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공감

전북 정읍의 싱건지
 

토속 음식 중에서도 특히 겨울 음식은 쓸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고 조리법이 단순해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지역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농촌에서 고기를 푸지게 먹을 기회가 흔했을 리 만무. 싫으나 좋으나 가을에 갈무리해두었던 재료들을 알뜰살뜰 먹으려는 궁리 끝에 나온 것이 겨울 토속음식이다.

 

우선, 김치의 종류가 많을수록 겨울 밥상은 푸짐해진다. 풋김치와 잘 익은 김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어버리면 또 그런대로 국, 찌개, 만두소 등 갖은 음식 재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고향이었던 정읍으로 내려가 새로운 집을 짓고 둥지를 튼 스타일리스트 양은숙 씨가 보여준 정읍의 토속음식 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싱건지였다. 동치미무보다 작은 무로 담근 삼삼한 국물김치. 동치미가 무를 주로 먹는 김치라면, 싱건지는 기실 무청이 더 맛난 김치다.

 

짜지 않게, 삼삼하게 담가 먹어 싱건지

 

싱건지는 김장을 담그기 전에 만들어 금방 먹고 치우는 김치다. 국물의 간을 세지 않게 해서 담그자마자 금방 익혀 국물도 먹고, 무도 건져 먹다가 군내가 나기 시작하면 찬거리로 요긴하게 쓴다. 통마늘, 생강, 삭힌 고추를 베보자기에 싸서 독 한구석에 박아 넣으면 국물이 탁해지지 않고 맑다. 기호에 따라 나박김치 담그듯 고춧가루를 좀 섞어 불그스름하게 색을 내기도 한다.

 

싱건지는 밥상에도 놓지만 고구마나 떡을 먹을 때도 꼭 곁들여요. 뻑뻑한 떡이나 고구마를 먹다가 목에 메는 것 같으면 시원한 싱건지 국물을 들이켜는 거지요.

싱건지는 금세 익고 금세 쉰다. 맛이 든다 싶다가도 어느새 군내가 나기 십상인 김치다. 이때 만들어먹는 음식이 바로 싱건지밥이다. 무가 물컹해지기 전에 건져 채를 썰고 무청은 종종 썬다. 솥에 불린 쌀을 앉히고 그 위에 무채와 무청을 얹어 지은 밥이다. 정읍 할머니들은 무채를 섞은 밥보다는 오로지 무청만 얹어 지은 싱건지밥을 더 좋아한다.

 

먹을 때는 참기름이나 들기름 섞어 만든 양념간장에 비벼먹는다. 양조간장보다는 집에서 직접 담근 집간장을 써야 제 맛이 난다. 고소한 기름 맛에 비벼먹는 밥이다.

 

살캉하니, 단맛 도는 무전

 

김장거리를 뽑고 난 빈 밭에 듬성듬성 나있기 일쑤인 것이 바로 무. 이걸 뽑아다가 무전을 부쳐 먹는 맛도 기막히다. 어른 주먹 크기의 무를 가져다가 길이대로 모양을 살려 썬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그대로 전을 부치면 뻣뻣해서 맛이 없다. 무가 살캉살캉 익으면 건져서 잠깐 두었다가 밀가루를 앞뒤로 꼭꼭 눌러가며 묻힌다. 여분의 밀가루를 털어내고 주르륵 흐를 정도로 묽게 갠 밀가루 반죽에 잠깐 담갔다가 기름 넉넉하게 두른 프라이팬에 부치면 간식으로도 좋고, 반찬으로도 좋은 무전이 된다. 무전은 썰거나 찢을 필요 없이 한 손에 들고 양념간장에 푹 담갔다가 꺼내 그대로 베어 먹는다.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인 것이 전이라지만 무전만큼은 좀 다르다. 식으면 또 그것대로 쫄깃한 맛이 있어 오히려 식은 다음에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이들도 많다.

 

쌀밥 위에 척척 걸쳐 먹는 새비무청지짐

 

시골살림에서 겨울나기 차비하는데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무청 말리는 일이다. 시퍼런 무청을 잘라서 줄에 걸어 말리는데 응달이나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릴 때는 데치지 않고 그대로 말린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말리거나 노지에서 말리려면 아무래도 살짝 데쳐서 물기를 뺀 다음 말리는 것이 낫다. 효소작용을 억제해 색이 점점 바라는 것을 막을뿐더러 조직이 물러져 나중에 먹을 때 뻣뻣하지 않아 좋다.

 

무청은 삶아서 건져 지져먹는다. 무청에 된장, 고추장, 들기름을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 간이 배게 한 다음 그대로 지져 먹거나 비릿한 생선 한두 마리 넣어 지져 먹는다. 민물새우는 지역에 따라 이름 그대로 부르거나 새뱅이라고 부르는데 정읍 사람들은 따로 ‘새비’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무청이 나른하게 익으면 마지막에 펄펄 뛰는 새비를 씻어 얹어 한소끔 끓이면 발그스름하게 익은 민물새우의 단맛이 어우러져 꿀맛 나는 반찬이 된다. 밥 한술 떠서 길게 늘어지는 무청 척척 얹어먹는 맛은 긴긴 겨울에 제일가는 별미가 된다.

