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에 나는 좋은 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은 한식의 기본이다. 산과 바다, 평야와 갯벌을 모두 지닌 한국의 지형적 특성은 지역마다 고유의 특산물을 가지게 된 배경이 되었다. 각 고장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들은 사계절 날씨의 변화와 세시풍속, 생활양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향토 색이 담긴 음식으로 거듭났다. ‘재료 중심 인문학'은 한식의 기본인 식재료 자체를 주목하고 이를 인문학적으로 탐구한 프로그램으로, 문학 속 구절과 전통 오방색이 식재료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아 떠난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음식을 먹는 일은 그 지역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얻게 해준다. 음식이란 자연 환경과 역사적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산물이기 때문. 요리는 인간이 살아온 삶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문화다. 자연환경과 더불어 생활환경에 따라 많은 식재료들은 토속적인 이야기를 가지게 되고 그에 걸맞는 조리법이 발달하게 된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식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졌을 때 어떠한 맛을 내는가, 먹은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떠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가 등에 대해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식을 통해 건강을 지키고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발전된 식재료 보관법은 의학과 과학을 대체해온 우리 옛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맛을 지닌 재료들을 늘어놓고 살펴보는 일이 흥미로운 까닭은 음식을 향유하는 방식과 맛을 내는 조리법부터 지혜로운 보관법까지 긴 시간동안 쌓아온 우리의 식생활 문화의 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맛과 기운, 색을 가진 세상 모든 식재료를 고르고 담아 나누는 데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겠으나 마땅한 근거는 필요한 법.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수많은 식재료 중 ‘재료의 인문학’에서 탐구할 기준으로 삼은 것은 오방색의 ‘다섯 가지 빛깔'이다. 한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각적 표현인 오방색은 음양오행에서 단순한 색상을 넘어 방향이자 기운, 계절을 내포한다. 흑(검다: 미역), 백(희다: 쌀), 적(빨갛다: 고추), 청(푸르다: 나물), 황(노랗다: 잣)의 분류로 선택한 재료들은 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을만큼 친숙한 것들이다. 옛 문헌과 자료에 근거해 각 재료의 유래와 기능을 해석하는 인문학적 접근은 한국 식문화에 대한 이해를 더하는 동시에 지적인 흥미를 충족시켜준다.
미역은 수확 시기와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사진은 구본창, KF005.
흑색의 식재료 중 주목한 미역은 해채(海菜)·해조(海藻)·해라(海羅)·해곽(海藿)처럼 바다의 산물임을 나타내는 것과, 일찍 따면 조곽(早藿), 여름에 따면 감곽(甘藿)이라 하는 등 수확시기에 따라서도 달리 불렀다. 길이와 폭에 따라 장곽(長藿)과 중곽(中藿), 실미역(絲藿)으로도 구분하였고, 품질 좋은 미역은 분곽(粉藿)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했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쓴 허균(許筠,1569~1618)은 올미역에 대해 특히 “삼척에서, 정월에 딴 것이 좋다”고 평했고, 전국에서 가장 맛 좋다고 손꼽힌 것은 울산 곽전에서 딴 미역이었다고.
우리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쌀과 소금, 백자를 조화롭게 연출해 백색을 표현하였다. 사진은 구본창, KF 003
백색에서 주목한 식재료는 역시 쌀이다. 우리 식생활에서 쌀의 위상은 다른 어떤 곡식과 견주기 어렵다. 조선시대 문장가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향촌생활의 담박한 묘사가 담긴 『옥담사집(玉潭私集)』에 “하늘이 온갖 물건을 내렸으나 무엇도 미곡만한 것은 없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주식인만큼 벼의 품종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재배법을 찾아 안정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노력해온 근거는 수많은 농서에서 찾을 수 있다. 벼 품종과 성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쌀과 밥으로도 이어졌는데, 밥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밥솥의 재질을 꼽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붉은 색을 대표하는 고춧가루는 그 유래와 연원을 알 길 없으나, 우리 식생활에 미묘한 변화를 불러온 식재료다. 사진 구본창, KF004.
