • 우리의 철학과 담음새를 모르는 것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함.
8. 식품영양학계의 문제점과 제도개편의 필요성
  • 식품영양학과 교수 채용 시, 가장 중요한 기준이 SCI논문 게재라는 것이 안타까움.
  • 요즘 음식문화사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가르칠 선생이 없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임.
  • 전래한식을 제대로 공부한 경험도 없고, 커리큘럼도 없는 학계의 전반적인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함.
  • 한식세계화를 위한 움직임은 있으나, 음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일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함.
  • 한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 개발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함.
  • 한식재단이 생길 당시, 한국음식문화 연구, 인재양성, 옛 조리서 번역, 대중화, 제도개편 등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꼭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함.
9. 한식 문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소개
  • 1950년대에 종로에서 요리학원을 운영했던 김재옥씨가 여인들에게 한국음식을 가르치는데 힘씀.
  • 1970년대 들어서 한정혜, 하선정, 왕준련씨 등이 요리학원을 운영하며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음식을 알리는데 기여함.
  • 강인희 선생님에게 음식을 배운 이말순 선생님은 농심에서 ‘한국의 맛’이라는 강의를 하며 후학과 인재 양성에 크게 힘씀.
  • 이종미 선생님의 제자들은 모두 강인희 선생님이나 이말순 선생님 아래에서 반드시 1년 동안 음식을 배워와야 제자로 받아 주었음.
  • 장지현 교수님과의 인연은 농심, 진관사에서의 활동까지 오랜 기간 이어짐.
10.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당부의 말
  • 한식 문화의 세계화에 가장 기틀이 되는 5대 발효식품인장, 김치, 주류, 초, 젓갈을 바탕으로 하는 음식이 세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됨.
  • 특히 우리 전통 장아찌가 주목받지 못하고 간과되는 부분이 제일 안타까움.
  • 단순히 우리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음식의 기초가 되는 발효식품에 대한 연구, 공부, 인재양성 등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함.
  • 후학들이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창의성을 기르고, 다른 분야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연계시키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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