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건재 정인승(建齋 鄭寅承)
1897~1986 / 한글학자
  • 문화체육부는 한글학회 <큰사전> 을 완성하는 등 한글발전에 크게 기여한 국어학자 정인승(鄭寅承) 선생을 10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우리 한글이 걸어온 길이 험난한 가시밭길이었던 것처럼 일제치하에서 건재의 삶도 순탄치만은 않았으며, 새 학문에 관한 연구가 남달랐지만 결국은 한글 펴기로 열매를 맺었고 우리 국어학에 끼친 업적도 적지 않다.
생애 및 업적
  •  갑오경장을 치르고 새 물결로 탈바꿈하느라 소용돌이치는 격동기에 태어나, 5살 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하여 거의 독학으로 깨쳤으며 10살 전후부터는 역사, 산술, 일본말 등 새 학문 탐구에 심취했다. 늦깎이로 21살 때 용담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29살 때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1등밖에 모르는 공부벌레로 미국 유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25년 전북 고창고보에 근무했다. 거기서 꺼져가는 조선말 교육이 더 급해 미국 가기를 포기하고 조선말 교육에 열중하다 일제당국의 감시가 심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35년에 사직했다. 1936년부터는 조선어학회(광복이후 한글학회)에서 <큰사전> 편집 주간을 맡아 1957년 한글날에 이를 완성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나, 도중에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광복과 함께 풀려났다.


     한편 말본에서 일곱 씨와 풀이자리토씨에 역점을 두었고, 음운에 'ㅣ'치닮기 문제, 홀소리 갈음 법칙과 닿소리 세기 법칙, 사이 된소리 발견, 웃음 시늉말 등 독특한 연구자취를 남겼다. 광복 후에 시급한 우리말 교재 편찬과 교사양성에 힘씀은 물론, 대학 강사 및 교수로 강단에서 삶을 마쳤다. 자신의 영달보다는 '큰 나'를 위하여 '작은 나'를 희생시킨 국어학자로 전북대, 중앙대 및 건국대 교수와 전북대총장 등을 역임했고 학술원회원, 한글학회 명예이사 및 고문을 지냈다. <큰사전> 편찬 공로상, 국어운동 특별공로상, 학술원상, 건국공로훈장,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한글독본>, <한글문답>, <표준중등말본>, <표준고등말본>, <의문해설 한글강화>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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