 

고소하니 맛난 토란국, 배틀하니 간간한 간재미지짐

 

가을 토란은 알밤만큼이나 달큼하고 고소하지만 진이 묻어나 껍질 벗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요령을 부릴라치면 살짝 삶아 껍질이 쏙 빠지도록 하면 될 터. 흠이라면 토란 살점이 너무 많이 떨어져나가는데다 구수한 맛도 덜하다는 것. 살림꾼들은 일일이 칼로 긁어 껍질을 벗겨내고 찬물에 담가 아린 맛을 우린다.

 

냄비에 껍질 벗긴 토란을 담고 기름 없이 간장만 조금 쳐서 달달 볶는다. 토란 겉면이 조금 익어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속뜨물을 붓고 끓이다가 곱게 간 들깨 물을 붓는다.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국물이 엉길 정도로 끓여 마무리한다. 지난 가을에 말려두었던 애호박 오가리를 물에 살짝 불려 마지막에 넣으면 오돌오돌 씹는 맛도 좋고 은은한 애호박 향이 돌아 더 맛있다.

 

정읍 사람들은 홍어보다 간재미가 더 맛있다고들 얘기한다. 생것 그대로 쓰거나 이틀 정도 삭혀서 콤콤한 내가 들락말락 할 때 무 깔고 지져먹는다. 고추장보다는 고춧가루를 넣어야 칼칼한 맛이 잘 살고 깔끔하다. 국물이 자작하게 졸면 마무리로 싱싱한 미나리 줄기를 듬뿍 얹는다. 탕도 그렇고, 찜도 그렇지만 홍어나 간재미에 잘 어울리기로는 미나리를 따를 채소가 없다.

 

밭에 널린 무 몇 개 뽑아오면 국 끓이고, 김치 담그고, 조림이며 부침까지 해먹을 수 있다. 겨울 무는 역시 몸에도, 마음에도 보약이다. 정읍의 겨울 밥상은 무가 있어 풍요롭다.

 
하단 내용 참조

1. 김장 전에 수확하는 무는 김치는 물론, 다양한 음식 재료로 쓰인다.
2. 전라도에서 많이 먹는 잡젓을 넣어 칼칼하게 담근 무청김치. 무와 무청을 다 쓰며 무에 칼집을 넣어 간이 잘 배게 담근다.
3. 무청을 햇빛이 강하지 않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릴 때는 따로 데치지 않고 그대로 말려도 푸른색이 유지된다.
4. 소일거리삼아 동네 노인 회관에 모이는 할머니들은 겨우 내 싱건지밥을 즐긴다.

하단 내용 참조

1. 싱건지를 담그는 무는 동치미용 무보다 조금 더 작은 것을 쓴다.
2. 무청이 달린 채로 무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생강, 마늘, 삭힌 고추를 작은 주머니에 담아 함께 넣는다. 배를 넣으면 국물 맛이 한결 시원하고 달콤해진다.
3. 싱건지 국물은 짜지 않게 소금물을 잡는다. 그래야 빨리 익혀 금방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이다.
4. 무보다 무청의 양이 더 많은 싱건지. 나중에 싱건지밥을 해먹으려면 무청이 많을수록 좋다.
5. 홍갓을 조금 넣으면 불그스름한 물이 들어 국물색이 더 예쁘다.

하단 내용 참조

1. 너무 익어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싱건지는 건져서 무는 곱게 채 썰고 무청은 잘게 썰어 싱건지밥을 짓는다.
2. 무와 무청을 동시에 넣을 때도 있고 무청만 넣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무청만 넣은 밥을 더 좋아한다.
3. 무쇠솥에 씻은 쌀을 담고 무채와 무청 썰어 넣은 것을 올려 밥을 짓는다.
4. 집간장에 다진 마늘, 다진 대파, 참깨, 고춧가루, 들기름을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어 비벼 먹는다.
5. 양념간장에 비빈 싱건지밥에 시원한 싱건지 국물을 곁들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하단 내용 참조

1. 전북 사투리로 ‘새비’라고 불리는 민물새우. 새까맣게 생긴 것으로 펄펄 뛰는 것을 가져다가 지져먹는다.
2-3. 데친 무청 시래기에 된장과 고추장, 다진 마늘 등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4. 뭉근한 불에서 오랫동안 지져 무청이 나른해지면 마지막에 민물새우를 넣는다.
5. 민물새우가 듬뿍 들어가 단맛이 도는 무청새비지짐.

하단 내용 참조

1. 무를 길이대로 썬다. 너무 얇게 썰면 중간에 부서지고 씹는 맛이 덜하니 1cm 두께로 써는 것이 좋다.
2. 살캉할 정도로 무를 데쳐 한김 식힌다.
3. 데친 무에 밀가루를 묻힌 다음 살짝 털고 묽은 밀가루반죽에 살짝 담갔다가 지진다.
4. 고소한 밀가루 부침옷과 들큼한 무의 맛이 어우러진 무전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식으면 쫀득쫀득한 식감이 더 잘 살아난다.

하단 내용 참조

1. 알이 작은 토종 토란에 들깨가루를 넣어 뭉근하게 지져먹는 토란탕.
2. 말린 애호박을 마지막에 넣으면 애호박 특유의 향과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3. 정읍 사람들이 홍어보다 더 좋아하는 간재미. 신선한 상태로 찜을 해먹기도 하고 살짝 발효시켜 먹기도 한다.
4. 간재미는 씻어서 큼직하게 토막 내고 된장, 고춧가루 등을 넣어 조린다.
5. 무를 밑에 깔고 간재미와 양념을 차례로 얹어 조리다가 마지막에 미나리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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