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공감

충북 제천의 승검초단자와 수수무조청
 

오래된 추억 속의 음식 기억은 맛이 반, 향이 반이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52호인 이연순 씨가 만드는 승검초단자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 음식이다. 승검초단자는 당귀(當歸)잎을 갈아서 찹쌀가루에 섞어 쪄 색과 맛, 향을 낸 후 꿀로 반죽한 거피팥소를 감싸고 잣 고물에 굴려 만드는 떡이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산야초인 승검초는 당귀(當歸)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데 어혈을 제거해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어 특히 여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향 때문에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그보다 더 향긋한 쌈채가 없다. 원래 뿌리를 당귀라 부르고, 잎을 승검초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그저 당귀와 당귀잎으로 구분해 부른다.

 

어릴 적, 일 년에 한 번씩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할머니 방에서 생각도 못한 군입거리가 발견되곤 했어요. 나중에 드시려고 시렁 위에 올려두고는 깜빡하신 거지요. 말라비틀어진 설기가 주로 나왔는데 할머니는 그걸 버리지 않고 툭툭 떼어 당신 입에도 넣고 제 입에도 넣어주셨어요. 갈라진 틈 사이로 곰팡이가 피어 있으면 손으로 쓱쓱 비벼서 털어내고요.

우물우물해봐라. 사르르 녹는다.

시던 할머니에게 받아먹던 떡에서는 한약방 냄새가 났다. 그 때는 그 냄새가 그렇게도 싫더니 세월 지나 음식공부를 하면서 만난 떡에서 그 향이 맡아졌다고 한다. 승검초단자였다. 조리법은 전해지지만 제대로 된 분량을 표기하지 않은 고문헌 속 내용들을 토대로 여러 번 만들어보면서 조리법을 다듬었다.

 

당귀의 향, 꿀의 달콤함, 잣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꿈결 같은 맛

당귀는 이른 봄, 언 땅이 풀릴 때 쑥보다 더 먼저 올라오고 찬바람이 나 선득선득한 가을에도 여전히 푸르게 잘 자란다. 떡 재료로 쓰는 당귀는 4월과 10월에 나오는 것을 제일로 치는데 봄에 나오는 것은 잎이 연한 반면 향이 좋고, 가을 당귀는 잎은 두껍지만 고소한 맛이 더 난다.

 

승검초단자 재료로는 찹쌀가루, 당귀 잎, 꿀, 거피팥, 참기름, 잣가루 등이 필요하다. 당귀 잎은 보통 찹쌀가루 양의 ⅒정도를 준비한다. 이걸 곱게 갈아서 찹쌀가루에 넣고 잘 섞어 시루에 찐 다음 절구에 붓고 절굿공이로 한참을 찧어 찰기를 낸다. 속에 들어갈 소는 거피팥을 익혀 역시 절구로 찧은 다음 꿀을 넣어 반죽해 동그랗게 빚는다.

 

찹쌀떡 반죽을 송편 빚을 때보다 좀 크게 떼어내어 엄지손가락으로 눌러가며 공간이 생기도록 빚은 다음 동그란 거피팥소를 넣어 아물린다. 이걸 미리 준비해둔 잣가루에 굴리면 향기로운 승검초단자가 만들어진다.

 

당귀와 꿀이 들어가 잘 쉬지 않는 떡입니다. 잣가루의 지방 덕분에 잘 굳지도 않아요. 설탕을 넣지 않아 크게 달지 않으니 어른들 먹기 좋은 떡이지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떡, 당귀설기

당귀설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멥쌀가루와 당귀잎이 전부.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과 설탕만 좀 섞는다. 시루에 시루밑을 깔고 잘게 썬 당귀잎 섞은 쌀가루를 잘 펴 담은 다음 김이 오른 찜통에 얹어 익히면 된다. 요즘은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먹을 필요가 없어 조금씩 만들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떡이 안 익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떡이 익지 않아 낭패를 보는 일이 제법 있었단다.

