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연암 박지원 (燕巖 朴趾源)
1737~1805 / 조선 후기의 실학자, 소설가
생애 및 업적
  •  박지원은 1737(영조 13년) 반남 박씨 사유(1703-1767)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를 중미 또는 미중이라 하였으며, 아호는 연암 또는 열상외사라 하였다. 유년 시절에는 형 희원(1723-1787)의 재주에 힘입어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특별한 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그것이 조부에게서 양육된 탓이겠지만 타고난 재주를 연마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그의 영특함은 그가 5세 때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집을 둘러보고 집의 방향과 규모를 정확히 설명했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학문에 전념한 것은 16세 이후부터이다. 1752년(영조28년) 전주 이씨 보천(1714-1777)의 딸과 결혼할 당시 부인의 나이는 16세였으며, 이보천의 아우 영목당 양천(1716-1755)은 홍문관 교리에 있으면서 역사서적과 문장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처남 이재성과는 평생의 지우로써 그의 학문과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때가 박지원이 학문에 입문하는 시기이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전기를 맞는 해였다. 소년 시절을 외롭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 보내면서 강직한 조부의 성격적인 감화와 처가 친척들의 당대 사회에 비판적 처사적인 고고한 생활철학에서 점차 사회적 모순에 눈을 떠가고 있었으며 과거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었다. 미천한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듣는 세상의 재미나는 이야기들은 박지원으로 하여금 모순된 계급사회와 병리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키웠으며, 시골의 처가를 내왕하면서 목도한 농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자신의 잠재된 비판의식과 이상향을 일깨우게 되었다. 그는 애초에 장인과 처숙에게서 경서와 사마천의 <신릉군전>을 배워, 이것을 모방하여 <이충무공전>을 지었는데 이보천에게서 크게 칭찬 받은 일이 있었다.


     이러한 수업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신이 합해져 처음으로<마장전>과 <예덕선생전>, <광문자전>을 지었다. 모두 미천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시대의 모순된 부분을 비판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가 남긴 초기 9편의 단편은 대개 18세에서 28세 사이인 약 10년간의 수학기에 쓰인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그의 문집속 <방경각외전>에 수록되어 있다. 당시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 당시의 양반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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