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장보고 (張保皐)
?~846(문성왕 8), 신라의 무장(武將)

 별성명은 궁복(弓福), 궁파(弓巴). 일찍이 당나라 서주(徐州)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武寧軍小將)에 올랐으나, 신라에서 잡혀와 노비(奴婢)가 된 사람들의 불쌍한 정경을 보고 분개, 벼슬을 사직하고 귀국하여 해적들의 인신매매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해로(海路)의 요충지인 청해(淸海: 莞島)에 진(鎭)을 설치하였다.


 완도 가리포(加利浦)에 성책을 쌓고 항만시설을 보수하여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였다. 왕에 의해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에 임명된 후, 수하의 수병(水兵)들을 훈련시켜 해적을 완전 소탕하였다. 837년(회강왕 2) 왕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祐徵: 神武王)이 청해진으로 오자 이를 맞아들였으며 이듬해 우징과 함께 반란, 839년 민애왕을 죽이고 우징을 왕으로 즉위시켜 감의군사(感義軍使)가 되었다. 신무왕이 죽은 후 문성왕에 의하여 진해장군(鎭海將軍)이 되었으며, 840년(문성왕 2) 일본에 최초로 무역사절을 파견하였고, 당나라에도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를 보내어 삼각무역을 실시하였다. 845년 딸을 왕의 차비(次妃)로 삼게 하려 했으나 군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어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이듬해 그의 세력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 보낸 자객(刺客) 염장(閻長)이 거짓 항복해 오자 깜박 속아서 그를 맞아들였다가 살해되었다.


 장보고는 완도 청해진에 근거를 두고 황해와 중국해 및 동해의 해상경영권을 장악하였으며, 미국 라이샤워 교수의 말처럼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 군림하면서 중국과 한국, 일본까지의 바다를 독자적으로 다스렸으며, 중국 산동반도, 하남성, 강소성, 절강성 일대에 신라방(新羅坊)과 신라인 촌(新羅所)을 개척하였다.


[文獻] 三國史記, 三國遺事, 金庠基: 張保皐 等

[영정개요]
- 표준영정 지정년도 : 1979
- 제작작가 : 일랑 이종상
- 영정크기 : 세로119cm X 가로94cm
- 소 장 지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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