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문화공감

경북 안동의 접빈객 음식, 안동국시와 안동식혜
 

한국음식의 범주에서 안동 지역 음식이 가진 의미는 꽤 묵직하다. 2001년 발견된 종합 농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에 230여 가지에 달하는 조리법이 포함되어 가장 오래된 조리서로 인정받기 전까지만 해도 안동 광산(光山) 김씨(金氏) 문중에 내려오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이 최초의 조리서로 오랜 기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의 불천위(不遷位) 중 상당수가 경상북도에 집중되어 있고 그 중 퇴계(退溪) 이황(李滉),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등의 불천위가 안동에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이의 신주(神主)를 사당에 영구히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4대를 내려가면 제사를 더 이상 모시지 않는다. 그러니 임금이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고, 신주를 모셔두는 신위(神位)를 옮기지 않고 한 자리에 영구히 보존하는 불천위(不遷位)를 허락했다는 것은 개인은 물론, 가문으로서도 대단한 영광이었다.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날에는 전국에 흩어져있는 각 집안의 장자(長子)들이 모두 모인다. 오랜 전통에 따라 정형화된 진설(陈设)이 이루어짐은 물론이다. 제수(祭需)의 종류는 다양하고, 조리법은 다채롭다. 제사음식 뿐일까. 많은 인원이 모이는 자리니 밥상과 주안상도 두루 살펴야 한다.

 

안동에는 퇴계를 기리는 도산서원(陶山書院), 서애를 기리는 병산서원(屛山書院) 등이 있다. 학문적 교류를 위해 수많은 선비와 유생들이 모여들었고 그에 맞춰 종가나 반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宾客)이 가장 빈번히 이루어졌다.

은어를 고아 그 국물에 말아내는 건진국수와 맹물에 끓여 내는 누름국수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역시 안동국시다. 종잇장처럼 얇은 국수발로 유명하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4:1 비율로 반죽하여 홍두깨로 민 후, 아주 가늘게 썬다. 국수를 물에 삶아 건진 다음 그릇에 담고 따로 국물을 부어내면 건진국수. 냄비나 솥에 물을 붓고 갖은 채소를 더해 끓이다가 국수를 넣어서 끓여낸 것은 누름국수, 혹은 제물국수라고 부른다.

반죽을 매(많이) 치대야 국수가 쫄깃쫄깃 맛있지요. 반죽이 끝난 다음 30분 정도 두었다가 홍두깨로 밀면 착착 잘 늘어나요. 원래 건진국수는 너무 얇게 밀면 못써요. 콩가루가 들어가 끈기가 없으니 툭툭 끊어지기 일쑤라 가늘게 썰기가 어려워요.

안동 음식 연구와 강의로 유명한 권영숙 전통 음식연구가가 썰어낸 면을 다시 콩가루에 묻혀서 끓는 물에 삶아 건진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 후 그릇에 담고 맑은 국물을 부어낸다. 콩가루가 더해진 까닭에 면은 툭툭 끊긴다. 입에 넣고 가만히 씹어보면 콩가루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외지인의 입에는 자칫 산패된 것이 아닐까 싶을, 비릿한 고소함이다.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으면 콩 맛이 몇 배 강해진다고 한다.

 

건진국수는 양반가의 손님 접대 음식이다. 따뜻한 국물을 부으면 ‘국시’라고 하고 차가운 국물을 내놓으면 ‘건진국시’라고 불렀다. 국물과 고명의 재료로는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과 함께 낙동강에서 잡히는 은어가 쓰였다. 낙동강과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양반가에서는 대체적으로 은어를 많이 사용했고, 지류에서 멀리 떨어진 양반가에서는 양지머리, 닭, 꿩 등을 썼다.

은어는 내장을 빼내고 깨끗이 씻어요. 내장이 남아 있으면 써서 못 먹지. 솥에 물을 붓고 은어를 넣어서 살이 익을 정도로만 익혀요. 그걸 건져서 살을 추려서 따로 둡니다. 머리와 뼈는 다시 넣어 푹 끓여 육수를 만들지요. 충분히 우러난 육수는 걸러서 시원하게 두었다가 국수에 부어 냅니다. 시원한 맛에 먹는 국수니까.

은어 국물을 부은 건진국수는 멸치국물처럼 구수한 맛은 없지만 담백하니, 목 넘김이 깔끔하다. 은어살, 달걀 황백지단, 당근, 애호박 등을 고명으로 올려 화사한 맛도 있다. 손이 많이 가지만 양반가의 접대음식으로는 제격이다.

