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인물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 고려의 승려
  • 문화체육관광부는 독자적인 불교사상을 확립하고 선·교종의 합일에 힘쓴 조계종의 중흥조(中興祖) 보조국사 지눌(知訥 : 1158∼1210)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보조국사 지눌은 중국불교에서 한국인의 근기(根基)에 맞게 독자적으로 체계를 세운, 한국불교 사상사에서 위로는 대각국사와 아래로는 태고국사와 더불어 가장 빛나는 업적과 영향을 끼친 분이다. 불교는 왕건이 고려의 개국과 함께 국교로 지정하고 적극적인 후원과 기대로 귀족화 되었으며, 스님들은 정치와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불교계 모두가 시대에 편승하여 안위를 택했지만 지눌은 모든 것을 버리고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하여 지금의 조계산 송광사에 정혜사(후에 수선사)를 정한 후, 민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철저한 수행과 수도로서 포교에 힘쓰면서 정치·권력·안락을 과감히 버렸다. 정혜사에 지눌의 수행과 수도력으로 민중이 대거 몰리자 자신의 수행에 본분을 잊을까를 걱정하며, 홀연히 몸에 지닌 가사 1벌만을 가지고 산 속에서 뼈를 깎는 고행을 하였다.


     보조국사는 스승을 정하지 않고 홀로 수행을 하며 도를 찾았으며, 자유롭게 경론과 선어록에 깊이 빠져 독자적인 선사상의 체계를 세웠으며, 귀족과 민중의 차별을 버리고 평등포교를 강조하여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보조국사는 3번 크게 깨우침을 얻었는데, 첫째 <육조단경(六祖壇經)>을 보고 한 가지 상에 매달리지 말고 항상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둘째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화엄경(華嚴經)> [여래출현품]에 선과 교가 다르지 않음에 감격하여 수행법의 체계를 세우고 불교계의 모순을 지적할 수 있었으며, 셋째 <대혜어록>을 보고 자아의 본질도 일체의 경계와 작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항상 걸림 없이 자재(自在)한 대해탈의 경계를 체득하였다.


     보조국사의 선사상의 핵심은 ① 심성론, ② 돈오점수론, ③ 간화론으로 꼽고 있으며, 심성론(心性論)은 선에서 심(心)과 성(性)을 내세워 불교의 기본 정신을 일깨웠다. 저서 <진심직설(眞心直說)>을 저술하고 선이 추구하는 실제 세계인 진심(眞心)과 망심(妄心), 진심의 묘용(妙用)에 대해 정확히 결론을 내었으며, 진정 선은 교가 바탕이 됨을 당부하고 선(禪)과 교(敎)가 다름없음을 간절히 당부하였다. 돈오점수론(頓悟漸修論)은 참자아와 참마음을 홀연히 발견하는(돈오)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처음에는(태어남)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 차츰 발견하는 것(점수)을 분리하고 않고 점수가 바탕이 되어 돈오가 눈을 뜬다면 그것이 바른 수행이라고 하였다.


     간화론(看話論)에 대해서도 모든 분별심, 즉 사량(思量)없는 마음으로 한 생각 탁― 끊고 살아간다면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참 진리를 얻게 된다고 하였다. 보조국사는 이렇게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수행의 결실을 거두고 총 15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많은 제자들에게 수행에 시간 없음을 다그쳤다. 보조국사는 중국에 태어났어야 큰 스승 소리를 듣는 시대에 태어나 참다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원껏 펴다 가신 진정 큰 스승의 족적을 남기고 가신 분이다.


     한국인의 근기에 맞는 독자적인 사상과 풍격(風格)을 갖추신 보조국사 지눌은 그만의 독특한 선교융통을 이루어내었고, 진정한 한국의 선사상을 이루었으며, 기울어 가는 고려불교를 바로 세우고 부처님과 역대 조사의 참뜻을 근본으로 돌이켜 수행과 이생(利生)에 전념할 혁신적 이념체계를 창안하여 새로운 기치를 세움으로써 한국 불교를 조계종(曹溪宗)이라는 큰 강으로 합류시켰다. 보조국사는 세수 53세(희종 6년, 1210년) 3월 27일 새벽, 법랍 36세(승가 나이)에 석장(錫杖)을 짚고 평상에 앉으신 채 조용히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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