붉은 적색을 대표하는 식재료로는 고추를 꼽았다. 붉고 매운 고추는 그 유래와 연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추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남만초에는 독이 있다. 왜국에서 왔기에 왜겨자(倭芥子)”라고 적힌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 (芝峯類說)』이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고추가 포르투갈(남만)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뒤에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18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는 고추 재배법이 『산림경제』에 실리는 등 고추에 관한 기록이 늘어났고, 음식에 고추를 쓰는 일이 많아져 우리 식생활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1740년 즈음 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 『소문사설(謏聞事說)』에는 지금도 널리 알려진 ‘순창고추장’이 실려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나물을 저장하고 조리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온다. 사진 구본창, KF002.
푸른 빛의 나물은 우리 식생활에 다양한 맛과 향을 더하는 재료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관휴지(灌畦志)」에는 총 128종의 나물이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나물의 종류를 집나물과 들나물, 산채로 구분한 이용기는 나물에 대해 “곡식과 고기에 곁들여 먹는 것이며 음식 소화를 돕는 효과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나물 조리법이 다양하게 담겨있는데, 한 번 익힌 상태로 무치거나 조리하는 ‘숙채(熟菜)’가 대부분이다. 산이나 들에서 얻은 나물의 독성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들거나 나물 특유의 쓴 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데치거나 삶아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증보산림경제』에는 21종의 채소 저장법이,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는 23종의 채소 말리는 방법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15종의 나물 저장법이 전한다. 모두 제철에 채취한 나물을 상하지 않게 보관했다가 신선한 나물과 채소를 구할 수 없을 때 활용하려는 지혜를 모아 정리한 것이다. 일상에서의 절실함과 필요성을 보여주듯 나물과 채소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유용한 보관법과 조리법이 한데 마련되어 있다. 제철 나물을 갈무리해 말린 묵나물과 얼지 않고 겨울을 넘길 수 있도록 보관한 채소는 계절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였다.
오방색에서 노란색은 빛이자 흙을 의미한다. 국화와 삼, 은행 등을 나열해 경쾌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표현하였다. 사진 구본창, KF001.
노란 빛깔의 황색을 대표하는 식재료는 잣이다. 잣은 해송자(海松子), 실백(實栢), 송백(松柏)이라고도 불렸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은 없다. 오장을 적셔 허기지지 않게 한다. 신라의 잣은 맛이 달고 좋으며, 성질은 매우 따뜻하다. 오래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여 수명을 늘리며 늙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음식과 약에 모두 쓰인다. 표면에 기름기가 돌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산화되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보관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잣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법으로 방풍(防風)과 함께 싸두거나 거친 포대에 담아 바람이 드나드는 곳에 걸어두었는데, 이는 모두 홍만선이 『산림경제』에 써둔 비법이다. 잣은 음식의 주재료뿐만 아니라 고명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고명으로 올리는 잣은 고깔을 떼어내고 깨끗하게 닦은 후에 통으로 쓰거나 종이 위에 놓고 곱게 다져 사용했다. 특히 잣을 길게 반으로 갈라 만든 비늘잣은 육포나 백편, 약과와 산자처럼 납작한 모양을 가진 음식에 올려 장식하는 데 쓰였다.
