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전통

파리의 여름을 달군 한식문화행사(ÉVÉNEMENTS HANSIK K-Food)
등록일 2024-10-07 조회수222

   2024년 8월 11일 파리올림픽이 폐막했다. 1984년 LA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이 파견된 대한민국은 32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다. 파리는 뜨거웠다. 경기장에서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들 덕분이었을까? 파리에는 최고 기온은 35도, 체감 기온은 38도까지 치솟는 폭염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물론 관객의 열정도 파리에 열기를 더했다. 도시 곳곳에서는 거리 응원이 펼쳐졌다. ‘15분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함께 경기를 관람하며 응원하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15 구청 앞 광장의 뜨거움은 단연 으뜸이었다. 무엇이 15 구청 앞을 뜨겁게 달구었을까? 여러분께 그 현장에 열기를 몇 자의 글과 사진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학창시절 체육대회가 열리던 날이면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김밥을 말아주셨다. 입이 짧아 김밥 한 줄이면 충분히 배가 차는데도 불구하고 도마 위에 김밥은 쌓여갔다.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 먹으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평소보다 무거운 도시락을 들고 가던 등굣길, 이윽고 학교에 도착하면 운동장으로 향하기 전에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 먹으며 전의를 다졌다. 체육대회에 임하는 자세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못지 않았다. 운동장에 펄럭이던 형형색색의 만국기는 올림픽 스타디움에 서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이었다. 김밥을 나눠 먹은 친구들과 함께 흙먼지를 마시며 운동장을 달렸던 날에는 유독 체육대회 성적이 좋았다.






   파리의 15구청 광장 앞은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밥심’을 낼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한 사람만을 위한 작은 식탁 소반’을 주제로 열린 한식문화홍보 캠페인이 그 주인공이었다. 15구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다. 몽파르나스를 구 경계에 품고 있지만 관광객들로 붐비는 마레지구와는 달리 상점이 적고, 호텔보다는 작은 숙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종종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광장에서 열린 한식문화행사(ÉVÉNEMENTS HANSIK K-Food)에는 현지인은 물론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다.





   한식문화행사는 지난 8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15구청 광장에서 열렸다. 행사는 크게 한식문화, 전통문화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한식문화 체험은 타래과, 오늘전통 창업기업의 조각 약과와 다식, 수정과를 곁들인 다과상, 감자전, 김치전, 부추전, 오미자차로 구성된 주안상으로 나뉘어 운영됐다.





   광장의 한 편에는 공진원이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  ‘한식문화상자 보급지원 사업’으로 보급된 한식문화상자(궁중잔치) 전시가 열렸다. 소반과 주안상을 활용한 포토존도 이색적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우연히 발견한 낯선 광경에서 마주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파리의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한국의 전통 주막에는 금새 사람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관람객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더위를 잊은 관람객들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이국적인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부스 밖은 흡사 올림픽 경기장 같았다. 전통놀이 현대화 콘텐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리액션 덕분이었다. ‘전통놀이문화 조성 및 확산 사업’의 일환으로 현대화되어 소개된 전통놀이는 팽이, 딱지치기, 투호 놀이로 총 3가지였다. 촘촘히 짜인 멍석 위에 놓인 제기, 딱지를 발견한 관람객들은 친절한 스태프들에게 놀이 규칙을 설명받았다. 가족, 연인,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놀이를 체험했다. 시범을 보이던 스태프와 즉석에서 대결이 이뤄지는 재미있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여행객들도 어느 순간 하나가 되었다. 이색적인 놀이 체험에 만족하면서 딱지치기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선정될 수는 없느냐며 농담을 주고받는 관람객도 있었다. 놀이를 즐기는 것에는 국경도 인종도 언어도 중요하지 않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광장에서 관람객은 한국의 전통문화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놀이 체험이 진행 중인 공간의 옆 테이블에는 진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통문화 체험 행사에 참여하던 참여자들의 예술혼 덕분이었을까? 고급스러운 보자기를 활용한 보자기 워크숍, 자개를 활용한 미니 소반 만들기, 전통 식재료인 북어를 소재로 오방색 실을 활용한 북어 키링 만들기와 한식 소반 컬러링까지 한식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 행사는 참여자들에게 한국의 예술가가 되는 경험을 선물했다. 청록, 분홍의 공단 보자기가 시선을 끌었다. 화려한 보자기 색상에 매료된 참여자들은 보자기를 활용한 와인 포장법을 체험하고 미니백 만들기, 매듭법을 체험했다. 단연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은 미니 자개 소반 만들기였다. 소반을 직접 조립하고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했다. 체험 개시 전부터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





   소중한 걸음을 한 관람객을 빈손으로 보낼 수 없었다. SNS로 참여 인증한 관람객에게 한국의 전통문양이 인쇄된 손거울을 선물로 증정하고 있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관람객에게는 노방천을 활용한 장바구니를 기념품으로 드렸다. SNS 입소문 덕분이었을까? 행사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관람객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흘간 9,130명의 관람객이 부스를 방문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의 가운데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흘간 열린 행사의 열기는 복합 문화 공간 ‘OORI(우리)센터’로 옮겨갔다. 파리 15구 Charles Michels역과 파리의 최대 규모 쇼핑몰인 보그르넬 사이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OORI는 한국의 문화를 알라가 위해 2022년 문을 열었다. 바로 이곳에서 파리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활용한 전통 한식 주안상을 시연, 조리하고 시식할 수 있는 한식문화교실이 열렸다. 행사를 진행한 정주희 강사는 요리학교 Le Cordon Bleu를 졸업하고 2018년부터 파리에서 김치페스티벌을 운영한 장본인이다. 한식문화교실에서는 너비아니, 상추 겉절이, 한산소곡주가 소개되었다. 가정,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마련했던 주안상의 대표 메뉴이자 현지인들의 입맛을 고려한 메뉴 선정이었다. 메뉴는 한국 전통 거창유기그릇에 플레이팅해 한산소곡주와 페어링해 시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체험 공간은 공진원의 한식개발상품인 매트를 활용한 액자가 비치되어 전통적인 공간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친절한 리셉션의 응대와 환대 속에서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쉐프는 참여자들과 눈을 맞추며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졌다.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전문적이고 간결한 설명에 참여자들은 몰입할 수 있었다. 시연 수업 이후 아름다운 한국 거창유기그릇에 플레이팅하는 것을 가장 만족스러워했다. 단체사진을 촬영하며 언젠가 한국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며 작별했다.



 

‘혹시 한국인입니까?’



   10여 년 전 파리 여행에서 개선문 앞에 있던 레스토랑에서 조금 이른 저녁을 하는데 웨이트리스가 말을 걸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튀르키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그녀는 KPOP을 좋아하고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며칠 전 한국의 음악방송에도 댄서로 출현했다는 그녀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한국말 실력을 점검하고 싶은 마음에 꼭 한국말로 대화한다고 했다. 파리의 중심에서 만났던 한국, 그것이 필자가 경험한 파리의 첫인상이었다. 올해 파리의 여름도 다르지 않았다. 파리 곳곳에 숨어있던 한국의 전통문화, 음식문화를 발견하는 기쁨과 반가움이 있었다. 올림픽을 매개로 경기장 안과 밖에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시도가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그들은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현장에서 스치듯 했던 약속처럼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뜨거웠던 파리의 태양 아래에서 나누었던 그날의 열기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진입하며 따뜻한 온기로 마음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었다. 흙먼지를 맞으며 함께 김밥을 먹던 친구들과 추억처럼 낯선 도시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도 기억에 아로새겼다.





 

글 양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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