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기업 톺아보기

한국 전통 다과로 담아낸 느림의 미학, 에움
등록일 2024-11-22 조회수58
“풍족함과 사랑,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 이것이 바로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요리계급전쟁’의 출연자 에드워드 리의 결승전 요리 소개말이 화제다. 한국의 전통 과자는 들어가는 재료가 많고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대개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그야말로 먹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가득 담겼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정성을 고스란히 눌러 담아 한식 다과를 만드는 브랜드, 에움의 장하진 대표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한과의 매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Q. 먼저 브랜드와 대표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리 한과를 현대적인 제조 방식으로 재해석해 만드는 디저트 브랜드, 에움을 운영하는 장하진입니다.
 


Q. ‘에움’이라는 이름의 어감이 참 좋아요. 순우리말인가요?

나희덕 시인이 쓰신 ‘푸른 밤’이라는 시 구절에 ‘에움길’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빙 둘러서 가는 길, 결국 도달하는 길’이라는 뜻이죠. 지름길은 목적지에 일찍 닿지만, 놓치는 것이 많잖아요. 그와는 달리 멀리 돌아가는 에움길은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사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느림의 미학이 한과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움길에서 따온 ‘에움’을 브랜드의 이름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Q. 한과 만드는 과정을 에움길을 걷는 것에 비유한 거군요.
에움의 디저트 또한 전통 다과를 기반으로 하기에, 다른 디저트보다 만드는 데 품이 많이 듭니다. 완성까지 오래 돌아가야 하지만, 차근차근 정성과 시간을 들여 결국 소비자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주는 디저트를 만들고자 합니다.
 


Q. 만들기 까다롭고, 대중성이 높지 않은 전통 다과를 전문으로 한 디저트 카페를 차리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는 서양 디저트보다 오히려 한국 디저트를 접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한옥 마을이 있는 북촌, 전주, 경주 등의 지역이나 인사동 같은 특수 상권에서나 한과를 경험할 수 있죠. 에움의 디저트는 우리나라가 전통문화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 보존하고 자연스럽게 현대까지 이어왔다면, 혹은 한국이 좀 더 빨리 개방되어 다른 나라와의 식문화 교류가 활발했다면 한국의 다과는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했을까? 라는 상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한과를 떡이나 약과, 유과 정도로 국한해 생각하시지만, 정과, 과편, 강정, 단자, 다식 등 다양한 한식 디저트가 많거든요. 우리 선조의 지혜가 담긴 이런 다과를 에움만의 색깔을 입혀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그럼 에움에서 만드는 디저트의 종류는 크게 어떻게 나뉘나요?

크게 약과류, 찰편류(찰떡), 증편류(술떡)로 분류하여 판매하고 있어요. ‘둘러 가는 길목, 계절을 빚는 곳’을 브랜드 카피라이팅으로 삼아서 각 계절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여 디저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Q. 에움의 약과는 한국 전통 약과의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저희가 만드는 약과는 ‘결약과 샌드’와 ‘조각 약과’가 있는데요. 결약과 샌드는 반죽, 튀김, 건조, 집청, 숙성까지 72시간의 긴 과정 끝에 만들어지는 결이 살아있는 결약과에 바닐라, 흑임자, 코코넛, 딸기 등 다양한 재료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을 가운데에 넣어 만들어요. 전통 모약과와 서양의 밀푀유에서 착안한 퓨전 다과죠. 조각 약과는 바삭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과와 시나몬 향이 은은히 풍기는 에움만의 특제 집청 시럽으로 풍미를 낸 기본 조각약과도 있고, 아망드 쇼콜라에서 착안하여 초콜릿 파우더를 입혀 만든 초코 조각 약과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 나름의 재해석을 하는 거죠.
 


Q. ‘구움 찰편’도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방금 설명해 드린 조각약과도 인기가 많고, 구움 찰편 역시 많이 즐겨 드시는 대표 메뉴예요. 쫄깃한 찰떡과 부드러운 구움 과자를 결합한 디저트인데요,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라서 우유, 커피, 차 등 다양한 음료에 페어링하기 좋아, 선호도가 높습니다. 당도가 적당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에움의 메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어요.


Q. 구움 찰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찰떡이지만, 수증기로 찌는 방식이 아닌 오븐에 구운 방식으로 만들어요. 또 각 계절에 맞춰 재료를 쓰다 보니까 쑥초코, 보리밤, 유자무화과, 사과홍차, 오디모카 등 다양한 맛으로 개발했죠.