프로그램 1 재료중심 인문학
본 프로그램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한식분야 육성 지원 <전통문화 거점기관 한식 프로그램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창. 한식 재료 인문학 프로그램
거점기관 - 전체 / 교육장소 -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 한식요리교실
소요시간 - 10분 내외 / 운영차시 - 한식요리교실 이론강의, 온라인 상시 가능
참여신청 - 상시 / 참여대상 - 한식 관련 모든 기관, 단체 및 개인
강사 - 한식문화 큐레이터 / 강사준비 - 영상 파일 및 기자재
기대효과 1.한국 식재료의 특징 이해와 전통 생활사와 함께 인문학적 접근 2.요리 프로그램 사전 진행으로 한국 식재료 이해와 애정 부여 3.식재료와 어우러지는 한국의 전반적인 전통 생활문화 교육과 홍보
소요예산 *단, 별도의 상영을 위한 공간 확보시 상영을 위한 기기 필요(빔프로젝트 및 컴퓨터 등)
프로세스 도입(2분) 1.재료의 인문학 소개 전개(7분) 2.한국 식생활의 특성 3.한식, 그 속에서 맛과 색을 찾다. - 백(白) : 쌀 그리고 소금 - 적(赤) : 팥과 대추 - 흑(黑) : 미역과 다시마 - 황(黃) : 잣과 은행 - 청(靑) : 갖가지 나물과 채소 마무리(1분) 4.필자 소개
준비물 기관 1.상영 공간 2.영상 파일 및 기기 / 단체 1.빔프로젝트 및 대형 모니터 / 개인 1.PC,노트북,휴대폰 외
재료 탐색의 길: 다섯 가지 빛깔 세상의 모든 식재료는 저마다의 맛과 기운, 색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음식 만드는 일은 식재료의 특성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것이 서로 어우러졌을 때 어떤 맛을 내는가, 먹는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즐거움을 주는가에 대해 주의 깊게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온갖 맛을 지닌 재료를 늘어놓고 살펴보는 일이 흥미로운 것은 음식을 향유하는 방식과 더불어 맛을 내는 조리법에서 지혜로운 보관법까지, 긴 시간동안 쌓아온 우리의 식생활 문화의 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고르고 담아 나누고 갈무리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특별히 우리가 선택한 창(窓)은 '다섯 가지 빛깔' 이다. 음양오행에서 이야기하듯, 색은 방향이자 기운이고 또한 계절이기도 하다. 눈으로는 식재료의 황홀한 색을 음미하면서 혀끝에 닿는 맛과 계절에 따른 재료의 쓰임을 돌아보는 짧은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흑(黑), 검다: 미역 “동해에선 기이한 나물이 나는데 색은 검고 살결은 얄팍하네.” 이색, 목은시고 미역의 이름은 한두 개가 아니다. 해채(海菜)·해조(海藻)·해라(海羅)·해곽(海薩)처럼 당당하게 바다의 산물임을 내세운 것이 있는가 하면 언제 뜯었는지에 따라서도 이름을 달리 붙였다. 일찍 딴 것은 조곽(早藿·올미역)이라 했고 여름에 나는 것은 감곽(甘藿)으로 불렀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쓴 허균(許筠, 1569~1618)은 올미역에 대해 특히 “삼척에서, 정월에 딴 것이 좋다.”고 품평했다. 여기에 길고 짧음, 폭에 따라 장곽(長藿)과 중곽(中藿), 실미역[絲藿]으로도 구분했는데, 품질 좋은 미역에는 분곽(粉藿)이라는 이름을 따로 붙여주었다.
미역은 바다의 '미역밭' 에서 땄다. 옛 문헌에 '곽전(藿田)'이라 기록된 것이 바로 미역밭이다. 밭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미역이 붙어 자생하는 바위다. 전국에서 가장 맛 좋다고 손꼽힌 것은 울산 곽전에서 딴 미역이었다. 보통 미역 1동(同) 값이 7냥 반이었으나 울산 미역은 10냥으로 계산했다. 우리나라에서 미역은 아이를 낳은 산부(産婦)의 음식을 만드는 데 더없이 좋은 재료로 쓰였다. 이익(李翼, 1681~1763)또한 “미역이 산부의 약이라는 것은 동방 풍속에서 중요한 처방”이라고 했으니 미역국의 연원이 결코 짧지 않은 셈이다.