 

안동 사람들이 식구끼리 예사로 끓여먹는 누름국수는 원래 맛내는 재료를 쓰지 않는다. 멸치도, 소고기도 없다. 그저 맹물 펄펄 끓이다가 방금 썬 국수를 넣고 호박이나 양파, 당근 정도를 채 썰어 넣고 색이 날 정도로만 끓인다. 콩가루 묻은 국수를 털지 않고 넣었으니 국물은 탁하고 걸쭉하다. 제물에 끓였다고 해서 제물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동국시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손님 한 분 더 오시면 반죽 한 번 더 밀면 그만이라는. 밥은 그릇수대로 한 번 뜨면 그만이지만, 이 국수는 물 한 그릇 더 붓고, 반죽 한 번 더 밀면 고마 한 그릇이 더 나오는 기라.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도 예사로 있었던 일이지요.

김치도, 젓갈도 아닌 음청류, 안동식혜

 

어떤 지역에서도 해먹지 않는 안동만의 독특한 음식을 들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안동식혜이다. 밥알 동동 뜬 단맛 도는 음료이니 식혜가 맞건만, 아삭아삭 씹히는 무와 알싸한 생강향, 빨간 국물을 보고 있으면 나박김치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식혜(食醯)는 밥을 엿기름을 삭혀 당화시킨 음료이고, 식해(食醢)는 밥에 생선과 양념을 넣어 삭힌 반찬이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거나 넣을 생선이 마땅치 않을 때 밥과 무, 갖은 채소를 버무려 삭힌 것을 따로 소식해(蔬食醢)라고 부르며 해먹는 경우도 있다.

 

안동식혜는 식혜와 소식해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음식이다. 고춧가루를 풀어 넣어 매콤하지만 설탕이 좀 들어가 달콤하다. 잘게 썬 무가 씹히지만 밥알이 동동 같이 씹히는 음식인 것이다. 아무려나 안동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난 후 소화를 돕는 후식으로, 혹은 손님맞이 음료로 이 안동식혜를 꾸준히 만들어 먹어왔다. 잘 볶은 땅콩을 몇 알 띄워 먹는 안동식혜의 알싸한 맛은 한 번 맛들이면 쉽게 잊을 수 없는 별미다.

먼 길 떠나는 이에게 들려주던 장떡

 

장떡은 지역마다 그 양상이 퍽 다른 음식 중에 하나다.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에서는 말 그대로 된장이나 고추장을 엷게 풀고 채소와 밀가루를 넣어 부쳐 먹는 음식을 장떡이라고 불렀다. 경기도 개성이나 강화 등지에서는 소고기의 양을 늘리고 된장 간을 강하게 한 반죽을 굵은 가래떡 모양으로 빚어 썬 다음 한 번 쪄서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불에 굽거나 지져 먹는다.

 

안동 지역의 장떡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조리된다. 양파, 깻잎, 호박, 오이, 사과, 미나리, 차조기 등을 채쳐서 준비하고 밀가루와 물은 엉길 정도로만 섞는다. 고춧가루, 소금, 된장은 조금만 넣는다. 찜통에 데친 호박잎을 깔고 그 위에 반죽을 얹어 20분 정도 쪄낸다. 떡처럼 보이기도 하고, 찐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이, 사과, 미나리 등 수분이 많은 재료가 들어가 먹을 때 목이 멜 염려가 없다. 차조기를 넣어 쉬 상하지도 않으니 먼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더 없이 좋은 비상식량이 되었다.

간고등어 연잎찜과 마구이

 

안동국시는 손님상에 올리는 음식이므로 다른 곁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문어숙회, 수육 등이 그런데 권영숙 연구가는 간고등어 연잎찜을 내놓았다. 안동의 특산물인 마를 잘게 썰어 갖은 채소와 버무린 다음 청주를 뿌려 비린 맛을 제거한 고등어 뱃속에 채워 넣고 찐 것. 비스듬히 칼집을 낸 사이로 각색 고명을 올리고 연잎으로 잘 감싼 다음 쪄냈는데 비린 맛이 전혀 없다.

 

한 번 쪄서 살캉하게 익힌 마에 매콤한 양념을 발라 구운 마구이, 곤드레김치, 도토리묵무침도 상에 올랐다. 쑥갓에 녹두가루를 버무려 살짝 찌고 소금과 참기름만 넣어 무친 쑥갓나물도 독특하다. 나물 한 가지를 준비하더라도 거피 녹두를 가루 내어 버무려 찌고, 마를 굽더라도 미리 데쳐 끈적임을 없앤다.

 

먹기에는 쉬우나 준비하는 노고가 만만하지 않은 것이 안동음식이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宾客)의 고장이니 당연하다 할 것이나 그 정성 드리는 일이 버거워 그들이 놓아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벌써부터 아쉽다. 오래도록 보고 싶은,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은 음식이다.

 
은어, 민물고기다 손질한 은어살에 고명으로 올린 건진국수.

왼쪽부터)
1. 낙동강에서 잡히는 은어. 수박향이 난다고 할 만큼 맑은 물에서만 자라는 민물고기다.
2. 은어를 푹 익혀 살을 발라낸 후 먹기 좋게 얌전히 썬다.
3. 밀가루와 콩가루를 4:1의 비율로 섞어 반죽한 후 얇게 밀어 채 썬다.
4. 국수를 손으로 훌훌 털어가며 남은 밀가루를 없앤다.
5. 달걀지단, 당근, 애호박, 은어살을 고명으로 올린 건진국수.