 


Q. 증편을 재해석한 방식도 재밌어요. 우리가 아는 술떡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잖아요.

‘구움 증편’은 생막걸리로 직접 발효한 반죽을 오븐에 쫀득하고 포슬포슬하게 구워내고, 그 위에 달콤한 가나슈를 얹어내는데요. 서양의 티그레 구움 과자와 같은 앙증맞은 모습이 매력적이죠. 참깨, 오미자, 말차, 밤 등 여러 맛이 있어 골라 먹는 재미도 있고요.

 


Q. 디저트 종류가 정말 많은데, 개발을 끊임없이 하나 봐요.

한과 종류가 워낙 많으니까요. 전통 다식을 쌀과자로 해석한 여러 맛의 ‘다식 과자’와 예로부터 즐겨 먹던 상투 과자를 모티프로 한 ‘앙금 과자’도 새롭게 론칭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과 외에도 음청류 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요. 배숙과 복분자 딸기청을 개발한 음청류로 한국의 전통 음료를 새롭게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전통 다과가 양과자에 비해 맛이 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이런 맛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에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Q. 디저트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젊은 고객층에게, 또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식문화가 인기입니다. 이에 맞춰 많은 브랜드가 서양 디저트를 베이스로 한국적인 재료나 전통 요소를 첨가한 디저트를 개발해 출시하고 있죠. 하지만 에움은 이와는 조금 다르게 접근합니다. 전통 한과를 기반으로 타국의 재료를 첨가하거나, 또는 현대적인 방식을 융합해 디저트를 개발하고 있어요. 한과의 재료와 제조 방식을 사용하여 새롭게 정의한 한식 디저트인 것이죠. 저희는 한과를 좋아하는 기존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았던 젊은 세대부터, 아예 처음 접근하는 외국인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제품으로 한국 전통을 새롭게 이어 나가고자 합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요. 옛것을 이어가지만, 필요하다면 변화시킬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만들되 근본은 잃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어요.

 


Q. 고객들로부터 받은 피드백 중에 인상 깊은 것이 있나요?

베이킹 클래스 운영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습니다. 한국 다과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에움의 디저트는 전통 제조 방식 다과뿐만 아니라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한 한식 디저트이기 때문에, 더 흥미를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Q. 제빵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을 것 같네요. 그런데 한과는 양과자와 만드는 방식, 난이도 면에서 차이가 있죠? 더 오래 걸리고 어렵지 않은가요?

한과는 보편적으로 크기가 작고 아담합니다. 작을수록 맛과 모양에 섬세함을 담아야 하죠. 이 작은 다과에 다채로운 맛을 표현하려면, 손이 더 많이 갈 수밖에 없어요. 에움의 약과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먼저 집청 시럽에 들어가는 부재료를 손질해서 끓이고요. 약과 반죽을 만들어 모양을 내고, 튀기고, 집청하고 건조한 뒤, 숙성까지 하는 기나긴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작은 하나의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꼬박 사흘 이상이 걸리죠. 하지만, 오래 걸리는 만큼 맛의 깊이와 정성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Q. 지난 8월, 파리에서 열린 <한식문화행사>에서 세계인들에게 에움의 한과를 선보이기도 했잖아요.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먼 나라로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에도 최대한 문제없는 디저트인 조각 약과와 다식 과자를 다과상으로 내놓았는데요. 솔직히 준비 과정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식 다과의 맛과 멋이 세계로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즐겁게 준비했죠. 늘 하던 방식대로 준비해 가면 우리의 정성과 에움 디저트의 맛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먼 타국에서 한국의 미식 대표로 저희 디저트를 선보이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Q. 남은 2024년도 쉴 새 없이 바쁘다고요.

다가오는 11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규모 카페 박람회, ‘제23회 서울카페쇼’에서 공개한 서울커피스팟 20선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행사에 맞춘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Q. 전통문화 산업 창업을 준비하는 다른 예비 창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가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책임감이 생기죠. 에움도 갈 길이 멀고 아직 어려운 과업이 많이 남아 있지만, 한국의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 발자취를 작게나마 먼저 남길 테니, 예비 창업가들도 이 여정에 동행하며 전통문화 산업의 길을 개척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꿈이 궁금해요.

가까운 미래에는 해외에 에움 매장을 열어 한국의 전통 다과를 알리고 싶습니다. 한과가 빵, 쿠키 등의 서양의 디저트처럼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언젠가 한식 다과가 전 세계적으로 친숙한 식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이에 저희 에움이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통 한과는 최근 2030 청년세대 사이에서도 새로운 디저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한식 디저트를 개발하며, 이런 흐름에 이바지하고 있는 에움의 장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계에 한과의 우수성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알리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전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한국을 넘어서 글로벌 청년들에게도 퍼져 나갈 한과 열풍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인터뷰이, 사진 제공: ‘에움’, 장하진
인터뷰어: 김승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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