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기업 톺아보기

나전칠기와 일렉트릭 기타, ‘멋질’ 수밖에 없는 조합일세
등록일 2024-11-22 조회수60

 
‘멋질연구소’는 헤드리스(Headless) 기반으로 바디가 간소화된 디자인에, 나전칠기 기법을 적용해 표면을 장식한 기타를 제작한다. 외관상으로는 악기라기보다 공예품에 가깝지만, 소리 내는 기능 또한 충실히 갖춘 일렉트릭 기타다. 전통 가구처럼 세심하게 짜맞추어진 각 부품을 통해 현의 울림이 전달되고, 자개로 장식된 픽업을 지나면 전기 신호로 변환되어 앰프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곧 강렬한 음악 소리가 생명력을 내뿜으며 출력된다. 멋질연구소의 기타가 연주되는 모습을 보면, ‘멋지다!’라는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 정도로 특별히 멋진 것을 보면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르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정형 대표를 만나 물었다.
 
Q. 기타리스트 상흠 님이 ‘Shovel’을 연주하는 영상을 감명 깊게 봤어요. 공들여 만든 악기가 연주되는 모습을 볼 때, 제작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때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몸에 전율이 일어나죠. 기타를 처음 만들었을 때 느낀 것보다 줄어들긴 했지만요. 앰프에 선을 꽂고 나서 지잉, 소리가 날 때, 기타에 생명을 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기타 한 대 한 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Q. 악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요? 

19살, 대학 진학하기 전에 진로를 고민하다가, 악기를 만들겠다고 결정했어요. 어렸을 때 1960~1970년대 록 음악에 빠져 있었거든요? 그때는 록스타들이 기타를 직접 만드는 일도 빈번했어요. 그게 멋있어 보였죠. 저도 그런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음악이나 그림 그리기처럼 뭔가를 창작하는 행위가 함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기타를 만들면 그런 꿈이 이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런데 당시 한국에 기타 제작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무조건 해외에 나가야 했거든요. 아니면 미국이나 일본에서 배워 오신 분들께 도제식으로 배우거나요. 근데 그런 상황은 안 돼서 금속공예학과에 진학하게 된 거죠. 한국은 제도권에서 배우지 않으면 공예가로 인정해 주지 않는 그런 문화도 있고요.

Q. 그렇게 첫 기타를 만든 게 대학생 때죠?

전공으로 금속공예 기초를 좀 배우고, 스스로 기타 관련 책도 많이 찾아보면서 만들었어요. 해외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도 찾아보고요. 낙원상가에 가서 수많은 기타를 모델별로 만져보고, 실제로도 쳐 보고, 사장님들이랑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귀여워해 주시는 분들도 있긴 했지만, 사업장이잖아요. 저를 귀찮아하시는 분들도 많았죠.

Q. 지금이야 전문가니까,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내가 만든 기타에 대한 확신이 있을 텐데, 그땐 막막했을 것 같은데요. 제대로 만든 건지 확인이 안 되잖아요.

딱 봐도 제대로 못 만들었다는 걸 알았고요.(웃음) 그래도 더 열심히, 계속해서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 막막하진 않았습니다. 당장 빨리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선보여야겠다,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내 삶의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과정이 천천히 진행돼도 조급한 마음은 없었어요.
 

 
the Pen1
 
Q. 현대적인 일렉트릭 기타에 전통 공예 기법인 나전칠기를 적용하게 된 계기는 뭐예요?

제가 2017년에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The Pen’이라는 일자형 기타를 만들었는데요. 그걸 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독일의 MCBW(Munich Creative Business Week)라는 디자인 전시박람회에 소개해 주셔서 주목을 받았어요. 관람객들이 그 기타가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느낌을 특이하게 봤나 봐요. 그리고 저는 원래 그런 의도로 만든 건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일자형인 가야금이나 거문고가 연상됐는지 유럽인들에게는 제 기타가 동양적으로 보였던 거예요. 그런 좋은 반응을 얻고서, 어떻게 하면 전자 기타를 더 한국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옻칠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배워서 시도하려고 관련 재료와 자료를 찾던 차였는데요. 마침, 무형문화재 칠장 이수자인 안소라 작가를 만나게 된 거죠.

Q. 운명처럼 옻칠 전문가인 안소라 작가님을 만나셨네요. 

졸업 후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신당 창작 아케이드’라는 공예 전문 레지던스에 입주했는데, 안소라 작가가 마침 맞은편 방이었어요. 저는 기타에 옻칠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안소라 작가는 자신의 옻칠을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 칠할 기물을 찾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작업하게 됐죠.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칠장 이수자 안소라(좌), 멋질연구소 대표 이정형(우) 
 
Q. 협업은 순조롭게 이뤄지나요? 

제가 기타의 형태를 디자인하고 만들면, 안소라 작가가 거기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칠할지 정한 뒤 작업하는데요. 각자의 영역이 나뉘어 있지만, 모든 과정을 다 상의하면서 하긴 해요. 단지 예쁘게 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악기를 만드는 거잖아요. 소리에 영향을 주는 기술적인 방식도 고려해야 하고, 소비자가 구매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고장 없이 다룰 수 있어야 하고요. 논의할 게 상당히 많아요. 그러면서 계속 의견이 부딪치고 뭐 하나 선택할 때마다 싸우기는 합니다.(웃음)

