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표준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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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위 1849~1863, 초명은 원범(元範),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로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이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 순조의 비, 金祖淳의 딸)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

 초명은 온천(殷川), 본관은 금천(衿川), 서울출생, 고려개국공신인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궁진(弓珍)의 아들, 아버지로부터 학문과 무예를 배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김장길의 양아들이 됨. 983년(성종 2) 문과(文科)에 장원, 예부시랑(禮部侍郎)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거란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자는 동현(同玄), 본관은 파평(坡平). 문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 1088년(선종 5) 합문 지후(閤門祗侯)로 광주(廣州), 충주(忠州), 청주도(淸州道) 등지에 출추사(出推使)로 파견되었다, 1095년(숙종 즉위) 좌사낭중(左司郎中)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숙종의 즉위를 알렸다. 1098년에 동궁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가 되어 조규(趙珪)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해허씨(金海許氏)의 시조모. 허황옥(許黃玉) 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인데 부왕(父王)과 왕후가 꿈에 상제(上帝)의 명을 받아, 공주를 가락국 수로왕의 배필이 되게 하였다 한다. 공주는 많은 종자(從者)들을 데리고 김해 남쪽

 호는 퇴계(退溪). 본관 진보(眞寶). 예안(禮安) 출신이다.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호조좌랑(戶曺佐郎) 등을 거쳐 1539년(중종 34) 형조좌랑으로서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를 겸직, 1542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祿)때 이기에 의해

 호는 다산(茶山). 본관 나주(羅州). 광주(廣州) 출신.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 보고 그 학문에 깊이 감동하였다. 1783년 회시(會試)에 합격하여 경의진사(經義進士)가 되어 정조와 만나 <중용(中庸)>을 어전에서 강의하고, 1784년(정조 8)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태종의 셋째 아들. 22세의 나이로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훌륭한 치적을 많이 쌓아, 수준 높은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집현전(集賢殿)을 설치하여 황 희(黃喜), 맹사성(孟思誠)등 청백리(淸白吏)를 등용하였고, 왕립 학술기관으로 확장하여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자는 여해(汝譜), 본관은 덕수(德水), 서울 출신. 1579년(선조 9)식년무과(式年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미관말직(微官末職)만을 지내다가 1591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에 승진, 좌수영(左水營 : 麗水)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전력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초로

 본관 김해(金海).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2대손(代孫)으로, 화랑이 되어 화랑정신을 기르고, 611년 삼국통일을 기원(祈願)하고 무술을 닦은 뒤 국선(國仙)이 되었다. 644년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백제의 가혜성(加兮城) 등 7개의 성을 쳐 이기고 이듬해 1월에 개선하였다.  그런데 왕을 알현하기도 전에 매리

 박연,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본래 대가야국(大伽倻國)의 성열현(省熱懸)사람으로 가실왕의 총애를 받았다. 가실왕의 뜻을 받들어 12현금(弦琴 : 伽倻琴)을 만들고, 이 악기의 연주곡으로 지명(地名)에서 얻은 악상(樂想)으로 12곡을 지었다.  551년(진흥왕 12) 신라에 투항(投降), 제자 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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