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영조 (英祖)
1694(숙종 20)~1776(영조 52), 조선의 제 21대 왕

 재위 1724~1776년. 숙종의 4남, 1721년(경종 1) 경종에게 후사(後嗣)가 없어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이듬해 김일경(金一鏡) 등의 사주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1724년 즉위, 김일경, 목호룡(睦虎龍) 등 신임사화를 일으킨 소론을 숙청, 한때 노론정권을 수립했으나 붕당(朋黨)의 폐습을 통감하여 차츰 소론을 등용하고, 1727년 노론의 강경파를 추방(丁未換局), 이후 양파를 고르게 등용함으로써 탕평책(蕩平策)을 기본정책으로 삼아 당쟁의 격화를 눌렀다.


 한편 가혹한 형벌을 폐지 또는 개정하여 인권존중을 기하고 신문고(申聞鼓) 제도를 부활,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알리게 했으며, 금주령(禁酒令)을 내려 사치, 낭비의 폐습을 교정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민생의 안정에 힘썼다. 기민(飢民)의 실태를 조사하여 그들을 구제하고, 균역법(均役法)을 제정, 세제(稅制)의 합리화를 기했다. 한편 북관군병(北關軍兵)에 조총(鳥銃) 훈련을 실시하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 등이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여 반란을 기도했으나 곧 진압되고, 1729년 화차(火車)를 제작 이듬해, 수어청(守禦廳)에 총의 제작을 명했고, 진(鎭)을 설치하여 각 보진(堡鎭)이 토성(土城)을 개수하는 등 국방대책에 힘썼다.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부활하여 조세수입을 늘리고 1756년에는 기로과(耆老科)를 신설했다. 학문을 즐겨 특히 인쇄술을 개량, 속대전(續大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등 많은 서적을 발간케 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서문과 어제경세문답(御製警世問答), 위장필람(爲將必覽) 등을 친제(親製)하였으며, 유능한 학자를 발굴하여 실학(實學)의 학통을 수립하게 하고, 풍속, 도의의 교정에도 힘써 사회, 문화, 산업, 예술 등 각 방면에 거쳐 부흥기를 이룩했다. 1762년 세자(世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등 비극이 있었으나 조선왕조의 역대 왕 중 가장 재위 기간이 길고 각 방면에 재흥의 기틀을 마련한 영주(英主)였다. 만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능은 원릉(元陵 : 楊州).


[文獻] 景宗, 英祖實錄, 國朝寶鑑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89
- 제작작가 : 석영 최광수
- 영정크기 : 세로150cm X 가로100cm
- 소 장 지 :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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