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우장춘 (禹長春)
1898~1959 / 한국의 농학자
생애 및 업적
  •  우장춘은 망명정객(亡命政客) 우범선(添範善)과 일본인 부인 사가이 나까(酒井 仲)사이에서 1898년 (광무 2년) 4월 8일 자정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다. 4세 때 본국에서 보낸 자객에게 아버지를 여의고, 극빈한 가정형편으로 6세 때 도쿄의 어느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어머니를 따라 히로시마로 이사, 1916년 일본의 광도현립 오중학교(廣島脚竝 吳中學校)를 졸업하고, 동경제국대학 농학실과(東京帝國大學 農學刻料)에 입학하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19년 「고오노수」라는 곳에 있었던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채용되면서부터 우장춘의 연구생활은 시작되었다.


     우장춘은 연구생활을 통하여 모두 19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가 발표한 많은 논문 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부라시카속(屬)에 있어서 유채의 실험적 합성 및 수정의 독특한 양식과 연관된 게놈 분석' 이라는 논문이다. 그는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논문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내지는 보완하였다는 유명한 논문이며, 이것이 속칭「우장춘박사의 종(種)의 합성 논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 분야 연구의 효시가 되는 논문이다.


     우장춘은 농림성 농사시험장으로부터 다끼이 연구농장장(硏究農場長)으로 전임하여 우량종자 육성의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까지의 민간육종은 대부분 이론적 바탕이 없이 경험과 기술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좋은 품종이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그 질을 계속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또 민간육종을 조장하기 위해서는 육종기술이 학문적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채소(菜蔬)의 육종기술」이라는 글을 발표하고, 육종의 기술화를 위한 이론과 체계를 제시하였다. 육종학 연구에 전심,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 없는 수박과 벼의 수도이기작(水稻二期作)을 연구, 1957년 부산시 제1회 문화상 과학부문상을 받았다. 1958년 농사원 원예시험장장이 되고, 1959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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