 

음력 시월인 상달이 되면 집에서 커다란 시루에 떡을 쪄서 턱 쏟아 놓고는 적당한 크기로 갈라요. 먼저 성주신(成造神), 터주신, 조왕신(竈王神) 등에 올리고 절을 한 다음 동네 집집마다 떡을 돌렸어요. 떡시루는 크지, 돌릴 집은 많지. 김이 오를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으면 애가 타지요. 시루가 워낙 크니 위는 설익고 밑은 눌어붙어 타기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요. 시룻번으로 막아놨으니 중간에 물을 보충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때는 측간 다녀온 사람이 만지면 부정 타서 떡이 안 익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어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중간에 측간 다녀온 사람은 조마조마할 밖에요. 다행이 떡이 잘 익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떡 다 먹을 때까지 어른들에게 혼이 났지요. 지금 생각하면 다 핑계지, 핑계.

기침을 멎게 하고 근기를 주던 겨울 보양식, 수수무조청

당귀설기를 입에 넣어주시던 할머니는 겨울만 되면 수수무조청을 즐겨 드셨다고 한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오며가며 한 수저씩 떠먹으며 겨울을 났다고. 수수밥을 해서 엿기름물을 부은 다음 아랫목에 묻어두면 식해처럼 밥알이 떠오르는데 그걸 오랫동안 고아 만든 것이 수수조청이다. 특이한 것은 무, 생강, 밤, 대추, 검은깨 등의 재료가 더 들어간다는 것.

 

예전에는 제대로 된 조청 농도를 표현할 때 ‘청이 달린다’는 말을 썼어요. 숟가락으로 떴을 때 밑으로 주르륵 흐르다가 마지막에는 숟가락 끝에 동그랗게 맺혀요. 그게 청이 달린다고 얘기하는 거지요. 어머니는 수수밥을 쓰셨는데 수수가루로 대체했더니 한결 깔끔하게 되더라고요.

맑은 조청에 볶은 들깨를 넣어 버무려 만든 강정도 한겨울 간식으로 제격이었다. 대개는 골패모양으로 납작하게 썰지만 콩가루 위에 한 수저씩 올려 손으로 툭툭 쥐어 만드는 강정을 주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뜨끈한 겨울 별미, 지창개국과 메밀묵

어느 지역이던, 토속음식을 잘 살펴보면 주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산야초를 활용한 것들이 많다. 텁텁한 된장을 풀어 끓이는 국이 특히 그렇다. 제천을 비롯한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유독 된장국이나 김칫국에 콩가루를 많이 넣는다. 이연순 명인이 즐겨 먹는 지칭개국도 그렇다.

 

표준어로는 지칭개라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예전부터 질창구라고 불렀어요. 사투리인 셈이죠. 지칭개는 들판이나 밭둑에 많이 나는데 겨울에도 흔해요. 냉이처럼 생겼지만 뿌리도 두껍고 잎은 훨씬 억세죠. 쓴맛도 강하고요. 칼로 뿌리까지 다 캐서 가져오면 우선 방망이로 뿌리를 쿵쿵 찧어 부드럽게 만들어요. 퍼런 풀물이 빠지도록 손으로 치대면 좀 부드러워지는데 그걸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 콩가루를 묻힌 다음 된장국에 넣어 끓입니다. 어설프게 끓이면 맛이 없고 오랫동안 달이듯이 끓여야 제 맛이지요. 감기 기운이 있거나 몸이 으슬으슬할 때는 따끈한 질창구국 한 그릇 생각이 절로 납니다.

충청도 사람들이 유독 즐기는 음식이 바로 묵이다. 도토리, 밤, 메밀 등이 두루 많이 나는 지역이라 그렇다. 이연순 명인의 집에서는 주로 메밀묵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겨울에는 따끈한 장국을 끓여 채 썬 묵 위에 부어먹지만 그보다는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예전에는 이웃에 애경사가 있으면 돈 대신 음식으로 부조(扶助하는 경우가 흔했다. 떡을 해서 가져다주는 집. 두부를 해서 가져다주는 집. 술을 담가서 가져다주는 집. 이연순 명인의 어머니는 주로 묵을 쑤어서 부조를 대신했다고 한다. 옆에서 지켜보며 배운 맛있는 메밀묵의 비결은 들기름을 마지막에 쓰는 것. 원래는 묵을 쏟아 굳힐 때 밑바닥에 들러붙지 않게 하는 용도로 쓰던 방법이었지만 고소한 뒷맛을 내는 비결이기도 했다고 한다.

