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조지훈(趙芝薰)
1920∼1968 / 청록파 시인,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
생애 및 업적
  •  조지훈(趙芝薰 : 1920∼1968) :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 / 민속학과 민족운동사에 공헌 / 한국문화사를 최초로 저술 / 주요저서 <조지훈 시선>, <한국민족운동사> 등 1920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한 조지훈은 소월과 영랑에서 비롯하여 서정주와 유치환을 거쳐 청록파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한국문학사에 연속성을 부여해준 큰 시인이다. 《청록집》《풀잎단장》《조지훈시선》《역사 앞에서》《여운》등 그가 남긴 시집들은 모두 민족어의 보석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승무〉〈낙화〉〈고사〉와 같은 시들은 지금도 널리 읊어지고 있는 민족시의 명작들이다.


     전통적인 운율과 선(禪)의 미학을 매우 현대적인 방법으로 결합한 것이 조지훈 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조지훈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누구도 훼손하지 못할 만큼 확고부동하다. 매천 황현과 만해 한용운을 이어 조지훈은 지조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지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의 시신을 만해가 거두어 장례를 치를 때 심우장에 참례한 것이 열일곱(1937년)이었으니 조지훈이 뜻을 확립한 시기가 얼마나 일렀던가를 알 수 있다. 조지훈은 민속학과 역사학을 두 기둥으로 하는 한국문화사를 스스로 자신의 전공이라고 여기었다. 조부 조인석과 부친 조헌영으로부터 한학과 절의를 배워 체득하였고 혜화전문과 월정사에서 익힌 불경과 참선 또한 평생토록 연찬하였다. 여기에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원고를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국어학 지식이 더해져서 형성된 조지훈의 학문적 바탕은 현대교육만 받은 사람들로서는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넓고 깊었다.


     광복이 되자 10월에 한글학회 국어교본 편찬원이 되고 11월에 진단학회 국사교본 편찬원이 되어 우리 손으로 된 최초의 국어교과서와 국사교과서를 편찬하였고 그 이후 1968년 기관지 확장으로 작고하기까지 조지훈이 저술한 〈멋의 연구〉《한국문화사서설》《한국민족운동사》《시의 원리》 등의 저서는 한국학 연구의 영원한 명저가 되었다. 조지훈은 진리와 허위, 정의와 불의를 준엄하게 판별하고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지조론〉에 나타나는 추상같은 질책은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터뜨린 양심의 절규이었다. 일찍이 오대산 월정사 외전강사 시절 조지훈은 일제가 싱가포르 함락을 축하하는 행렬을 주지에게 강요한다는 말을 듣고 종일 통음하다 피를 토한 적도 있었다.


     민족문화와 민주정치를 살리기 위하여 조지훈은 한 시대의 가장 격렬한 비판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진해 발언에 대해 이는 학자와 학생과 기자를 버리고 정치를 하려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한 조지훈은 그로 인해 정치교수로 몰렸고 늘 사직서를 가지고 다녔다.


     조지훈은 근면하면서 여유 있고 정직하면서 관대하고 근엄하면서 소탈한 현대의 선비였다. 매천이 절명의 순간에도 "창공을 비추는 촛불"로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였듯이 조지훈은 나라 잃은 시대에도 "태초에 멋이 있었다"는 신념을 지니고 초연한 기품을 잃지 않았다. 조지훈에게 멋은 저항과 죽음의 자리에서도 지녀야 할 삶의 척도이었다. 조지훈은 호탕한 멋과 준엄한 원칙 위에 재능과 교양과 인품이 조화를 이룬 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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