백(白), 희다: 쌀 "무엇도 미곡(米穀) 만한 것은 없다.” 이응희, 옥담사집 "알알이 하얀 것은 서리와 같고 영롱한 빛은 이슬과 같네.” 이색, 목은시고 '빙절도(水折稻)’, ‘옥자강이(光', '왜자(倭子)’, ‘황금자(黃金子)', '사노리(沙老里). 이 낯선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모두 쌀이다. 옥담사집(玉潭私集)을 쓴 이응희(李應禧, 1579~1651)는 “하늘이 온갖 물건을 내렸으나 무엇도 미곡만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식생활에서 주식인 쌀의 위상은 다른 어떤 곡식보다도 확고했다. 쌀을 주식으로 삼은 문화권에서 벼 품종을 파악하고 효과적인 재배법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쌀을 안정적으로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한 결과와 경험은 수많은 농서(農書)에 고스란히 담겨 후대로 전해졌다.
실제로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나락 여무는 순서에 따라 올벼(早稻)와 중올벼(次早稻), 늦벼(晩稻)를 나누고 다시 색과 모양, 껍질의 두께와 색, 토질에 따라 각기 다른 벼 수십 종류의 성질을 파악해 정리한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 옛사람들이 벼 품종과 성질에 대해 기울였던 관심은 자연스럽게 쌀과 밥으로도 이어졌다. 쌀에 대한 열망의 끝자락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이 있었다. 옛사람들은 밥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밥솥의 재질을 꼽았다. “밥과 죽은 석정(石鼎·돌솥)이 으뜸이요, 오지탕관(질그릇 솥)이 버금이라.”는 빙허각 이씨의 말이나 “밥 짓는 그릇은 곱돌솥이 으뜸이요, 오지탕관이 그 다음이요, 무쇠 솥은 셋째요, 동노구가 하등 이라고 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기록은 그런 사실을 생생하게 뒷받침한다. 이왕 먹는 밥, 조금 더 맛있고 기쁘게 먹는 방법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탐색한 흔적이다.
'적(赤), 빨갛다: 고추 "붉은 그 모습, 찬 서리 오기 전에 벌써 익었구나.” 이익, 성호사설, 왜인의 번초시 색은 빨갛고 맛은 맵다.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한 연원을 알 길도 없다. 남번초(南番椒)·남만초(南蠻草)·남초(南椒)·당초(唐草)·고초(苦草·苦椒), 이름도 제각각이다. 이익은 번초(番椒)'라는 제목 아래 “우리나라에서는 왜초(倭椒)라 하는데, 왜인(倭人)들은 이를 번초라 한다.”고 썼다. 이 채소는, 짐작하듯 '고추' 다. 고추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이다. 구구절절,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으련만 “남만초에는 독이 있다. 왜국에서 왔기에 왜겨자(倭芥子)라 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고추가 포르투갈(남만)로부터 일본에 전해진 뒤에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18세기로 들어서면서, 고추 재배법이 산림경제에 실리는가 하면 고추를 활용한 음식도 차차 늘어났다. 고추에 관한 기록이 늘어나고 음식에 고추를 쓰는 일이 많아진 것도, 우리 식생활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 것도 모두 이 시기였다. 1740년 즈음 발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 소문사설(聞事說)에는 지금도 널리 알려진 '순창고추장' 이 실려 있다. 그리고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역시 직접 고추장을 담가 아들에게 보냈다. 우리 눈에 익숙한 붉은 빛 도는 김치 만드는 법은 증보산림경제에 실려 있다. 오이소박이를 만들 때는 고춧가루(蠻椒末)를, 소금에 오이를 재울 때는 고추를 채 썰어서, 그리고 무김치에는 고추의 잎과 줄기, 열매를 사용하도록 했다. 김치마다 고추를 넣는 방법을 달리했으니 그 맛과 향도 가지각색이었으리라.