 

메밀묵은 점심에 반찬으로 먹거나 한밤중에 간식으로 많이 먹었지요. 겨울에는 차가워지니 따끈하게 먹을 궁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냄비에 메밀묵을 담고 화덕 위에 잠시 올려두었다가 데워지면 양념간장을 끼얹은 다음 숟가락으로 뚝뚝 떠먹었어요. 좀 지나면 묵이 바닥에 눌어붙는데 그걸 긁어먹으면 고소하니, 참 맛있었네요.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봄 당귀는 잎이 연하며 향기롭고 가을 당귀는 잎이 두꺼운 대신 더 고소한 맛을 낸다.
2. 찹쌀가루 무게의 ⅒ 정도 되는 당귀를 곱게 갈아 물 대신 사용한다.
3. 당귀즙과 쌀가루를 잘 섞는다. 이때 소금 간을 한다.
4. 불 위에 솥은 놓고 물을 부은 다음 시루를 올린다. 찔 때 김이 새나가지 않도록 밀가루 반죽인 시루번을 시루와 솥 사이에 빈틈없이 돌려가며 붙인다.
5. 물을 끓고 수증기가 오르면 시루 안에 깐 면포에 설탕을 조금 뿌리고 손으로 쥔 찹쌀가루를 얹어 20분 찐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잘 쪄진 반죽을 덜어 찰기가 생기도록 찧는다.
2. 거피팥을 쪄서 익힌 다음 꿀을 넣고 찧는다.
3. 소를 적당한 크기로 덜어 내어 손바닥으로 동그란 모양이 되도록 굴린다.
4. 떡반죽을 덜어 편편하게 빚은 다음 소를 얹는다.
5. 소를 얹은 반죽을 거꾸로 쥐고 소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잘 아우린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잣을 곱게 가루내어 떡반죽에 끼얹어 고물을 묻힌다.
2. 승검초단자는 꿀로 반죽한 소를 넉넉하게 넣어 따로 설탕을 쓰지 않아도 달콤한 맛이 난다.
3. 아이 주먹과 어른 주먹의 중간 크기로 빚은 승검초단자.
4. 잣가루를 묻히면 지방의 작용으로 쉽게 굳지 않는다.
5. 잘 빚은 승검초단자는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는 당귀차와 잘 어울린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당귀설기는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한 멥쌀가루를 사용한다.
2. 잘게 썬 당귀잎을 쌀가루에 섞어 뭉쳐지지 않도록 잘 섞는다.
3. 시루밑이락 부르는 천을 시루에 깔고 그 위에 당귀잎을 섞은 쌀가루를 살살 펴서 담는다.
4. 김이 오른 후 20분~25분 정도 익힌 후 젓가락으로 찔러 묻어나지 않으면 익은 것이므로 거꾸로 쏟아 식힌다.
5. 당귀설기는 깔로 썰지 말고 손을 뜯어가며 먹는 맛이 더 좋다. 꿀이나 설탕보다는 조청을 곁들여도 좋다.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지칭개는 사철 들에 흔한 산야초. 냉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더 쓴맛이 난다.
2. 오랫동안 치대 풀물을 뺀 지칭개에 날콩가루를 섞는다.
3. 지칭개가 잘 엉기면 미리 끓여둔 된장국에 살그머니 넣어 익힌다.
4. 국이 끓는 동안 콩가루가 거품처럼 뜨지만 그대로 두면 몽글몽글하게 익는다.
5. 지칭개의 쌉싸름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 지칭개국.

하단 내용 참조

왼쪽부터)
1. 수수무조청에 들어가는 재료. 수수가루, 엿기름가루, 무, 대추, 생강, 잣, 호두가 들어간다.
2. 잘 삭은 수수조청을 끓여서 조리다가 견과류를 넣고 조금 더 조린다. 오며가며 한 숟갈씩 먹으면 든든하다.
3. 잘 볶은 들깨를 조청과 섞어 볶다가 견과류를 넣어 섞는다.
4. 강정을 쟁반에 쏟아 식혔다가 골패쪽 모양으로 썰거나 콩가루 묻혀 주먹으로 쥔다.
5. 메밀묵을 냄비에 담고 불에 올려 눌려가며 먹는다. 양념간장을 얹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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