Q. 멋질연구소에서 만든 모든 기타가 기존에 상상해 보지 못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이던데요.

형태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도 도전인데요. 나무에 옻칠하는 과정이야말로 정말 모험적인 거예요. 경화하는 게 상당히 까다로워요. 다른 도료는 그냥 상온에 두면 굳거든요? 근데 옻칠의 경우에는 습도가 70% 이상이어야 하고, 온도가 20°C 이상이어야 해요. 적절한 환경으로 맞춰야 하죠. 그런데 온습도를 그렇게 맞추면, 또 나무가 습기를 머금고 부풀어요. 기타는 정말 예민한 기물인데, 그 찜통에 넣는다고 하면 모든 기타 제작가가 말도 안 된다고 해요. 그걸 어떻게 기술적으로 보완하고, 변형을 최소화하느냐가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Q. 멋질연구소의 팀원인 두 전문가만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까지 기타에 옻칠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공예품은 첫째로 내구성이 좋고, 둘째로 미관이 예뻐야 해요. 옻칠을 하면 이 두 가지를 충족할 수 있어요. 실용성이나 효율성을 1순위로 따지시는 분들은 이해 못 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에겐 텍스처나 미관적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보존 가치, 헤리티지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설명해 드리자면, 많은 분이 악기에 옻칠하면 소리가 더 좋아질 거로 생각하시는데요. 기타는 겉에 무엇을 칠하든지 소리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 이 몸체가 나무로 만들어지잖아요. 목재가 외부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충격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따져볼 때, 다른 인공 화학 코팅보다 옻칠이 내구성을 더해주기 좋죠. 그리고 자연에서 나오는 도료이니 환경에 피해를 덜 준다는 이점도 있고요.

Q. 그럼 지금껏 만든 기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기타는 뭔가요?

2018년도에 처음으로 안소라 작가와 같이 만들었던 ‘The Frame’이라는 기타도 좋아하고요. 가장 애착 가는 기타는 2022년도에 만든 ‘Shovel’인데요. 디자인 요소에 안소라 작가의 자개 공예가 중점으로 들어가거든요. 저희가 의도한 대로 잘 제작됐어요. 그 기타 덕분에 주목도 많이 받게 됐고요.
 

(좌)  the frame 1   (우) Shovel
 

Osaka Sound Messe 2023
 
Q. 그 기타로 2022 GGBO(The Great Guitar Build Off)에서 2등 상을 받으셨죠? 그 외에 또 기억에 남는 수상 순간이 있다면요?

2022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을 때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와 안소라 작가 둘만 함께 작업하다가, 멋질연구소에서 다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같이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김동규 소목장 이수자, 김은주 누비장 이수자 선생님들과 <2022 풍류도> 프로젝트를 시도했거든요. 네 명이 하나의 작품을 만든 거죠. 기타 자체로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이런 협업이 수상의 이유로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외국은 몰라도 국내 공예 산업에서는 협업하는 사례가 많지 않으니까요.
 

사진 2022 공예트렌드페어 <2022 풍류도>
 
Q. 멋질연구소가 기타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남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항상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저는 남들과 똑같이 만드는 건 용납이 안 돼요. 저한테 다른 유명한 회사의 표준화된 어떤 모델을 레퍼런스로 주시면서 제 방식대로 재해석해 달라고 의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것도 제 나름의 고유성을 가지면서 작업할 수도 있긴 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멋질연구소의 기타가 유명해지고 주문이 많아질수록 그런 의뢰도 많아졌거든요. 사실 지금 기타 제작을 잠깐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Q. 건강 문제로 휴식기를 가진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렇군요.

내가 기타 제작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들이 기타를 대하는 사회적인 태도가 다르다 보니까,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아요. 그 괴리감에서 오는 반발심에, 아예 클래식한 기타를 만들어 보고 싶기는 했어요. 기존의 다른 모델을 따라 할 생각은 아니었고, 제가 생각하는 기타의 클래식함을 상상해 봤는데요. 그걸 구상하다가 건강 문제도 겹치고, 안 되겠다 싶어서 쉬게 된 거예요. 휴식을 취하면 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보는 걸 수도 있고요.

Q. 그럼, 요즘엔 어떻게 지내요?

만화를 연재하고 있고요. 사업적으로는 다른 방향을 찾고 있어요. 제가 궁 산책을 좋아하거든요? 서울에는 궁궐이 다섯 개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요즘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가면 외국인이나 타지에서 오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기념품 매장에 가면 살짝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청 예쁜 전통 상품은 많지만, 궁궐과 관련 없는 것들이 다수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 관광지에 가면, 그 공간과 연관성 높은 굿즈를 참 잘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거든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념품으로 출시한 반가사유상이 대히트를 쳤잖아요, 저는 그게 ‘사유의 방’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경험한 것을 굿즈로 치환해 가져갈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흔쾌히 구매하는 거죠. 그래서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고궁을 걸으면서 얻은 영적이고 미적인 경험을 그대로 집에 가져갈 수 있게끔, 장소성이 있는 그런 굿즈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이유로 지금은 우리나라 궁궐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진  이정형 대표의 일러스트 작품

공예가들 사이에는 ‘손끝이 맵다’라는 은어가 있다. 무언가를 잘 만든다는 뜻이다. 인터뷰 중 이정형 대표는 자신의 손끝이 매워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휴식기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고 미적 안목을 키우면, 이전보다 더 나은 솜씨로 기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멋질연구소의 후속 기타 제작 계획은 아직 없기에 당분간 새로운 걸작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공예품이든 만화든 일러스트든 그가 창작하는 모든 것은 색다르고 흥미를 끈다. 그러니 꼭 기타가 아니더라도, 그의 삶에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가 늘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뷰이/사진제공: ‘멋질연구소’, 이정형
인터뷰어: 김승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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