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사전

남자바지

한자로는 ‘고袴’ 또는 ‘파지(把持)로 기록되어 있다. 바지의 실물자료는 조선전기 출토유물에서 확인되는데,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에 형태 차이가 크다. 임진왜란 전에는 크게 가랑이 사이가 트여있는 바지와 밑이 막힌 바지가 있는데 형태는 대부분 허리에 주름을 잡아 폭이 넓다. 이 시기는 여성의 바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가 되면 남자바지는 마루폭, 큰사폭, 작은사폭으로 구성된 일명 ’사폭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한다. 사폭바지는 허리에 주름이 없으며, 발목 쪽으로 좁아지는 형태이다. 출토된 사폭바지를 보면 수의로 착용된 경우 안에는 속옷 개념인 홑바지와 그 위로 겹바지를 겹쳐 입었다. 홑바지는 주로 무늬 없는 소박한 직물을 사용하고, 겹바지는 무늬가 있는 직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겨울에는 솜바지나 누비바지를 입는다. 사폭바지는 허리띠와 대님이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확인되면, 허리띠를 허리 뒤에 완전히 부착한 사례도 있다. 사폭바지는 현재까지는 김덕령(1567∼1596) 묘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폭바지는 조선에 이어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도박물관(2004), 『심수륜묘 출토복식 보고서』.
경기도박물관(2014), 『성선군 모자의 특별한 외출』.
경기도박물관(2010), 『파주 심지원 묘 및 신도비 유적』.
홍미연(2018), 「1940년 전후 경기도 지방 여자복식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집필자 : 정미숙(鄭美淑), 실학박물관]
[키워드 : 남자바지, 袴, 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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