청(靑), 푸르다: 나물 “무슨 나물이든지 좋은 것을 삼사월에 정히 씻고 말려서 물에 삶되 오륙 분쯤 익혀내어 볕에 말려놓고 소금장과 천초사탕귤피와 함께 삶아 극히 더울 제 또 볕에 말리고 다시 찌기를 잠깐 하야 사기그릇에 담았다가 먹을 때 기름 쳐 주무르고 초를 조금 치고 밥에 쪄서 먹나니라.” 이용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새해엔 병이 많아 귀밑털이 흰 실 같은데 봄기운이 사람 깔보고 대울을 넘어오네. 소반 가운데 보드라운 생채가 보기 좋아라. 봄의 풍미를 두보가 나보다 먼저 알았구나.” 서거정, 사가시집 산과 들, 밭에서 얻는 나물은 우리 식생활에 다양한 맛과 향을 더하는 재료다. 이를 보여주듯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관휴지(灌畦志)에는 총 128종의 나물이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나물의 종류를 집나물과 들나물, 산채로 구분한 이용기는 나물에 대해 “곡식과 고기에 곁들여 먹는 것이며 음식 소화를 돕는 효과(功效)가 크다고 평가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나물 조리법이 다양하게 담겨 있는데, 한 번 익힌 상태로 무치거나 조리하는 '숙채(熟菜)’가 대부분이다. 산이나 들에서 얻은 나물의 독성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나물 특유의 쓴 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데치거나 삶아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증보산림경제에는 21종의 채소 저장법이,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는 23종의 채소 말리는 방법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15종의 나물 저장법이 전한다. 모두 제철에 채취한 나물을 상하지 않게 보관했다가 신선한 나물과 채소를 구할 수 없을 때 활용하려는 지혜를 모아 정리한 것이다. 일상에서의 절실함과 필요성을 보여주듯 나물과 채소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 유용한 보관법과 조리법이 한데 마련되어 있다. 유중림은 이 모든 저장법을 치선(治膳·반찬 만들기)의 앞부분에 빼곡하게 정리해두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맛난 음식과 좋은 반찬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채소밭에 심은 것과 우리에 가둬 기르는 것, 강에서 잡은 것을 잘못 조리하거나 제대로 저장하지 못하면 어떻게 어른을 봉양하고 손님을 대접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제철 나물을 갈무리해 말린 묵나물과 얼지 않고 겨울을 넘길 수 있도록 보관한 채소는 계절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였다.
황(黃), 노랗다: 잣 “잣송이가 보배로운 열매 품고서 서리를 맞아 앞뜰에 떨어졌어라. 부드러운 껍질 속에 금빛 열매 거두고 장요미 같은 옥열매를 씹는다.” 이응희, 옥담사집 잣의 또 다른 이름은 해송자(海松子)다. 실백(實栢) 혹은 송백(松柏)이라고도 한다. 얼핏 보면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잎 붙은 모양이 달라서 다섯 개의 잎이 한데 묶인 것으로 잣나무를 구분한다.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은 없다. 오장을 적셔 허기지지 않게 한다. 신라의 잣은 맛이 달고 좋으며, 성질은 매우 따뜻하다. 오래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여 수명을 늘리며 늙지 않는다.”는 것이 잣에 대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설명이다.
크기가 작고 고소한 맛을 내는 잣은 음식과 약에 모두 쓰인다. 쓰임이 많은 만큼 보관에도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표면에 기름기가 돌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산화되어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잣을 오래 두고 먹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방풍(防風)과 함께 싸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름이 나서 끈적거리지 않으며 방풍도 상하지 않는다. 거친 포대에 담아 바람이 드나드는 곳에 걸어두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면 끈적거리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홍만선이 산림경제에 써둔 비법이다. 잣은 음식의 주재료뿐만 아니라 보조 재료인 고명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고명으로 올리는 잣은 고깔을 떼어내고 깨끗하게 닦은 후에 통으로 쓰거나 종이 위에 놓고 곱게 다져 사용했다. 특히 잣을 길게 반으로 갈라 만든 비늘잣은 육포나 백편, 약과와 산자처럼 납작한 모양을 가진 음식에 올려 장식하는 데 쓰였다.
기획 커뮤니티디자인연구소 글 조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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