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뉴스

선덕여왕·신사임당 등 종이로 부활..정종미 개인전
등록일 2009-02-09 조회수2592

[파이낸셜 뉴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당당하고 엄숙하며 우아한 자태의 한 여인이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주변은 온통 빨강색이다. 붉은색 화면은 끔찍한 사건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한지 작가’ 정종미(52·고려대 교수)가 되살려낸 ‘명성황후’의 모습이다.

“명성황후는 3개월에 걸쳐 작업했는데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떻게 국모로서의 위엄있는 자태를 드러낼까 고민했어요.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의 저자인 비숍여사 등 황후를 직접 본 사람들이 남긴 ‘콧대는 오똑하고 눈매는 날카롭고 눈에는 쌍꺼풀이 져 있다’는 기록을 참조해 완성했어요.”

지난 1999년부터 전통 채색기법과 한지의 물성을 활용해 종이부인 연작을 선보여온 정종미가 이처럼 역사 속 여인들을 현실로 불러냈다. 그가 ‘종이부인’으로 부활시킨 역사적 인물은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비롯해 신라의 선덕여왕, 인도에서 건너온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매창, 명성황후, 유관순, 나해석 등 11명이다. 모두 한결같이 뜨겁고 강렬한 삶을 살다간 여성들이다. 정종미의 개인전이 오는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02-720-5114)에서 ‘역사 속의 종이부인展’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전시 작품들은 예전처럼 합판 위에 바탕색을 입힌 뒤 여성의 얼굴을 그리고 몸에는 한지나 비단으로 직접 만든 옷을 콜라주 기법으로 붙인 것들이다. 여기에다 콩을 여러 날 불려 갈아서 만든 콩즙을 수없이 올리고 닦고 지우고 훔쳐냈다.

이번 전시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 11인을 중심으로 ‘미인도’를 비롯해 우리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종이부인’ 60여점이 등장한다. 작가는 수없이 겹겹이 올려진 투명한 채색 추상이나 다양한 색동으로 연결된 색면 추상과 역사 속의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화면을 연결해 역사 속 인물들과 전통색을 하나로 잇는 대형 작업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그동안 한국적인 여성상이나 그 이미지를 표현해온 작가는 영정 한 점 남아있지 않은 역사 속 인물을 부활시키느라 부담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각종 역사 기록을 참조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얼굴을 그렸다. 유화부인의 경우 고분에서 고구려 평양의 별자리가 발견된 일본의 ‘다카마츠즈카 고분 벽화’의 구도를 활용하기도 했다.

정종미는 역설적으로 사진이 남아있는 근대여성 나혜석은 오히려 추상에 더 가깝게 그렸다. 반면에 적군의 장수를 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를 가장 직접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전체 폭이 6.3m인 푸른 색 화면의 중앙에 중력을 받지 않고 하강하는 커다란 새처럼 논개를 표현한 것이다. 순국한 님을 향한 사랑과 나라를 위해 바친 정열을 깊이감 있는 붉은색에 담았으며, 배경인 푸른색은 남색과 콩즙의 복합층으로 강과 창공을 상징함으로써 그녀의 죽음이 다른 세계로의 비행처럼 보이게 한다.

작가는 역사 속 여성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얼굴을 찾아주고 죽은 영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정종미가 한지를 작업에 끌여들인 것은 1994년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종이공방을 다닐 때 한지가 세계 최고의 종이라는 자각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한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 체온을 받아주는 푸근함,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강인함과 질긴 근성 등이 한국의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에서 그는 ‘종이부인’ 연작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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