멸치나 고기를 쓰지 않고도 구수한 맛이 제대로인 누름국수에 양념간장을 곁들인다.

왼쪽부터)
1. 홍두깨로 반죽을 밀 때는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손을 밀어내듯이 움직인다.
2. 건진국수와 달리 누름국수는 국숫발을 조금 두껍게 해 씹는 맛을 살리기도 한다.
3. 박달나무로 만드는 홍두깨.
4. 멸치나 고기를 쓰지 않고도 구수한 맛이 제대로인 누름국수.
5. 육수를 쓰지 않아 맛이 담백한 누름국수에는 양념간장을 곁들인다.

소금간을 한 고등어 자반에 청주를 뿌려 비린내를 가신다, 연잎에 싸고 미나리로 묶어 비린내를 없애고 고명을 올려 담백한 맛을 낸 간고등어연잎찜.

왼쪽부터)
1. 소금간을 짜게 한 고등어 자반에 청주를 뿌려 잠시 두면 비린내가 가신다.
2. 마, 양파 등을 칼칼하게 양념한 소를 고등어 뱃속에 넣고 아물린다.
3. 연잎에 싸고 미나리로 묶어 비린내를 없애고 구수한 맛이 배도록 한다.
4. 갖은 고명을 올려 다시 한 번 찌면 삼삼하고 담백한 맛을 볼 수 있다.
5. 안동 간고등어를 가장 호사스럽게 만든 간고등어연잎찜.

깻잎, 양파, 오이, 사과, 미나리 등 수분이 많은 재료들을 넣어 반죽한느 장떡.

왼쪽부터)
1. 깻잎, 양파, 오이, 사과, 미나리 등 수분이 많은 재료들을 넣어 반죽하는 장떡.
2. 고춧가루로 색을 내고 고추장과 된장을 조금 섞어 넣어 반죽한다.
3. 데친 호박잎을 찜통 바닥에 펴고 그 위에 반죽을 펴서 담는다.
4. 젓가락으로 찔러서 반죽이 묻어나지 않으면 다 익은 것. 한 김 식힌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5. 장떡 특유의 향을 내는데 꼭 필요한 차조기.
6. 몸에 좋은 재료들을 모두 넣고 찐 장떡은 잘 쉬지 않아 예부터 먼 길 떠나는 이에게 들려 보내곤 했다.

양념장을 얹어 지진 마구이, 쑥갓무침, 부추, 홍고추, 파를 넣어 무친 밑반찬, 은어무침, 고들빼기김치처럼 묻힌 곤드렛잎.

왼쪽부터)
1. 살짝 데친 마에 매콤한 양념장을 얹어 지진 마구이.
2. 녹두 가루로 버무려 살짝 찌고 소금과 참기름 넣어 무친 쑥갓무침.
3. 무로 만든 짠지를 납족납족 썰어 부추, 홍고추, 파를 넣어 삼삼하게 무친 밑반찬.
4. 은어를 살만 발라 바짝 말린 다음 양념장에 버무려 무친 은어무침.
5. 곤드렛잎을 살짝 절였다가 말려 젓갈 넣은 양념장으로 고들빼기김치처럼 무쳤다.

얇게 채 썰은 무를 생수에 잠깐 담가두었던 물에 엿기름을 넣고 걸러 뽀얀 엿기름을 낸다, 안동식혜. 볶음 땅콩을 올려 먹는다.

왼쪽부터)
1. 안동식혜에 들어가는 무는 얇게 채를 썰거나 새끼손톱보다 더 작게 썬다. 생강은 다진다.
2. 잘게 썬 무와 생강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물을 들이고 고두밥을 함께 버무린다.
3. 무를 썰어 생수에 잠깐 담가두었던 물에 엿기름을 넣고 걸러 뽀얀 엿기름물을 낸다.
4. 양념해 버무린 무와 고두밥에 엿기름물을 붓고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춘 후 서늘한 곳에서 익힌다.
5. 밥알이 동동 떠오를 정도로 잘 삭으면 알싸한 청량감이 생긴다. 먹을 때는 볶음 땅콩을 올려 먹는다.

꾸덕꾸덕할 정도로 밀가루 반죽 후 동그랗게 굴린 다음 다식판에 박는다, 은은한 구수함이 일품인 밀가루 다식.

왼쪽부터)
1. 밀가루는 체에 내려 뭉친 것 없이 준비한다.
2. 다식 반죽은 질어지면 안되므로 꾸덕꾸덕할 정도로만 반죽한다.
3. 반죽을 떼어내 동그랗게 굴린 다음 다식판에 박는다.
4. 다식판에 밀가루 반죽을 넣고 꾹꾹 눌러가며 모양을 낸 다음 꺼낸다.
5. 달고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은은한 구수함이 일품인 밀가루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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