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인물탐방

‘화살’의 맥을 잊기 위해 ‘화살의 영혼’을 좇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
등록일 2021-05-06 조회수2115
‘화살’의 맥을 잊기 위해 ‘화살의 영혼’을 좇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

‘화살’의 맥을 잊기 위해 ‘화살의 영혼’을 좇다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유영기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통칭한다. 영집 유영기 선생은 그중에서도 화살을 만든다. 전국에서 화살이 가장 유명했던 파주 장단에서 대대로 화살을 만들어온 가문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화살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왔다. 부족한 기록과 사료를 찾아 전국을 헤맸고, 그렇게 조선시대 화살 복원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활과 화살을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도 세웠으며, 아들과 손자마저 그의 길을 잇겠다고 나섰다. 화살의 뿌리와 영혼을 찾는 여정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궁시장 유영기
interview

화살은 생각보다 예민한 물건이다. 재료도 특성이 저마다 다르고, 쓰는 사람의 신체 조건과 환경에 따라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화살을 만드는 일 또한 끈질긴 집념과 섬세함 없이는 불가능하다. 유영기 장인의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유의 화살을 복원하고 그 맥을 잊기 위해 대대로 노력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화살에 대한 그의 열정과 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화살을 만든다는 것이 희귀하고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떻게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지금은 북한에 속해있는 장단 지역이 예로부터 화살로 유명한 지역이었어요. 전국 팔도에서 활 좀 쏜다는 활량(弓閑)들의 주문이 쇄도했고, 저 역시 어깨너머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활을 만드는 것을 보며 심부름을 하곤 했어요. 그러다 전쟁이 발발하고 우여곡절 끝에 고향과 가까운 파주에 자리 잡게 된 거죠. 하지만 화살의 재료인 특히 대나무 하나 찾겠다고 안 다닌 데가 없어요. 외진 곳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간첩으로 몰리기도 하고 섬에 들어가려다 물고기 밥이 될 뻔한 적도 있었죠. 저야 이거 해서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고생인 줄 모르고 했는데, 아들과 손주가 이어받겠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말리게 되더라고요.

화살의 깃은 화살이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만들어 준다 ⓒ디자인밈 화살의 깃은 화살이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만들어 준다 ⓒ디자인밈
말씀을 들어보니 대를 이어서 할 만큼 끈질긴 집념과
세세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인 것 같습니다.

화살을 만들어온 한 사람의 장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대를 잇는 환경이 아니면 어느 한 분야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모양만 흉내 내는 거는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혼을 담는 일이죠. 저마다 다른 재료를 가지고 다른 환경과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조건에 맞게 만들면서도 똑같이 정확한 결과를 내는 화살을 만들려면 활과 화살을 친숙하게 보고 자라야 하고, 활량들을 스승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해요. 특히 전통 화살은 맞춤제작 방식이라 개인의 신체조건에 맞춰야 해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수 없거든요. 화살의 거리, 방향,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무엇인지 직접 활을 쏘아 본 활량의 이야기를 듣고 개선해줘야 하는 데, 몇 년 만들어본 경력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전통 화살과 활의 제작은 개인의 신체조건에 맞추는 것은 물론 화살의 거리, 방향,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롭고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디자인밈 전통 화살과 활의 제작은 개인의 신체조건에 맞추는 것은 물론 화살의 거리, 방향, 속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매우 까다롭고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디자인밈
오로지 화살만을 좇는 삶을 사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먼저 통아와 편전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편전(童箭)이란 속칭 ‘애기살’이라고 부르는 매우 짧은 화살을 말합니다. 일반 화살보다 길이는 절반 정도밖에 안되지만, 사정거리는 훨씬 길고 속도가 빠른데다가 파괴력은 더욱 가공할만하다고 전하고 있죠. 덧살이라고 하는 통아에 작은 화살을 메겨 시위를 겨누기 때문에 통아가 없이는 적군이 주워 다시 쓸 수 없는 기특한 화살이기도 합니다. 사실 적에게 제작과 사용법이 알려지지 않도록 어명에 의해 비밀리에 관리된 까닭에 점점 통아와 편전 제작의 맥이 끊긴 것이 사실입니다.

애기살(편전)을 통아에 넣고 쏘는 모습. 멀리에서 숨어 적에게 작고 빠른 화살을 날리는 모습이 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드라마 <추노> 등에 노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집궁시박물관 애기살(편전)을 통아에 넣고 쏘는 모습. 멀리에서 숨어 적에게 작고 빠른 화살을 날리는 모습이
영화 <최종병기 활>이나 드라마 <추노> 등에 노출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집궁시박물관
통아와 편전을 비롯하여 화살을 복원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시대 활의 한 종류인 쇠뇌 ⓒ디자인밈 조선시대 활의 한 종류인 쇠뇌 ⓒ디자인밈

우리 아버님도 통아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그런 화살이 있다더라 말만 전해 들으셨던가 봐요. 어떻게 생겼는지 전해지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통아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고, 국립중앙박물관에 편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상할 수 있으니 함부로 보여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아무도 볼 수 없게 싸매놓는 게 정말 후손을 위한 전승 방법이 맞느냐고 되묻고 설득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여러 장의 서류에 서명하고 나서야 통아와 편전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장이’잖아요.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인데, 우리가 복원하지 않으면 진짜 말 그대로 죽은 유물이 되고 마는 거잖아요. 문헌자료도 많이 연구하고 참고한다고 해도 실제로 보지 않고는 어려움이 있어요. 그렇게 복원했다고 해도 이게 그 시절에 쓰인 그대로가 맞는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고. 그런 부분에서 협조가 원활하지 못할 때가 더 어렵죠.

그래도 복원의 꿈을 놓을 수는 없었어요. 가업을 잇겠다는 아들(전수조교 유세현 씨)과 전국의 박물관을 돌며 학예사들의 협조로 발굴조사 보고서를 얻어 복원에 성공한 것도 여럿입니다. 임금의 징표인 신전, 소리가 나는 신호용 화살인 효시, 방아쇠를 사용하는 쇠뇌, 로켓형 화약 무기 신기전이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죠. 복원뿐만 아니라, 육군사관학교와 함께 시연하는 행사도 치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활과 화살을 테마로 한 전문박물관도 설립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우리 후대에게도 화살을 더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박물관을 설립했죠. 여기에는 제가 직접 제작하고 복원한 작품과 수집한 유물, 그리고 기증받은 세계의 활과 화살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야외에는 직접 활을 쏠 수 있는 활터도 있고, 궁술시연뿐만 아니라 전통 무술 시연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태기활과 대나무 화살을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요. 우리 궁술이 단순히 살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수양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스포츠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박물관이 파주에 지어졌는데, 주변에 볼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단체로 견학 오는 학생들도 많고, 직접 활을 쏘아볼 수 있으니까 더욱 좋아하는 거 같아요. 차후에는 본격적으로 전수할 수 있는 전수회관을 그 옆에 지을 계획입니다. 그리고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의례용 화살들 같은 진짜 아름다운 화살을 만들고 싶어요. 공예분야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미적으로도 아름다워야 하잖아요. 소장 욕구가 드는 화살을 만드는 게 마지막 이루고 싶은 꿈입니다. 활 쏠 일이 자주 없는 현대인들이지만, 그래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게 말이죠.

영집궁시박물관에서 전통 활과 화살을 체험하는 아이들 ⓒ디자인밈 영집궁시박물관에서 전통 활과 화살을 체험하는 아이들 ⓒ디자인밈
파주 영집궁시박물관

주소 : 경기 파주시 탄현면 국원말길 168
가격 :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문의 : 031-944-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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